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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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세상 ] 유니세프 주최 환경사랑 맨발걷기대회

안홍철 기자 hcahn@kidokongbo.com
2005년 06월 21일(화) 00:00
마르셀 카뮈 감독이 브라질 리오 축제를 배경으로 만든 '검은 올페(Black Orpheus)'라는 영화가 있다. 주인공 올페가 빈민가 언덕 위에 기타를 들고 나타나면 맨발의 아이들이 몰려와 그에게 해를 떠오르게 해달라고 조른다. 그가 기타를 연주하면 해가 태평양 저편에서 솟아오르기 시작한다. 인종차별과 극심한 빈부격차…,그 속에서도 꿋꿋한 희망을 보게 하는 영화다. '맨발'은 그렇게 가난을 상징하는 기제로 곧잘 등장한다.

믿기 어렵지만 지구촌엔 아직도 신발을 신지 못하고 지내는 아이들이 많다. 아프리카나 남미의 가난한 나라들의 풍경을 보면 대개 여인들은 아이를 업고 구걸하고,남자들은 술에 취해 길에 누워있고,어린이들은 맨발로 다닌다. 유리에 찔려 피가 나기도 하고 발뒤꿈치는 갈라져 거북이 등처럼 변하기도 한다.

이처럼 신발도 사 신지 못할만큼 가난한 어린이들의 고통을 생각하며 사랑을 나누자는 취지의 맨발 걷기 행사가 지난 18일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서울 남산 순환도로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엔 지난 1995년 이 행사가 시작된 이래 11년 째 맨발로 남산을 걸어온 현승종 전 국무총리(86세)를 비롯해 2천5백여 명의 초중고교 학생들과 교사,학부모 및 일반인들이 참여했다.

올해로 11년째 유니세프 한국위원회(회장:현승종)가 주관하고 있는 맨발 걷기행사는 북한 어린이 돕기,이라크 어린이 돕기 등 해마다 테마를 달리 정해 행사를 추진해 왔다. 현승종 회장은 "이 세상엔 여전히 신발 하나 없어서 맨발로 다니는 불쌍한 어린이들이 많다"며 "그들의 고통을 공감하는 동시에 그들을 도와주고자 하는 마음을 다짐하기 위해서 이 행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특히 올해의 환경사랑 맨발걷기대회는 어린이들에게 더 좋은 환경을 물려주자는 취지에서 국내의 한 정유회사가 후원했다.

남산 국립극장을 출발,3.5킬로미터에 이르는 남산순환도로를 걷는 개인과 가족 및 단체 참가자들의 얼굴엔 웃음꽃이 활짝 폈다. 그것은 아마도 푸른 신록이 우거진 아름다운 남산을 산책하는 동안 참가자들은 헐벗고 굶주린 지구촌 어린이들의 고통을 생각하는 한편 그 어린이들과 함께 살아갈 미래를 생각하면서 더불어 나누는 기쁨을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미아 3동에 위치한 영훈초등학교 4학년 차유진 어린이(새문안교회 초등부)는 학교 컵 스카우트 대원들과 함께 참여했는데 "우리나라도 6.25전쟁 이후 오랫동안 가난할 때 유니세프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선생님께 들었다"며 "이제 우리나라가 잘 사는 나라가 되어 남을 돕는 것은 그때 우리가 진 빚을 갚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유진 양은 "신발을 신지 못하는 친구들을 생각하며 맨발로 걷는 것은 예수님께서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명령을 따르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또 아시아나 항공 승무원들도 이날 대회에 동참했다. 아시아나 항공은 유니세프 협력기업으로 항공을 이용하는 여행객들이 해외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생긴 잔돈을 모금하는 기내모금 '체인지 포 굿(Change for Good)'을 통해 유니세프에 후원을 하고 있는데 이날 비번인 승무원 80명이 함께 참여해 맨발체험을 했다. 끝내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는 한 승무원은 "처음엔 망설여졌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참여할 줄은 몰랐다"며 "와서 맨발로 걸어보니 어려운 아이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고 앞으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발대식 사전행사엔 한스 밴드가 출연해 자신들의 인기곡과 함께 피날레를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을 불러 마치 찬양집회처럼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또한 이날 행사엔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친선대사인 패션디자이너 앙드레 김과 영화배우 안성기,장진영 씨 등 유명 연예인이 함께 참석, 환경운동 캠페인도 벌였다. 이날 참가자들은 어린이와 학생은 4천원,어른 5천원,가족 1만원의 등록비를 낸 후에 생수와 노란 손수건을 하나씩 받았다. 가급적 휴지 대신 손수건을 사용하자는 이 노란 손수건 캠페인은 음식을 먹고 난 뒤 입을 닦거나 땀을 닦을 때 휴지 대신 손수건만 사용해도 아깝게 베어지는 나무를 크게 줄일 수 있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기 위한 것. 이날 맨발걷기대회에서 생긴 수익금은 헐벗고 굶주린 지구촌 어린이들을 위한 사업에 쓰일 예정이다.

이와 함께 맨발걷기 시작에 앞서 참가자들은 나비 날리기를 통해 환경사랑과 이웃사랑 정신을 하늘 높이 띄워 올렸다. 국립극장을 출발하여 백범광장까지 3.5킬로미터의 거리를 걷는 참석자들은 남산의 싱그런 바람과 흙냄새,따사로운 오후의 햇살과 함께 하나님께서 주신 아름다운 자연을 만끽하며 오랫동안 기억될 휴일을 보내는 것 같았다.

순환도로에서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잠시 쉬는 동안 산중턱의 노송 한그루가 맨발의 군중들을 굽어보고 있었다.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마치 어느 시인의 구절을 속삭여 주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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