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달라서 더 행복해요" 에큐메니칼 부부 이야기

[피플] "달라서 더 행복해요" 에큐메니칼 부부 이야기

[ 교계 ] 예장통합 이철용목사 기장 양미강목사의 에큐메니칼 러브 스토리

정보미 기자 jbm@kidokongbo.com
2007년 03월 06일(화) 00:00
올해 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 1백주년을 맞은 한국교회는 연합과 일치운동에 주력하고 있다. 백년 전 그 부흥의 불길을 이땅에 다시 한번 지펴보자는 공동의 목적에서다. 이를 위해 각 교단에서는 함께 연합운동을 펼치거나 주일 강단교류를 시도하며 화합을 도모하고 있다.

그런데 이 에큐메니칼을 실제로 부부의 연을 맺음으로써 몸소 실천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 13년차 '잉꼬부부'인 본교단 소속 이철용목사(45ㆍ서울남노회 전도목사)와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인 양미강목사(48ㆍ한백교회 시무).

이 목사는 국내 장애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소통할 수 있는 장을 만들기 위해 장애인인터넷신문 위드뉴스(www.withnews.com)를 설립해 운영자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총무를 지내며 정신대 할머니들의 유린된 인권을 찾기 위해 대대적인 시민운동을 벌여온 양 목사는 현재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상임운영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한 교과서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들 부부의 공통점은 사회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정책을 바로잡기 위해 헌신하는 시민운동가라는 점이다.

이런 두 사람이 부부의 연을 맺기까지는 많은 사연과 우여곡절이 있었다. 1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닮은 듯 다른 듯한 이들 부부는 지난 1994년 12월 29일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결혼식을 올린다. 주변의 반대와 많은 우려속에서 타교단 출신, 3살 터울의 연상연하 커플이라는 차이를 극복하고 결혼에 성공한 것.

양 목사는 "우리집에서는 학생인 신랑이 경제적으로 안정되지 못한 사람이란 이유로, 남편 집에서는 나이 많은 며느리 볼 수 없단 이유로 반대했다"고 결혼 전 상황을 설명했다. 예전 일을 회상하던 부부는 "그 당시에는 영계잡았다고 난리였지" "그땐 그랬었지"라며 환하게 웃었다.

서로 신학을 공부한 교단도 달랐고, 이 목사는 노량진교회 전도사로 양 목사는 사회 시민운동가로 각각 다른 위치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이들에겐 특별한 결혼 조건이 있었다. 내세운 조건은 단 하나, "서로의 일을 존중하자"는 것. 양 목사는 자신을 스스로 '페미니스트(feminist)'라고 지칭하며 남편 이 목사는 '휴머니스트(humanist)'라고 표현했다.

당시 양 목사는 기독교여성평화연구원의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었고 이 목사는 장로회신학대학원 3학년 학생이었다. 두 사람은 젊은 신학자들이 초교파적으로 모여 신학을 교류하고 실천사상에 대해 고민하는 '기독교학술연대회의' 모임을 통해 첫 만남을 이룬다.

양 목사는 학술연대회의의 회원이었고, 이 목사는 한 선배의 권유로 이 모임에서 한 달에 한번 발간하는 동인지 제작을 돕기 위해 합류하게 된다. "일 때문에 메일을 주고 받다가 서로 사는 얘기도 덧붙이며 점점 호감을 갖게 됐죠. 거의 매일 썼는데 한 3백여 통 보냈을 거예요. 근데 답장 받은 편지는 몇 통 안돼요." 이 목사는 보고싶은 마음에 양 목사의 집에 전화를 걸면 장모님이 쌀쌀맞게 전화를 받았었다고 짐짓 서운했던 마음을 토로했다.

결혼식은 단촐하면서도 특이했다. 화려한 웨딩드레스도 없었고 신랑신부가 동시에 입장했다. 축가도 '함께가자 우리 이 길을'이란 민중가요를 부분 개사한 곡이었다. 양 목사는 "웨딩드레스는 마치 공주가 백마 탄 왕자를 만나러 가는 것처럼 '신데렐라 환상'을 갖게 해서 결혼식이 '신부의 날'처럼 여겨지는 것 같아 입기 싫었다"며 "평상복을 입고 남편과 같이 하객을 맞으니 결혼식에 온 하객들이 몰라보고는 신부는 어딨냐며 찾는 등의 재밌는 해프닝도 일어났었다"고 말했다.

시댁에 살림을 꾸리고 혼수는 서로 사용하던 물건을 합쳤다. 새로 구입한 것은 TV와 전화기 뿐. 그렇게 결혼비용을 절약하고 두 사람은 이집트와 이스라엘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양 목사는 "성지순례는 우리에게 잊지 못할 여행이 됐고 일생의 값진 교과서가 됐다"고 회고했다.

하나님의 계획 안에 하나가 된 이들 부부는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도왔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이 목사는 "IMF 이후 사회 소수자들에 대한 관심이 증대했고 끊임없이 사회를 위해 노력해온 부인과 같은 길을 6년전부터 걷게 됐다"고 전했다. 또 교단이 다르다는 이유로 부부간의 마찰이 있었던 적은 한번도 없었다고 한다. 양 목사는 "예수님이 언제 교단을 찾으셨는가"라고 반문한 뒤 "차이가 있으면 인정하면 되는 것"이라며 "최선을 다해 하나님 사업을 위해 부끄럼 없이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자신이 정확한 정체성을 갖고 있으면 문제될 게 없다고 생각해요. 결혼 초에는 목사 부인이라는 인식때문에 정체성의 혼란이 약간 있었지만, 기장에서 목사안수를 받고나니 내 정체성도 정립되고 우려하던 주변 목소리도 잦아들었죠." 양 목사는 자신들과 같은 '에큐메니칼 부부'가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시어머니도 양 목사를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한번도 며느리 자질에 대해 잔소리 하신 적이 없어요. 집에서만 살림해야 한다는 옛날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결국 제가 하는 일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시며 오히려 거들어 주셨죠." 함께 '사회 선교'의 길을 걷고 있는 이들 부부의 기도제목은 '아프지 않는 것'이다.

이 목사는 "서로 너무 바빠서 얼굴 볼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며 "한번은 몽골 울란바타르 공항에서 만나 5분 동안 미팅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오는 5월 중 필리핀에 영어로 된 인터넷신문을 창간할 예정이다. 필리핀 현지 사람들을 직원으로 채용해 장애인과 빈곤 속 여성ㆍ아동들을 대변하는 신문을 만들거라 했다. 반면 양 목사는 1년 반정도 공부를 하며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다고 했다.

인터뷰 내내 이 목사가 부인을 부르는 호칭은 '양 목사'였다. 반대로 양 목사에게 평소 이 목사를 어떻게 부르냐고 묻자 '남편'이라고 한단다. 부부이기 이전에 친구같은 강한 동지애가 느껴진다는 이들 부부. 손 잡는 것도 쑥스러워 했지만 누구보다도 서로를 깊이 사랑하고 의지한다는 것을 눈빛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오선지 위에 놓인 소프라노와 알토 음계같이 표현하는 색은 달라도 하나의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는 두 사람은 진정한 에큐메니칼 부부였다. 이들 부부의 모습처럼 미래의 한국교회가 진정으로 하나가 되는 그 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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