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전하는 지역 '살림꾼'

복음 전하는 지역 '살림꾼'

[ 교단 ] 이웃교단이웃교회/창립 40주년 맞는 옥수동루터교회

정보미 기자 jbm@kidokongbo.com
2006년 06월 15일(목) 00:00
   
사진은 옥수동루터교회 외곽 전경 모습.
1960년대 당시 대표적 피난촌이던 서울 옥수동에 지역을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지역봉사일꾼들이 모였다. 그리고 1968년 2월 18일 그 자리에 옥수동루터교회(박성완목사 시무)가 설립됐다. 시초부터 낙후된 지역 개발과 지역 주민들의 복지를 위해 설립된 교회. 옥수동루터교회는 그렇게 산동네를 주님의 거룩한 이름으로 장악하기 시작했다.

루터교는 중세교회가 성서적 신앙을 멀리하고 타락했던 1517년 마틴 루터의 종교 개혁에 의해 시작된 개신교의 장자 교단이다. 우리나라에는 다른 교단보다 70여 년이나 늦게 도입되어 아직은 그 규모가 작지만, 전 세계적으로 보면 장로교나 감리교보다 크다고 할 수 있다.

옥수동의 지역선교를 위해 1967년 파송된 이무열목사의 손에 세워진 옥수동교회 선교부가 처음 시작한 사업은 화장실 개량과 하수관 매설 공사 작업. 산동네인 이곳의 하나뿐인 하천에는 늘 생활하수와 오물들이 그대로 방류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교회에서는 집집마다 화장실을 보수하고 하수관을 매설해 주면서 동네 환경을 변화시켜 나감으로써 지역사회에서 교회의 위치를 굳건히 자리매김 하게 되었다.

   
어른 설교에 앞서 진행되는 어린이 설교시간. 강대상 앞에 둥그렇게 모여 앉은 어린이들이 박성완목사의 설교에 귀기울이고 있다.
그 후 1972년 제2대 담임목사로 김해철목사(증경총회장)가 취임하면서 '주부학교'를 개설해 코바늘 실습, 아동심리 상담 등을 교육하고 옥수동 지역 내의 중ㆍ고등학생을 위한 도서실과 루터유치원을 개원했다. 또 옥수동교회는 학생 신앙강좌와 부흥회를 인도하며 믿음 훈련에 매진하고 전국적으로 유명한 베델성서강습회(성서편) 제1기가 개강되었던 3ㆍ4대 담임을 거쳐 1979년 교단 총회에서 지원받아 운영되는 기존의 루터교 시스템을 벗어나 자립교회를 선언하게 된다.

대외원조가 중단되어 기존 사역이 힘들게 되었을 무렵, 현재 시무하고 있는 박성완목사가 제5대 교역자로 부임하며 옥수동교회는 갑작스럽게 변화한 환경 속에서도 살아있는 예배를 추구하는 '의식(儀式)교회'로 성장한다. 박 목사는 "예배는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가는 순례의 길의 축약이다"라고 예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때문에 옥수동교회는 타교단 및 동교단의 예배형식보다 엄숙하게 치러진다.

특히 박 목사가 초를 들고 입장하며 예배시작을 알리는 촛불점화와 매주 행해지는 성찬의식이 그렇다. "촛불점화의 예식은 구약성서의 등대와 등잔을 상징하는 것으로 우리의 대장되시는 주님을 따라가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는 예배를 생명처럼 중시했던 초대교회의 형식을 빌린 것으로 일방적 예배가 아닌 하나님이 찾아오시고 성도들이 그에 응답하는 대화적 예배형식을 갖추고 있다. 예배형식의 초점은 절대 성서적인 것에 맞춰져 있다. 여기서 '성경적인가, 성경적이지 않은가'로 구분하는 루터교의 원칙이 드러나는 것이다.

또한 옥수동루터교회만의 특별한 점은 예배 중에 설교시간이 두 번 있다는 것이다. 박 목사는 어른설교에 앞서 아이들 설교시간을 따로 마련해 어린이들을 강대상 앞에 둥그렇게 모여 앉히고 도란도란 예수님 이야기를 들려주며 대화를 나눈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눈높이에 맞춘 이 특별한 예배형식으로 인해 어린 시절부터 예배의 중요성을 몸소 체득하게 된다. 찬송시간에도 '여성 한 소절, 남성 한 소절, 마지막은 다같이'의 순서로 부른다. '찬송'은 단지 부르는 것만이 아닌 듣기도 해야 한다는 것이 박 목사의 설명이다.

전체 재적교인은 4백 명 남짓으로 장년예배 1백50명, 교회학교 1백10명이 출석하는 소규모 교회이나 작은 고추처럼 맵고,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교회다. '작은 고추처럼 맵다'는 이유는 옥수동교회 성도들이 담임목회자를 1년에 두 번 중국으로 보내 베델성서를 강의할 수 있도록 돕고, 국내에서는 루터신학교 교수로 또 베델성서 전임강사로 한국교회 지도자를 양성 및 교육시키는 일에 누구보다도 적극 후원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2562

   
옥수동교회의 예배 장면.
또 '배보다 배꼽이 크다'는 이유는 작은 규모에 비해 교회가 지역사회의 등대지기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옥수동교회는 옥수동에서는 가장 큰 건물로 예비군 교육장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선거시에는 투표소로도 쓰인다. 또 동사무소와 연계해 정류장에 쉼터의 공간을 마련하고 지역 노인들 경로잔치를 후원하는 등의 복지사업을 펼치고 있다.

'지역사회를 향한 디아코니아'를 목표로 이미 70년대부터 주민들의 자립지원 사업에 발 벗고 나선 옥수동교회는 옥수동지역 무직자들에게 청과물과 리어카를 무상으로 공급한 뒤 장사에 나서도록 하고 벌어들인 수익금을 저축하게 하며 자립기반을 닦아주고 미용과 컴퓨터교육을 실시하는 등 주민들의 발전적 미래를 위해 충실한 가교역할을 감당해 왔다.

현재는 지역 빈민가정 2곳을 선정해 매달 소정의 생활비를 지급하고 학비마련이 어려운 중ㆍ고등학교 학생들의 재정적 후원을 맡고 있다. 이에 대해 박 목사는 "이웃을 돌보는 일은 교회가 해야 하는 기본적인 일" 이라며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실천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당연한 과제라고 덧붙였다.

그밖에도 교회 내에 '선한 사마리아회'라는 모임을 조직해 지난 10여 년간 매달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찾아가 목욕을 시켜주고 있으며 꽃동네, 서울대병원, 영등포시립병원 등에서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있다. 이처럼 40여년이라는 세월동안 교인들이 흘린 땀과 정성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옥수동터전, 이곳이야말로 교회가 지역 희망의 빛이 되어 진정한 그리스도의 복음과 사랑을 싹틔운 곳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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