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그곳에 교회가 있었네"

"금강산, 그곳에 교회가 있었네"

[ 교단 ] 일제 치하, 기독교수양관 건립됐던 곳, 현대 직원 위한 교회 세워져

김보현 기자 bhkim@kidokongbo.com
2005년 03월 29일(화) 00:00

'천하 제일 명산'이라는 수식어가 과장 만이 아님은 금강산의 겉자락만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사실.

산세와 풍광이 빼어난 이곳은 유람객의 발길은 물론이고 오랜 역사 속에 많은 종교를 초월해 많은 이들이 찾아 신앙을 수련했던  곳이기도 하다. 특히 기독교 역사에 있어 이곳에는 일제 치하에서 이곳 온정리에는 전국 교회의 모금을 통해 기독교 수양관이 세우졌던 현장이기도 하다.

금강산에 세워진 수양관에 대해서는 본 교단 총회 회의록에 그 출발부터 마지막 강제 철거를 당하기까지의 과정이 소상하게 기록돼 있다.

총회가 금강산에 기독교에 수양관을 건립한다는 계획을 수립한 것은 1925년 경으로 같은 해 9월 열린 제14회 총회에서는 '금강산에 교역자 휴양소를 설치하도록 하고 이를 위해 총독부와 교섭하도록 결의'함으로써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됐다.

이러한 논의가 이듬해 총회 때에는 대략적인 건축 규모와 용도 등이 정리되고 교섭 또한 본격적으로 추진됐던 것으로 기록돼 있다. 1926년 열린 제15회 총회 회의록에 따르면, 8천 평의 대지 위에 세워질 시설은 강당과 기숙사, 운동자 등의 시설을 갖추고 본관 건물을 석조 건물로 건축 허가를 추진하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같은 해 12월 21일 마침내 정식 명칭 '금강산(온정리) 기독교수양관' 건립 허가를 총독부로부터 얻게 되고, 이듬해에는 이를 위한 기부금 모금까지 인가받게 됐다.

그러나 수양관 건립 모금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함에 따라 제6대 총회장을 지낸 한석진목사가 시무중이던 신의주제일교회를 사임하고, 전국을 순회하며 모금 동참을 호소해 마침내 1931년 건물을 완공하고, 9월 11일 제20회 총회 유치와 함께, 8천 평 대지 위에 2백32평 규모의 2층 건물로 지어진 수양관 헌당식을 갖게 되었다.

이 건물이 비록 본 교단의 주도로 세워지게 됐으나 조선감리회 역시 축하와 동참의 심정으로 도로 수선과 초석을 기증했다는 사실을 총회록은 소상히 기록하고 있다.

이후 총회가 열렸던 이곳 수양관은 1938년 5월에는 전국 제직 수양대회를 유치하기도 했으나, 이듬해 11월 30일 일제는 금강산 수양관의 국유 임야 대부 기간 만료에 따른 총회의 연기 신청을 반려함에 따라 사실상 수양관의 활용을 저지하였으며, 마침내 1941년 6월 30일 완공된 지 불과 10년이 채 되지 못하여 철거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현재 현대 아산을 통하여 집중적으로 개발되고 있는 지역이 고성군 온정리 일대로 금강산 기독교수양관이 세워졌던 역사적 현장과 깊은 관련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이번 기도회에 참석했던 교회 지도자들을 새로운 감회에 빠지도록 하기도 했다.

금강산기독교수양관은 일제에 의해 철거된 뒤 해방 지후 분단과 한국전쟁의 와중에 관심에서 멀어져 재건은 물론 이곳에 과거 전국교회들이 모금에 동참해 수양관을 건립하고 총회를 유치했었다는 사실조차 기억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천하 제일 명산' 금강산에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아름다움과 함께, 불교 사찰을 재건하고 남측의 승려가 상주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작지만 의미있는 교회가 세워져 있음을 이번 방문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현재 금강산 내에는 현대 아산직원과 조선족 동포들을 포함해 약 4백 명 가량의 인원이 상주하고 있다. 최인식본부장을 비롯해 모든 직원들은 장전항 인근의 '금강빌리지'라는 이름의 컨테이너박스로 꾸며진 거주 시설에서 지내고 있는데 바로 이곳 안에 '금강산교회'라는 이름의 교회가 세워져 직원들의 신앙생활과 함께 직원 간의 친교와 힘이 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는 목회자도 없고, 집회 시간 또한 평일과 주일이 구별없는 업무 특성상, 주일 오후 9시 30분에 모여야 하는 어려움이 있음에도, 매주 5, 60명의 인원이 참석하고 있다. 특히 구역별 지난 종려주일에는 무려 1백여 명이 참석해 컨테이너를 개조해 만든 예배당이 가득 채워지기도 했다.

현재 금강산 관광 업무를 지원하는 현지 직원들의 경우는 단체 방문객과 관광객들을 위한 일정 진행에 하루 종일 분주한 일정을 보내고 있다. 비록 언어적 장벽이나 음식물로 인한 어려움 등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남쪽에서는 어느새 생활과 업무의 일부가 되어버린 초고속 인터넷이나 휴대전화는 물론 신문을 대하기도 어렵고, 무엇보다 지척인 남쪽과의 간단한 통화도 현재는 몇 국가를 거치는 국제전화를 이용해야 하는 상황이다. 뿐만 아니라 집안의 대소사가 발생해도 이해만을 바랄 뿐 선뜻 시간을 내어 나올 수 없는 것 또한 이곳에 근무하는 이들이 감내해야 하는 어려움 중 하나이다.

이러한 이들이 그래도 주일이면 모여 말씀을 읽고 기도와 찬송을 드리며, 남북의 동포들의 한 자리에 모여서 함께 예배 드릴 수 있고, 자유롭게 왕래하며 형제 자매된 사랑을 맘껏 확인할 수 있는 날들을 간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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