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개혁, 자기 개혁부터

교회 개혁, 자기 개혁부터

[ 논설위원칼럼 ]

신영균 목사
2024년 05월 20일(월) 20:30
지난 2000년대 초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기독교인들의 94%가 한국 교회의 갱신과 개혁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에서는 한국 교회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점으로 '세속화 및 영성 약화', '지나친 양적 혹은 외형적 성장', '교회 난립', '교회 간 경쟁과 분열', '목회자의 자질 하락' 등을 꼽았다. 그리고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나 불신 풍조'를 가장 시급히 개혁해야 할 과제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교회 개혁이라는 과제가 과연 완수되었는가, 개혁이 성공하였는가. 오히려 개혁해야 할 문제점은 산적하고, 개혁해야 한다는 부르짖음은 더 강해져 가고 있다. 확실한 것은, 개혁이란 거창한 구호를 외친다고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때는 개혁을 부르짖다가 요즘은 변혁이니, 혁신이니 하는 새로운 용어들을 동원해 뭔가 획기적 개혁의 시도인 양 눈가림을 해보지만 역시 개혁의 성과를 보여주기보다는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어 안타까울 따름이다.

우리는 스스로 늘 개혁 교단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마틴 루터와 칼뱅의 개혁을 '개혁의 모델'로 치켜세우며 개혁의 후예라고 자랑스러워하지만, 오히려 갈수록 세상으로부터 손가락질을 더 많이 받고 있어서 부끄럽기만 하다. 각종 통계와 평가에서 보여주는 바와 같이, 교회와 교회 지도자에 대한 신뢰도는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교회 개혁을 위한 학술대회, 세미나, 논문, 설교 심지어 유튜브까지 목청을 높이지만 실질적인 개혁의 방향으로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교회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정권마다 개혁, 적폐 청산을 내세우고, 검찰개혁, 노동 개혁, 교육 개혁, 의료 개혁 등을 주장하며 사법권을 총동원하지만, 오히려 정권의 말기에는 개혁의 대상으로 막을 내리는 것이 늘 반복된다. 개혁을 앞세워서 새 정치를 하겠다고 새로 설립한 정당들은, 당명에 개혁이라는 단어를 앞세우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 정당마저도 자중지란이 일어나고 결국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흔하다. 여당, 야당은 서로를 향하여 개혁의 대상이라고 돌을 던지지만 정작 자기들은 개혁에서 늘 제외한다. 정권을 잡은 정당은 과거 정권을 향하여 적폐 청산을 한다고 하면서 개혁을 빙자하며 정치 보복을 일삼는다. 이처럼 교회나 사회나 개혁은 요원하기만 한 것이 현실이다.

일찍이 9세기 이슬람 수피파의 지도자였던 바야지드 바스타미의 기도문이 인상적이다. '내가 젊었을 때는 세상을 변화시킬 만한 힘을 달라고 기도했다. 중년이 되었을 때는 내 친구들과 가족들을 변화시켜 달라고 기도했다. 그러나 노년이 된 지금 나는 나 자신을 변화시켜달라고 기도한다. 만약 처음부터 이 기도를 드렸다면 아마 내 인생은 훨씬 달라졌을 것이다'라는 기도였다.

성경의 인물들은 반드시 자기 자신부터 개혁하고자 했다. 구약시대 에스라, 느헤미야와 신약의 사도 바울이 그러했다. 초대 한국 교회사를 살펴보아도 로버트 하디 선교사를 비롯한 신앙 선배들의 자기 회개, 자기 개혁으로부터 평양 대부흥 운동이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 부흥 운동은 교회 개혁에만 그치지 않고 금주 금연 운동, 절제 운동, 일부일처 운동 등 사회 개혁으로까지 확산하였다.

기독교인 수의 감소, 교회의 대외 이미지 실추, 사회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교회의 인식 수준, 교회 지도자들의 신뢰 추락 등 다양한 문제들을 지적하면서, 오늘의 현상을 비판, 분석, 질타만을 일삼는 것은 삼가야 한다. 나를 제외한 불특정 다수를 개혁의 대상으로 몰아붙이면서 자신은 개혁의 예외가 되어서는 안 된다. 키에르 케고르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고 외친 것처럼 우리 모두 자기 개혁에 먼저 온 힘을 쏟아야 한다. 예수님께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신 그 책망을 받지 않도록, 자기 개혁에 철저해지자. 결국 한국 교회개혁의 꽃은 피고 말 것이다.



신영균 목사 / 경주제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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