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의 변천사

청계천의 변천사

[ 교계 ] 본래명칭 '개천', 조선시대에도 치수작업

안홍철 기자 hcahn@kidokongbo.com
2005년 10월 21일(금) 00:00
◆청계천의 변천사

'맑은 시내'란 뜻을 지닌 청계천은 서울의 한복판 종로구와 중구와의 경계를 흐르는 하천으로 길이 10.84 킬로미터,유역면적 59.83 제곱킬로미터이다. 북악산ㆍ인왕산ㆍ남산 등으로 둘러싸인 서울 분지의 모든 물이 여기에 모여 동쪽으로 흐르다가 왕십리 밖 살곶이다리 근처에서 중랑천과 합쳐 서쪽으로 흐름을 바꾸어 한강으로 빠진다. 본래의 명칭은 '개천(開川)'이었다.

조선 왕조 한양정도(漢陽定都) 당시 청계천은 자연하천 그대로여서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물난리를 일으켰고,평시에는 오수가 괴어 몹시 불결했다. 제3대 왕 태종 때 처음으로 개거공사(開渠工事)를 벌여 치수사업을 시작했다. 그후 영조 때에는 준설ㆍ양안석축(兩岸石築)ㆍ유로변경 등 본격적인 개천사업을 시행했다. 이때 내의 흐름이 비로소 직선화됐다.

순조ㆍ고종 때에도 준설공사가 계속돼 이 개천에 놓인 다리는 수표교(水標橋),오간수교(五間水橋),광교(廣橋),영미교(永尾橋),관수교(觀水橋) 등 모두 24개가 있었다. 일제강점기 초에는 근대적 도시계획의 성격을 띤 대대적인 준설공사가 이루어졌으며 이때 청계천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1958년 6월부터 복개공사에 착수,1960년 4월에 1단계로 광교∼주교(舟橋) 구간을 완공하여 너비 50 미터의 간선도로를 만들었다.

1967~1976년 청계고가도로를 건설, 상류에서 성동구 사근동까지 5.4 킬로미터 구간을 복개했다. 청계천 주변의 복개도로와 고가도로의 안전문제가 제기되자,1994년부터 2002년까지 두차례에 걸쳐 상판교체 보수작업을 하기도 했으나 구조물 노후에 따른 안전문제의 근원적인 해소,환경 친화적인 도시 공간 조성,서울의 역사성과 문화성 회복을 위해 청계천복원사업을 결정했고 2003년 7월 1일 청계고가로 철거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사업에 들어가 2005년 10월 1일 복원사업이 완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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