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의 아들딸들아 우리는 너희를 잊을 수 없다

세월호의 아들딸들아 우리는 너희를 잊을 수 없다

[ 주간논단 ]

고훈 목사
2024년 05월 14일(화) 08:00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14년. 안산 단원고 246명의 학생, 인솔교사 11명, 일반인 33명 등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진도 팽목항 앞바다 속에 두고 부활절 연합예배를 드렸다. 부활의 기쁨과 감격보다 차가운 물속에 있는 희생자들을 생각하며 슬픔과 탄식이 가득했던 그 예배를 아직 잊지 못한다.

당시 세월호에는 필자의 교회 학생 14명이 탑승했는데, 그 중 남학생 한 명만이 탈출해 생존했다. 희생된 13명의 장례식을 고등부 목사와 필자가 담당했다. 사망한 학생들의 손톱과 이마는 대부분 피멍이 들어있었다. 당시 어느 어머니는 반장이었던 딸의 시신을 보자 쓰러져 중풍환자가 되었다.

장례를 치른 희생자들 중 어머니 없이 할머니 손에서 자란 한 남학생이 있었다. 할머니와 7살 누이동생을 두고 수학여행을 떠났던 그 남학생은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이른 새벽 시간 장례예식을 할 때 깨어난 누이동생의 "오빠, 우리 오빠 제주도 가서 맛있는 것 사온다더니 왜 죽어왔어?"라는 말에 장례식장은 모두 울음바다가 되었다.

또 다른 희생자 중에 쌍둥이도 있었다. 부모였던 집사 부부가 학교 편하게 다니라고 둘 다 단원고에 입학시키려 갔더니, 학교방침상 두 형제를 동시에 입학시킬 수 없다고 동생은 다른 학교로 보내라고 했단다. 그렇게 동생은 다른 학교로, 형은 단원고에 입학을 했다. 그 때는 하나님을 원망했는데, 만일 이들의 뜻대로 됐다면 두 아들을 다 잃을 뻔했다. 한 아들은 살았지만, 그럼에도 찢어지는 이들의 마음은 차마 헤아릴 수가 없었다.

세월호 참사는 남겨진 이들에게도 많은 상흔을 남겼다. 수학여행을 인솔했던 교감선생님은 트라우마로 팽목항을 차마 떠나지 못하고, 물속에 있는 제자들 곁으로 갔다. 딸처럼 키웠던 조카의 죽음으로 새벽마다 교회에 와서 울며 기도하던 이모는 트라우마로 목숨을 잃었다. 고등부 담당목사는 필자와 함께 희생된 제자 13명의 장례식을 마치고, 더는 목회를 지속할 수 없어 사임하고 부모님 곁으로 갔다.

304명이 희생된 세월호 참사는 10년이 지나도 그 처참함이 오늘 같다. 꽃다운 청소년들이 수학여행을 갔다 기성세대의 잘못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은 오늘날까지 필자를 포함해 많은 이들의 마음을 괴롭게 한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괴로운 것은 유가족들일 것이다. 유가족들의 오직 한 가지 소망은 진상규명이다. 진실과 원인을 규명해 다시는 이런 비극이 우리 아이들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두 번 다시 누구도 우리와 같은 아픔을 겪지 말게 하는 것이다.

세월호 선장은 교도소에서 참사 당시 자신은 잠옷바람으로 탈출하면서 학생들에게 가만히 있으라는 그 말이 가장 잘못된 말이었다고 오늘에야 회개했다고 한다.

오늘날 세상에는 참 가슴 아픈 일이 많이 일어난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점점 더 험악한 세상이 되어가는 것만 같다. 세상은 더 풍요로워지는데, 지구 곳곳은 전쟁으로 신음하고 있다. 전쟁터에서 남편과 아들들이 전사하고 부상자들이 속출한다. 과부와 부모 없는 소년소녀가장이 늘어나고, 생활고를 겪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참으로 험악한 세상이다.

오늘날 교회가 나아가야 할 길은 이들 곁에 서서, 이들의 아픔에 함께 하며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힘쓰는 것이다. 이 세상의 아픈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와 같은 아픔들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세상은 점점 더 험악해질 것이다.



고훈 목사/안산제일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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