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들이 지키는 교회

해병들이 지키는 교회

[ 미션이상무! ]

전이루 목사
2024년 10월 16일(수) 09:53
소나무들이 강력한 태풍으로 해병 강화교회 앞에 쓰러졌다.
모든 것이 낯설었지만, 해병들과 친해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필자가 특별히 사교적이어서가 아니라 해병대 인원들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친화력 때문이었다. 아무리 명백한 하급자라도 필자는 초면에 대뜸 말을 놓는 것을 어려워하는 사람이다.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목사인 주제에 낯가림도 없지 않아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병들은 처음 만난 나에게 그런 거리를 허용하지 않았고, 자신들을 존대할 때마다 자기가 뭘 잘못한 게 있냐며 반말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았다. 해병들은 능글맞으면서도 윗사람의 기분을 맞출 줄 알았고, 활기차고 예의가 발랐다. 해병대 구성원들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20대 남성들이 대부분이었다.

강화의 부대는 강화 전 지역에 걸쳐 산개해 있어 예배를 위해 주일마다 강화 전 지역에서 각 부대 차량들이 강화교회로 예배 인원을 수송한다. 주일마다 강화 전방, 서측, 남단에서 오는 차량과 거기서 내리는 반가운 얼굴들은 언제나 감사한 것이었다.

어느 여름날 태풍이 강화와 서해안 일대를 덮쳤다. 태풍은 생각보다 강력했고, 김포 강화 전 지역에 크고 작은 피해가 있었다. 그날은 토요일이었다. 다음날 주일예배를 준비하기 위해 교회에 출근했다. 수십 년간 교회 곁을 아름답게 감싸고 있던 소나무들이 쓰러져 교회에 진입할 수가 없었다. 얼마 전까지 살아서 물을 빨아올리던 나무 기둥은 사람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정도의 무게감을 자랑했다. 종탑 위의 십자가도 어디론가 날아가 있었다. 본부도 태풍 피해가 심해 영외에 있는 교회를 바로 지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예배는 불가능했다. 본부에 예배가 불가능함을 통보했으나, 통신선 복구가 더뎌서 예하 부대로의 전달도 쉽지 않았다.

교회에 들어갈 수도 없어서 군종병과 교회 마당에 앉아 있는데, 이런 사실을 모르는 해병들이 예배를 드리러 왔다. 여느 주일과 마찬가지로 교회로 차례차례 들어오는 차량들과 거기서 내리는 해병들을 보면서 비상 상황에 예배 인원들을 보내준 부대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고, 교회 꼴이 이래서 미안했다. 교회에 모인 여러 부대의 해병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젖은 나무들을 들어내기 시작했다. 누가 시키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게 그날 예배는 가능했다. 교회는 하나님을 기억하고자 모이는 사람들의 자발성으로 교회가 된다. 부끄럽지만 부족하고 덜떨어진 군종목사인 나는 그날에서야 뒤늦게 해병들과 내가 하나의 교회를 이루고 있음을 깨달았다.

전이루 목사 / 해군항공사령부 군종실장·해군포항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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