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 없는 교계 이루기

소외 없는 교계 이루기

[ 주간논단 ]

이정규 목사
2024년 07월 23일(화) 07:00
만 70세가 넘은 은퇴 목사는 노년기의 일반인들과 마찬가지로 건강상 취약할 수밖에 없다. 개인차는 있지만 목회하면서 불규칙한 식사와 스트레스, 심방 시 당분 과다 섭취, 운동 부족 등이 각종 질환의 원인이 된다. 그리하여 경제적 부담이나 육체적 고통, 정신적 불안이 오히려 일반 노년층보다 더 많은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목사라는 자존심 때문에 이를 속 시원히 털어놓지 못하고 겉으로는 웃지만, 속앓 이하는 은퇴 목사들이 의외로 많다.

오늘의 한국교회는 성도들의 기도와 헌신 뿐 아니라 목사들의 헌신적인 목회로 부흥하고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혼 구원에 헌신할 뿐만 아니라 자기 재산을 바쳐 교회를 개척했다. 목회자가 기도하고 헌신할수록 교회는 바로 세워졌고 성장했다. 교인들과 생사고락을 같이하며 아름다운 목양으로 평생을 살아왔다.

그런 목회자들이 이제 목회 정년을 맞이해 은퇴를 했다. 그런데 그들의 설 자리가 마땅치 않은 것이 교계 현실이다. 목사는 은퇴하면 건덕상의 이유로 목회하던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다. 이는 새로운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며 신앙생활을 해야 함을 의미한다. 물론 장단점도 있다. 현직에 있을 때는 아무래도 신경 쓸 부분이 많지만 은퇴하면 그럴 필요가 없다. 하나님 앞에서 내 모습을 드러내 놓고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는 예배자가 된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오롯이 체험하고, 집중해 예배드림으로써 풍성한 감사와 기쁨을 누리게 된다.

은퇴 목사를 거론할 때, 배우자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목사의 배우자가 되어 남편이 은퇴할 때까지 가까이에서 내조한 목회자 부인의 애환은 안타깝기만 하다. 남편이 은퇴하면, 본인의 뜻과는 상관없이 정든 교회를 떠나는 것은 물론, 교회 선택의 자유도 제한받는다. 이는 반평생 가까이 공들여온 인간관계의 단절을 의미한다. 갑작스러운 변화로 심하면 우울증, 신경쇠약 등 정신적인 질병을 앓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한편 목회자 부인 홀로 남게 되거나 경제적 기반이 갖춰져 있지 않은 경우, 목회자 부인이 생계유지를 위한 벌이에 나서면서 병든 몸과 마음을 돌보지 못해 피폐한 일상을 사는 경우도 허다하다.

또한 은퇴 목사는 노회에 교적부가 있지만 목사의 아내는 노회원이 아니기 때문에 교적이 없다. 실제 교회에 교인으로 등재되어야 하는데 마치 국민으로서 주민등록이 말소된 것과 같다. 그래서 필자의 아내는 교적부를 말소하지 않고 후임 목사가 당회 결의를 받아 명예 권사로 임명해서 휴무 교인으로 그 교회가 교적부를 보관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문제는 총회적 차원의 관심과 지원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은퇴 이후의 목회자가 당면한 현실적인 문제들이 있다. 은퇴 이후의 생활은 매우 열악하기만 하다. 은퇴한 교회에서 거주할 사택을 받고, 퇴직금을 비롯해 매월 생활비를 받거나 연금을 받는 은퇴 목사는 어느 정도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하다. 그렇지만 매월 고정적인 수입이 없는 목회자는 생활고에 시달리게 된다. 대부분 은퇴 목사가 여기에 속한다. 국가에서 지원되는 노령연금은 생활비를 충당하기엔 턱없는 실정이라, 궁여지책으로 일자리를 찾는다. 그러나 저숙련, 저임금 일자리가 대다수라 생계유지의 어려움은 해결되지 않는다. 평생을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힘써 사역한 목회자의 삶이 초라하기 짝이 없다.

은퇴 목사의 예우도 교단마다 천차만별이다. 대형 교단에서 목회하다가 은퇴한 목사들은 목회자 연금제도가 있어 어느 정도 노후가 보장되지만, 그렇지 않은 많은 은퇴 목사의 실상은 너무 열악하다. 생활고에 시달리고, 병고에 시달리면 더욱 좌절감에 빠지게 된다. 죽도록 충성해야 한다는 말씀을 생각하며 각종 예배와 모임에 열심을 내보지만, 만족하지 못하고 초라하게 귀가하는 뒷모습이 은퇴 목사들의 교계 활동의 단면이다.

은퇴 목사들을 위해 총회와 교회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몇 가지 제안해 본다. 먼저, 낯선 교회에 가서 예배드리기가 마땅치 않아 가정에서 영상예배나 가정예배를 드리는 은퇴 목사들이 의외로 많다. 이를 고려해 은퇴 목사끼리 은혜롭고 마음 편히 예배드릴 수 있도록 예배 공간을 제공하는 일이 시급하다. 또한 은퇴 목사들의 체력, 경험, 전공 등을 살려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더불어 경제적 수입이 될 수 있는 일자리 마련도 복지 차원에서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은퇴 목사들의 체력과 건강을 위해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병·의원과 연결해 건강한 노년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시스템이 갖춰지기를 바란다.

현직에 있는 한국교회 목사들은 은퇴 목사들의 애환이 미래의 자화상임을 생각하며, 저들을 위해 기도하고, 한국교회가 구체적이고 적용 가능한 지원책을 마련해 나가기를 바란다. 겉사람은 낡아지나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진다는 말씀처럼, 은퇴 목사들도 영혼이 날마다 새로워져 부르심의 상을 위하여 아름답게 나아가기를 소망한다.



이정규 목사/수도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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