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의 꿈' 품고 멕시코로 가다

'선교의 꿈' 품고 멕시코로 가다

[ 교계 ] 멕시코 이민 1백년 선교 현장을 가다. <완>

김훈 기자 hkim@kidokongbo.com
2005년 05월 18일(수) 00:00
1백년 전 낙원을 꿈꾸며 멕시코 땅을 밟았던 슬픈 이민 역사를 뒤로 하고, 이제는 멕시코 복음화를 위해 국경을 넘는 한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미국 한인교회와 단기선교팀이 매월 멕시코 국경을 넘어 실천하고 있는 섬김을 통한 복음 전파의 현장을 본보 편집국장 김 훈 장로가 취재했다. <편집자 주>

   
남가주광성교회를 주축으로 한 LA 지역 한인 교회 교인들은 매월 국경을 오가며 멕시코 원주민을 위한 섬김과 나눔의 삶을 실천하고 있다.

지난 3월 부활절을 한 주 앞둔 토요일 새벽 미명에 남가주광성교회(권홍량목사) 주차장으로 하나 둘씩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한 주간 열심히 일한 노동의 대가를 여행과 낚시, 골프 등으로 푸는 주말 일상이 자연스런 미주 한인들에게 토요일 새벽은 꿀맛같은 단잠에 깊이 빠져 있을 시간. 하지만 이들은 벌써 수 년째 매월 한번씩 자신과 가족들만의 소중한 시간을 멕시코 단기선교를 위해 쓰고 있다.

권홍량목사와 남가주광성교회 교인들을 주축으로 치과의사 약사, 이미용사, 조리사 등 다양한 계층의 직업인들로 이루어진 단기선교팀은 오전 7시경 로스엔젤레스를 출발해 약 5시간동안 쉬지않고 프리웨이를 달려 미국 남부 국경도시인 엘센트로에 도착했다. 미국 국경을 통과해 멕시코 국경에서 공안원들에게 차량과 수하물 검사를 받은 차량이 다시 20분쯤 달리자 황톳바람 날리는 사막도시 멕시칼리가 우리 일행을 맞았다.

   
마야족의 후예인 멕시칼리 지역 멕시코인들에게 단기선교팀은 사진을 찍어 즉석에서 인화해 주었다. 이들의 얼굴 속에 멕시코 선교에 미래가 담겨 있는 듯 하다. 좌측상단으로부터 아래로 아이들에게 나눠줄 부활절 달걀 데코레이션을 만들고 있는 임헌진 사모와 이동식 치과 도구로 진료 중인 이찬용 장로, 능숙한 솜씨로 현지인들의 머리를 다듬고 있는 손정순 집사.
임원석선교사가 세운 바하캘리포니아장로회신학대학에 들러 학생들에게 지급할 점퍼와 의류를 내리고 인근 교회에 도착한 단기선교팀 일행은 아침부터 선교팀을 기다려 온 현지 주민과 어린이들에게 둘러쌓여 간단한 요기도 하지 못한 채 각자의 업무 분담에 따른 선교 봉사에 들어갔다. 치과의사인 이찬용장로(나성한미교회)는 교회 입구의 작은 방에 켜켜이 쌓인 먼지를 쓸어내고 이동식 치과 의료도구들을 가지런히 정돈한 후 아이들부터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환자들을 맞았으며, 미용사인 손정순집사 자매도 순서를 기다려 온 주민들의 머리를 예의 능숙한 가위 손질로 다듬어주기 시작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와 멕시코를 나누는 바닷가 국경굨 아메리칸 드림을 쫓아 바다에 뛰어들었다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명단이 게시돼 있다.
권홍량목사의 부인 임헌진 사모와 조순이집사는 아이들에게 나눠줄 부활절 달걀 데코레이션과 두통약 소화제 영양제 등 처방이 필요없는 약제들을 나눠주는 일을, 권홍량목사는 간단한 말씀 선포에 이어 아이들의 사진을 디지털카메라로 찍어 즉석에서 인화해 나눠주는 일을, 또 김동례권사는 간식 준비를 도맡았다. 신학교 주방에서 아이들에게 나눠줄 햄버거 고기가 적당히 익을 무렵 아무런 장식이 없어 작은 목소리에도 웡웡 울리는 작은 예배당 안은 1백여 명의 아이들이 저마다 떠들어대는 요란한 스페인어 소음이 절정을 이루었다.

기자는 처음에 이런 저런 광경을 담기위해 사진을 찍다가 아이들에게 포위당한 후 본분(?)을 잊은 채 아이들을 차례로 세우고 손가락이 아플 정도로 끝도 없이 셔터를 눌러야 했다. 사진찍기에 재미들린 아이들이 자기 부모와 친척들까지 데리고 와 찍어달라고 귀염을 떠는 바람에 기자의 예정에 없던 사진사 역할은 컬러 인화지가 떨어질 때까지 쉼없이 계속되었다.


* 취재 뒷 이야기

중미 멕시코 땅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발을 디딘 한인들은 자신들이 꿈속에서 그리던 낙원 대신 지옥을 경험해야 했다. 그들은 애니깽 농장에서 중노동에 시달리며 노예 처럼 팔려갔다. 하와이 이민자들이 초기에 겪어야 했던 삶의 애환에 대해 풍문으로 들었던 이들은 멕시코 땅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그래도 하와이 보다는 낫겠지 하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린 것은 돼지보다 못한 고통스런 삶의 연속이었다.

1백년 전인 1905년 4월 4일 제물포에서 영국 상선 일포드호를 타고 고국땅을 떠난 1천30여 명의 멕시코 이민자들은 5월 15일 살리나 끄루즈항에 상륙했다. 1백년 전에 있었던 희대의 사기이민은 이 한 차례로 끝났다.

2000년 미국 인구 통계국 자료에 따르면 캘리포니아 인구 중 32.4퍼센트가 히스패닉계(라틴아메리카 출신)이고 이들중 대부분이 멕시칸이라고 한다. 과거 1백60여 년 전에는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여러 주가 멕시코 땅이었으며 약 2천6백킬로미터에 달하는 기나긴 국경을 마주하고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기자는 멕시코 선교현장 취재를 위해 티후아나와 멕시칼리, 두 곳의 국경을 통과하면서 두만강을 사이에 둔 중국과 북한의 대비되는 풍경을 떠올렸다. 기후와 지리적 조건 등에 차이가 있을 수 없는 이곳에서 국경은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두 개 인접해 놓은 것에 불과했지만 양분된 땅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의 질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다르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인접한 멕시코 땅 멕시칼리로 가는 길에 잠시 들른 바닷가 국경. 아메리칸드림을 안고 바다에 뛰어들었다가 죽어간 수많은 멕시코인들의 비극적 현실이 과거 1백년 전 한인 이민자들의 슬픈 역사와 오버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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