[아름다운세상] 금산 '새터공동체' 사람들 이야기

[아름다운세상] 금산 '새터공동체' 사람들 이야기

[ 아름다운세상 ]

정보미 기자 jbm@kidokongbo.com
2007년 05월 15일(화) 00:00
   
충남 금산 신평리에 위치한 대전노회 새터공동체. 7명의 장애인들과 새터공동체를 이끌고 있는 박병민목사, 부인 진선미 씨, 그리고 그들의 자녀 한솔, 진솔 양까지 총 11명이 맑은 공기와 풍요로운 자연환경 속에서 하나의 공동체를 꾸려 가고 있다.
【금산=정보미】 버스가 도심을 벗어나 변두리로 힘차게 내달리자 굽이진 길을 따라 펼쳐진 녹음이 눈을 맑게 한다. 따사로운 햇볕 아래 잎 넓은 나무들과 채소 곡식들이 새싹을 틔우며 여름을 기다리고 있었다. 평화로운 농촌 풍경이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며 다다른 길.

아담한 초등학교를 뒤로 하고 개울 다리를 건너니 주황색 벽돌의 이층집이 보였다. 충남 금산 신평리에 위치한 대전노회 새터공동체. 7명의 장애인들이 맑은 공기와 풍요로운 자연환경 속에서 옹기종기 모여 사는 곳. 새터공동체를 이끌어 가는 박병민목사와 부인 진선미 씨, 그리고 그들의 자녀 한솔, 진솔 양까지 총 11명이 하나의 공동체를 꾸려나가고 있다.

"어서오세요. 반가워서 그래. 잘왔어."

무래 씨가 얼굴 한가득 미소를 띠운채 달려와서 반겨줬다. 정신지체장애인인 정무래 씨는 새터의 귀한 살림꾼이다. 공동체 식구들의 밥상을 차리고 마당, 방 청소를 도맡는 등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 돕고 있다.

   
거동이 불편한 지체장애인과 정신지체 장애인들이 서로 짝을 이뤄 도우며 살고 있는 새터공동체.
"가끔 화단의 잡초를 뽑으라고 알려주면 어렵게 심어놓은 꽃을 뽑아 놓고, 빨갛게 익은 고추를 따라고 가르쳐주면 설익은 푸른 고추만 따는 등 실수도 많지만 무래가 있어서 든든해요." 박 목사의 부인 진씨의 말이다.

새터공동체 사람들은 저마다 두 명씩 짝을 지어 생활한다. 굳이 두 명씩으로 나눈 이유는 거동이 불편한 지체장애인과 거동이 가능한 장애인이 함께 생활하면서 서로 어려운 부분들을 도와가며 살기 위해서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걷는 게 불편해진 라홍채 씨는 거동이 가능한 박소웅 씨와 한 방을 쓰고 있다.

무래 씨는 휠체어 없이는 거닐 수 없는 지체장애인 박종만 씨와 짝궁을 이루고, 정신 장애를 갖고 있는 박정임 씨는 마찬가지로 정신지체이면서 다리와 손이 불편한 지체장애인 최영애 씨를 도우며 지낸다. 특히 정임 씨는 밥을 맛있게 짓고 설겆이도 잘해 부주방장의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한 명 더 있다. 정신질환 장애를 갖고 있는 최성재 씨. 성재 씨는 현재 허리를 다쳐 병원에 입원중이나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봉사하는 새터의 일꾼이다.

새터 사람들은 매일 오전 7시가 되면 일곱 명 중 몸이 가장 불편한 종만 씨의 방에 둘러 앉아 아침기도 시간을 갖는다. 그 후 아침을 지어먹고 거동이 가능한 이들은 청소나 근처 화단을 가꾸며 집안일을 돕는다. 점심 후 오후에는 TV를 보거나 음악을 듣는 등 각자 소소한 일상을 보내고 저녁식사 후 잠들기 전 다시 한번 종만 씨의 방에 모여 저녁 중보기도회 시간을 갖는다.

기도 제목은 두 가지. "식구들의 건강을 지켜주시고 전쟁으로 고통받거나 굶주리는 이 세상 모든 이웃들이 행복해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자신보다 불우한 이웃들을 위해 그들은 매일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고 있다.

신평리는 박 목사의 고향이다. 새 신(新), 땅 평(坪) 자를 쓰고 있는 신평리의 뜻을 따서 '새터' 공동체라고 이름지었다. 박 목사는 왼쪽 손과 발을 거의 사용하지 못하는 지체장애인이다. 때문에 비장애인인 부인 진 씨가 공동체 살림을 도맡아 식구들의 식사를 책임지고 있다.

"지체장애인들은 주변사람이 항상 곁에서 시중을 거들어줘야 불편함 없이 생활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이들에게 고기를 잡아서 주는 게 아니라 고기잡는 법을 알려줘야 겠다고 생각했죠. 하루 아침에 수 십년간 몸에 배있던 습관을 고칠 순 없었지만 오랜 연습끝에 가능하게 됐어요. 자신이 할 수 있는 부분은 각자 감당하고 있죠."

그들에게 자신도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려던 진 씨의 노력 덕분에 공동체 식구들은 하루하루 놀랍게 발전해 나갔다. 지체장애를 갖고 있어 움직이기도 힘들었던 영애 씨는 이제 스스로 이불을 개고 옷을 갈아 입는다. 수족을 움직이지 못해 누워있어야만 했던 종만 씨도 휴지통이 있는 곳까지 기어가 쓰레기를 버릴 수 있게 됐다. 진 씨의 격려와 노력이 공동체 안에서 작은 기적들을 만들어 나가고 있었다.

왼 손을 움직이지 못하는 박 목사가 "평생동안 내 오른쪽 손톱을 깎아줄 있겠소?"라는 말로 프로포즈하며 결혼하게 됐다는 부인 진 씨. 오랜기간 대식구를 거느리며 지내기가 힘들었을 법도 한데 "힘든건 별로 없다"며 "식구들이 건강하고 내 몸만 튼튼하면 된다"고 말한다. 자신의 몸이 건강해야 식구들을 보살피는 데 지장이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 뭐가 먹고싶어요'라고 말하면 신기하게도 어디서 생겨나요. 주님께서 다 채워주시는 데 걱정할 게 뭐 있나요? 먹고 사는데 지장없이 잘 살고 있어요."

장애인 목사와 장애인 식구들은 그렇게 산골 마을 속에서 작은 공동체를 이루며 서로가 돕는 자가 되어 나누는 삶을 실천하고 있었다.

오늘 저녁도 그들은 종만 씨의 방에 모여앉아 지구촌의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기도할 예정이다. 자신들보다 더 어려운 그들의 행복을 기원하면서 말이다.


*새터공동체 대표 박병민목사 인터뷰

박병민목사는 대전신학대학교를 졸업한 뒤 사랑방교회에서 전도사를 지내고 연로한 장애인들이 모여사는 논산 '예수마을'에서 1년 반 동안 부목사로 사역하다가 지난 1999년 7월 16일 이곳으로 부임했다. 올해로 7년째 새터공동체를 이끄는 그는 이곳 사람들의 새터지기로 헌신을 다해 사역하고 있다.

"원래 새터공동체를 설립하기 전에는 기도원 건물로 운영되고 있었어요. 하지만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다는 얘기를 듣고 쉬기도 하면서 장애인들과 공동체를 이루며 함께 살아야 겠다는 생각으로 오게 됐죠."

공동체 설립 초기에는 단촐했던 식구들이 주변 목회자들의 추천을 받아 오게 된 이들로 한 두명씩 늘기 시작했다. 그렇게 지금까지 11명이 모여 살게 된 것.

"가정형편이 어려운 장애인들이 이곳을 찾고 있지요. 부모도 같은 정신지체 장애를 갖고 있거나 돌볼 사람이 없어 오는 이유가 대부분이예요."

새터공동체는 조립식으로 지어진 옛 건물에서 작년 7월 새롭게 지어진 현재의 집으로 이사했다. 비가 새고 장애인이 생활하기에는 불편한 점이 많았던 터라 생활비를 아껴가며 모은 돈으로 3년에 걸쳐 집을 지었단다. 87평의 비교적 넓은 공간에서 생활하며 새터 사람들은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고 있었다.

새터공동체는 개교회 및 개인, 기업 등의 후원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박 목사는 넉넉하지도 않고 모자르지도 않은 지금의 삶에 만족한다고 했다. "더 이상의 욕심은 없어요. 부족한 나를 믿고 따라와 준 아내에게 가장 고맙죠. 식구들이 건강하고 편안하게 사는 게 제 바람이예요." 선한 청지기의 소박한 소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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