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보다 중요한 건 '함께' 하는 것

'승리'보다 중요한 건 '함께' 하는 것

[ 최은의 영화보기 ] 홈리스월드컵(The Beautiful Game)(2024)

최은
2024년 05월 22일(수) 09:36
동네 축구장에서 현란한 발기술을 자랑하던 비니(마이클 워드)를 축구감독 맬(빌 나이)이 홈리스 축구팀에게 소개한다. 누가 봐도 오합지졸인 그들은 자기들이 잉글랜드 국가대표라고 주장했다. 맬은 그들과 함께 홈리스 축구대회가 열리는 로마에 가자고 제안하는데, 비니는 자기는 홈리스가 아니므로 자격이 안 된다며 거절한다. 잠시 후 우리는 직장도 집도 차도 아내와 아이도 있다던 비니에게 직장은 일을 주지 않으며 차가 곧 집이고 아이와 아내는 다른 집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자격이 충분했다.

테아 샤록 감독의 '홈리스 월드컵 The Beautiful Game'은 주거취약계층의 자립의지와 인식 개선을 위해 빅이슈 그룹이 2001년 재단을 설립하고 2003년부터 개최를 시작한 국제축구대회를 소재로 했다. 경기는 전후반 7분씩 4명이 한 팀으로 뛰고, 선수들은 평생 한 번 대회에 참가할 수 있다. 영화에서 비니는 약물, 알코올, 도박 중독자, 난민과 자신이 같은 부류로 묶이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으나, 맬이 제시하는 단 한 번의 기회를 붙들어보기로 한다. 하지만 약물중독자 네이선(칼럼 스콧 하웰스)과 한 방을 쓰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로마에서 비니는 포근한 침구가 있는 숙소를 뛰쳐나가 공원에서 잠을 잔다. 믿어주고 곁을 내어주는 동료들을 뒤로 하고, "나는 집과 가족이 있다"고 큰소리쳤던 비니는 타향에서 스스로 노숙인이 되었다. 홈이란 무엇이며, 진짜 홈리스는 누구인가. 샤록의 영리한 영화는 마지막 즈음 축구장 경비원 앞에서 비니 자신의 입으로 "나는 홈리스에요. 홈리스 몰라요?"라고 말하게 한다.

자존심으로 똘똘 뭉쳐있던 비니가 스스로 '홈 없음'을 인정하고 동료들을 존중하게 되는 이 여정에서, 우리는 탁월한 지도자 두 사람을 만난다. 잉글랜드의 맬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프로타시아 수녀(수잔 워코마)는 비니에게 일생일대의 기회를 제공한 은인이다. 그런데 비니가 얻은 기회가 두 지도자에게도 소중한 기회를 낳았다는 점도 중요하다.

과거에 맬은 어린 선수들을 발굴해서 프로팀 입단을 돕는 이름난 스카우터였다. 그가 발굴한 천재선수들 모두가 성공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한 번도 우승해본 적 없는 잉글랜드 홈리스 축구단을 12년째 이끌고 있는 그에게 이 일은 혹 자신의 권유로 냉혹한 승부의 세계에 들어섰다가 낙오된 수많은 '비니들'을 기억하는 속죄의식 같은 것이었을까. 그러므로 비니와의 만남은 맬에게도 평생의 부담과 부채를 덜어낼 기회가 되었다. 더욱이 로마는 그가 아내 '키아라'와 신혼여행으로 왔던 곳이다. 성녀의 이름을 지닌 죽은 아내를 부르면서 맬은 기도인지 대화인지 모를 말을 읊조리느라 수십 년 만에 로마의 예배당을 다시 찾았다.

프로타시아 수녀는 비니와의 만남을 주님의 축복으로 여기고 감사했다. 지각 출전한 남아공 선수들이 첫 경기를 놓쳐 탈락하게 되자 그가 비니의 승부욕을 자극해서 잉글랜드와 겨룰 기회를 얻어냈기 때문이다. 한편 후반에는 비니가 지각해서 경기를 놓쳤을 때, 프로타시아 수녀가 용병 자격으로 비니를 남아공 팀에 초대해서 다시 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교체선수가 부족한 국가에게 타국의 용병 기용을 허락하는 예에서 보듯이, 홈리스 월드컵은 소속팀을 초월한 재기의 기회를 독려하면서 국가중심 경쟁구도와 승리의 이데올로기를 경계한다. 테아 샤록의 영화는 이 점을 넉넉히 활용했다. 주요 출전국인 영국과 남아공, 미국의 각 팀에 난민들이 포함되어 있는 점이 특히 눈에 띈다. 잉글랜드의 시리아 난민 알다, 남아공의 짐바브웨 난민 선수, 가족이 모두 추방당해 혼자 남은 미국의 로시타는 가장 절박한 이유로 자국이면서 실상은 타국인 소속팀 국가의 승리를 갈망한다. 그들의 존재는 소수자 안의 소수자, 약자 안의 약자들을 대표하는 동시에 베풂과 나눔에서조차도 곧잘 작동하는 이기주의와 편파주의에 대한 도전이다.

캘과 비니가 동료들에게 들려주는 '눈 오는 밤'이라는 동화는 러닝타임 정중앙에서 이 영화의 메시지를 집약한다. 눈 내리는 밤에 공원지기 퍼시의 집에 다람쥐가 찾아왔다. 이어 토끼들, 여우, 오소리, 오리, 고슴도치들이 연달아 문을 두드리는데, 마음 약한 퍼시가 이들을 다 받아주어 작은 오두막엔 몸을 움직일 틈도 없었다. 그런데 이제 땅 아래서 바닥을 뚫는 괴물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란 동물들이 양말서랍, 주머니, 모자 등에 숨었는데 알고 보니 그 괴물은 두더지였다. 두더지는 침대에서 퍼시와 껴안고 자고, 놀라 숨어 들어간 곳이 더 따뜻하다는 것을 알게 된 동물들이 그대로 각자의 자리에서 잠들어 겨울 밤 모두가 안전하고 행복했다는 이야기다. 친절과 환대는 일방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종종 우리가 예견하지 못했고 기대하지도 않았던 최선의 해결책을 동반한다.

2024년 홈리스 월드컵은 9월 말 대한민국 서울에서 열린다.



최은 영화평론가·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 부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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