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적 회개' 촉구하는 일본의 양심

'민족적 회개' 촉구하는 일본의 양심

[ 교계 ] 한국선교사로 25년 사역, '사죄와 화해의 선교사' 자임

김보현 기자 bhkim@kidokongbo.com
2005년 08월 10일(수) 00:00

   
'사죄와 화해의 선교사'로 양국교회의 가교 역할을 감당해 온 요시다목사. 서울일본인교회와 영락교회에서의 목회 사역과 함께 양국 현안에 대한 기독교적 양심으로서의 사역도 감당하고 있다.
"우리 일본 민족에게 복음의 부흥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완고한 민족성이나 개인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이스라엘에게  애굽이 그러했듯 대한민국을 침략했던 일본이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기 위해서는 '민족적인 회개'만이 유일한 길이며 이는 교회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81년 한국 선교사로 부임, 25년째 서울일본인교회를 시무 중에 있는 요시다 코조목사(吉田耕三, 64)가 일본 복음화의 최대 걸림돌로 제시한 것은 다름 아닌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을 식민 지배한 과거에 대한 민족적 회개 사건의 부재'였다.

지난 1974년 한국교회 부흥의 전기가 되었던 여의도광장의 전도 집회에 참석, 한국 교회와의 첫 만남을 갖고 목회자로서의 선교적 관심을 아시아 이웃들을 향하게 되었다고 고백하는 요시다 목사는 "일본보다 교회나 목회자 성도의 숫자가 수십 배나 많은 한국에 '선교사'로 사역한다는 것이 어색하게 생각도 되었지만, 스스로를 '사죄와 화해의 선교사'로 규정하고 사역해 왔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고백과 같이 그는 종군위안부 문제는 물론, 독도 영유권 문제나, 역사왜곡 교과서 문제 등이 발생할 때면 언제나 빠짐없이 본국 정부나 언론사 등 관련자와 기관들에 서신등을 통해 항의의 뜻을 전달, 일본의 깨어있는 양심으로서의 일해 왔으며, 교회 사역을 통해 △재한일본인에 대한 전도 △일한 양국 교회의 선교 협력 △아시아와 세계 복음화 등의 목표 가운데서도 '일본 민족의 회개'를 늘 첫 머리에 강조해 왔다.

따라서 최근 소용돌이 속에 있는 일본 정국을 바라보는 요시다 목사의 눈을 전에 없이 예민할 수밖에 없다. 주변국가들의 요구를 묵살하며 신사참배를 강행하고 있는 현 총리에게 일찌기 참배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개인적 차원의 참배를 고집한다면 수상직을 그만둔 뒤에 할 것을 강력히 주장해 온 그로서는 우정 민영화 등을 둘러싸고 전개 되고 있는 현 체제의 위기가 단순한 일로만 볼 수 없는 사건이기에 더욱 그렇다.

존경받는 일본교회 지도자로 대표적인 지한파 목사이기도 했던 모리야마 사토시목사의 뒤를 잇고 있는 요시다 목사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으로 교회에 출석한 뒤 중학생이 되어 세례를 받기까지 그의 소망은 경찰이 되어 세상의 죄인들을 모조리 잡아들여 세상을 정화하겠다는 것이었으나 세례 이후에는 '죄를 짓기 이전에 예수님을 만나게 해주어 야겠다'는 결심으로 바꾸고 목회자의 길을 결심하게 된다.

일본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나고야에서 목회 중이던 요시다목사는 1975년 한국내 '한일 가정'들을 돌보기 위해 출범해 고인이 된 박치순 증경총회장을 비롯해 박석규목사(정릉교회 원로) 김형태증경총회장(연동교회 원로목사) 등 교계 원로들의 보살핌을 받아오던 일본인교회의 목회자로 청빙을 받아 사역을 시작하게 된다.

일본인교회는 그 특성상 매우 유동적이다. 국내에 거주하며 교회에 출석하는 대다수의 교인들이 대사관 근무나 직장 유학생 신분으로 2, 3년마다 순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 그래도 초창기부터 교회를 지켜온 노교우들 가운데 교회의 든든한 기둥같은 노성도들이 있어 교회는 흔들림이 없다.

동 교회가 지난 92년 성수역 인근에 독자적인 예배장소를 마련할 수 있도록 소중한 유산 중 일부를 제공해 준 후나모토집사나 구순이 가까운 나이에도 불구하고 매주일 오랜 교인은 물론 처음 오는 성도들을 구수한 경상도 억양의 한국어와 일본말로 다정하게 맞아주는 사토집사가 바로 대표적인 초창기 성도들.

교회 안에는 이러한 초창기 성도들과 함께 다양한 연령과 배경을 가진 한일 양국의 성도들이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나 평소 화해의 사역을 강조해 온 요시다목사이기에 교회 안에서는 국적보다 하나님 나라의 성도됨을 보다 강조한다. 동시에 양국 교회를 향한 뜨거운 사랑은 마치 구약시대의 예언자들과 같이 때로는 신랄한 어조로, 때로는 뜨거운 사랑의 언어로 표현된다.

특히 일본에서 한 사교집단의 독가스 살포 사건 이후 종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극도로 악화되면서 교회에 출석하던 어린이들이 부모들의 손에 이끌려 교회를 떠나가버린 사건을 그는 가슴 아프게 기억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민족의 구원을 위해서는 과거사에 대한 민족적 회개가 필요함을 고국을 방문할 적마다 강조했고 한 해 여름에는 동경에서 오끼나와까지를 한 달간 여행하며 무려 52회의 집회를 인도할 정도로 성경의 가르침을 동포들에게 전하기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고 있다.

   
1975년 시작된 일본인교회의 초창기 교인들, 건강한 모습으로 동 교회가 한일교회의 화해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쉬임없이 봉사하고 있다. 사진 좌로부터 후나모토집사, 사토집사, 요시다목사의 부인 요시다 야스코 여사.
그러면 그의 눈에 비친 한국교회는 어떤 모습일까. 무엇보다 먼저 '기도와 전도 봉사에 대한 열심'을 일본교회가 본받아야 할 첫번째 한국교회의 덕목으로 꼽는다. 뿐만 아니라 1919년 3.1운동을 통해 한국교회가 민족교회로서 동족들에게 끼쳤던 감동과 영향력을 한번도 발휘하지 못했던 일본교회의 현실을 안타깝게 자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랜 이웃답게 고언도 빼놓지 않는다. 비록 일본에서 수세자는 많지 않아도 일생 변치 않는 믿음과 비교되는 경우를 많이 보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신ㆍ불신 간의 구별이 없어진듯한 한국교회의 현실을 안타깝게 지적하면서도, 요즘들어 질적 성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교회 지도자들의 자성의 목소리에서 그는 희망을 보게 된다고 말한다.

인생의 황금기 사반세기를 우리의 가장 가까운 이웃으로 섬기며 함께해 온 요시다 목사가 양국 교회를 위해 요즘도 힘쓰고 있는 일은 '교류 사업'이라 할 수 있다. 한국교회의 좋은 모습들을 가장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그이지만 동시에 뜨거운 선교적 열정이 언어와 문화는 물론 상대방에 대한 이해의 부족으로 결실없이 사그러지는 모습들을 수없이 보아온 터인지라 열정이나 자원보다 이해와 섬김의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또한 한국교회를 향해 조용한 목소리로 깨우쳐 주기도 한다.

젊은이들 간의 만남, 한국을 배우려는 동포들을 위해서는 만사를 제쳐놓고 도와온 터인지라 '만남'만이 줄 수 있는 변화의 시작과 그로 인한 미래의 희망이 분명함을 그는 추호도 의심치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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