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소의 길에서 교회의 지속가능성을 보다

축소의 길에서 교회의 지속가능성을 보다

[ 6월특집 ] '축소시대, 교회의 역할' ④ 재정축소, 선교축소 시대, 교회의 대안

오창우 목사 hmpyo@pckworld.com
2024년 06월 21일(금) 00:36
'축소시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축소시대'라는 용어는 성장시대와 반대되는 용어이다. 팽창시대와 수축시대 역시 같은 의미이다. 더 이상의 성장이나 팽창은 없고 축소와 수축으로의 시대적 변화만이 살길이라는 의미이다. 축소시대를 대표하는 단어가 저출산과 고령화이다. 기후변화와 고금리 그리고 물가폭등이 그 뒤를 따르고 있다. 실제로 지인이 출석하는 한 개척교회는 대지를 구입하고 새 예배당을 건축하는 등 호기롭게 교회성장을 꿈꾸었다가 코로나와 고금리의 고통 속에 교인은 늘지 않고 매달 내야 할 이자는 두 배 이상으로 늘어 목회자의 생활비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는 형편이 됐다.

노회 안의 교회들 중에는 예배당을 건축하기 위해 대출을 받았다가 그 여파로 이자 내기도 벅차 목사님이 은퇴를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교회도 있다. 이런 형편이다 보니 선교비를 줄이지 않을 수 없는 상황까지 도래한다.

하지만 필자가 목회하고 있는 교회는 이미 십수 년 전부터 이런 상황이 시작됐다. 우리 교회가 속한 이태원, 한남동 지역은 뉴타운으로 지정되고 난 이후에 전혀 다른 동네가 됐다. 땅 투기가 시작됐고, 지역 원주민들은 집을 팔고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했다. 남은 이들은 거의가 지역을 기반으로 생활하는 영세민들이었다. 24시간 영업하는 동네는 취업이 쉬웠기 때문에 가진 것이 없어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사람들에게는 이 지역만큼 생존에 좋은 환경이 없었다. 그야말로 생존의 문제를 가지고 살아가는 이들이 우리 교회의 교인들이었다. 한편 인근의 보광초등학교는 물론 한남초등학교가 존폐의 위기에 몰려 있었다. 그나마 다문화가정의 자녀들로 인해 학교가 겨우 연명되고 있었다. 하긴 필자가 39년 목회하는 동안 이태원 지역에는 어디에도 학생들이 다닐 만한 학원 하나 없었고, 교육환경은 그야말로 제로였다. 당시 우리 지역은 더 이상의 성장이나 팽창은 기대할 수 없었다. 그 사이 우리 교회 역시 전도대회, 제자훈련, 셀, 알파 등 해보지 않은 프로그램이 없을 정도로 목회자나 교인들 모두 힘들게 노력을 해 왔다. 하지만 파도처럼 몰아닥치는 환경의 고통을 헤어나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는 무엇을 어떻게 운영해 나갈 것인가?



#축소의 시대, 그래도 비전은 이루어진다



우리 교회는 미래교회비전계획을 수립했다. 오랫동안 고민하고 방향을 설정한 내용을 가지고 교인들과 토론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21세기 교회성장 비전'이라는 이름으로 교회에 발표하고,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교회의 존재 가치와 문화를 심기 시작했다. 그 계획은 시차적인 우선순위의 차이는 있었지만 하나하나 이루어갈 수 있었다. 교인과 재정이 축소되는 상황에서도 성장비전으로 세워진 계획을 교인들이 하나씩 감당해내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원텐텐(한 사람이 10만 원씩 헌금하는 10명)' 운동으로 100만 원을 후원하는 선교사 두 분을 지금까지 쉬지 않고 파송하고 있다. 적게는 20만 원을 후원하는 협력선교사와 선교단체 등도 20여 곳이다. 국내 자립대상교회 역시 10여 곳이다. 지역사회의 차상위계층을 후원하는 '용산한가족 결연사업'도 36가정이 있다. 위탁시설로는 구립노인요양원과 구립어린이집 그리고 서울시키움센터를 맡아 운영하고 있다. 절기를 중심으로 어려운 이웃을 돕는 구제사업 역시 쉬지 않고 진행하고 있다. 이런 일들을 통해 지금도 깨닫는 것은 교회가 함께 미래를 논의하여 준비한 비전 성취는 축소시대의 희망이 된다는 것이다.



#축소의 시대, 인간 경영이 아닌 하나님의 경영



교회 운영을 할 때 목회자와 당회, 교인들 사이에 부딪치는 것은 교회를 어떻게 운영해 나갈 것인가 하는 것이다. 코로나는 오히려 축소시대에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사실 축소시대를 이미 경험하고 있는 우리 교회로서는 코로나 시기에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이유는 교회의 본질과 신앙의 크기와 범위의 최소화에 대하여 미리 고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삼중직에 관한 것이다. 필자는 최근에 지역에서 교회와 구청이 중심이 되어 모인 자리에서 '지역사회에서 교회의 사회문화적 가치'에 대해 논하며 "교회는 지역의 제사장이다(목적). 교회는 지역의 선지자이다(사명). 교회는 지역의 섬김의 왕이다(인격)"라고 짧게 강의를 한 적이 있다. 이런 선교의 철학은 목사는 물론 정치인들에게 교회의 존재 의미를 새롭게 했다. 이는 목회자들에게는 목회철학이 되고, 신자들에게는 신앙의 철학이 됐다. 그리스도의 삼중직으로 구원을 이루어가겠다는 의지는 축소시대의 방향이고 능력이 된다고 믿는다.

최근 우리 교회는 예배당 건축이라는 큰 사역을 앞에 두고 있다. 특히 경제적인 두려움이 큰 것이 사실이다. 몇 주 전 두 개의 의견이 있었다. "교회가 예배당 건축을 앞두고 있으니 다른 지출은 자제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래도 이번에 어려운 분들을 돕는 일은 교인들에게 자율적으로 맡기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 두 의견 사이에서 당회는 교인들의 자율에 맡기기로 결정하고, 원하시는 분들만 헌금하시라고 했다. 결과는 우리들의 예상을 뛰어넘어 적잖은 후원을 할 수 있었다. 이 일로서 다시 한번 깨달은 것은 그리스도의 삼중직의 가치로 무장한 교인들은 신앙적으로 가치 있는 일에는 참여한다는 것이다. 인간적인 경영이 아닌 믿음의 경영이, 축소시대에 강한 교회가 되는 비결이라고 할 수 있다.



#축소의 길에서 오히려 지속가능한 교회



코로나 이후 우리나라에서 8000에서 1만 개의 교회가 문을 닫았다는 뉴스를 보았다. 코로나 이전보다 기독교의 사회적 신뢰도가 더 떨어졌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성장과 팽창을 추구하는 우리들이 만든 결과가 아니겠는가. 미래에는 대형교회와 소형교회만 살아남을 것이라는 미래학자의 불안한 견해를 뒤로하고 지속가능한 교회는 반드시 존재한다고 본다. 바로 1) 지역적인 교회, 2) 복음적인 교회, 3) 비전을 세운 교회 4) 철학이 있는 교회이다. 쇠락해 가는 농어촌교회의 존재의 의미도 지역과 복음, 비전과 철학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세 가지이다. 제사장-예배와 목장, 선지자-교육과 전도, 왕-봉사와 섬김 등이다. 축소의 길 위에 서서 오히려 존재의 의미를 새롭게 다짐으로 지속가능한 교회가 되는, 단단한 미래를 걸어가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하게 기대해 본다.



오창우 목사 / 한남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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