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준비

설교 준비

[ 목양칼럼 ]

고병호 목사
2024년 01월 11일(목) 13:03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신 복이 무엇입니까? 세 가지만 말해 보세요." 누군가 이렇게 요청한다면, 나는 단번에 이렇게 말할 것이다. "첫째는 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었던 내가 하나님의 크신 사랑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요, 둘째는 하나님의 자녀된 것도 너무 감사한데,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는 목사가 된 것이며, 셋째는 나를 목회자로 서원하신 믿음의 부모님을 둔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목회, 정말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목회자가 된 것이 그렇게 감사하고, 좋을 수가 없다. 너무 자랑스럽고, 큰 복이라 생각한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 때문이다. 목회자이기에 말씀을 가까이 할 수밖에 없다. 그야말로 숨 쉬는 순간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이 바로 목회자이지 않나. 그런데 그 말씀이 꿀보다 더 단 생명의 말씀이라니. 이같은 생명의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 하나만 생각해도 목회자로 부름 받은 것은 복 중에 복이다.

어느 날 새벽기도 후, 아내가 간단한 청소와 아침요기거리를 준비하고 있었다. 잠시 함께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다가 이렇게 말했다. "이제 말씀을 준비해야겠다." 아내더러 이제는 가라는 뜻이다. "고통스럽겠네요." 아내가 한 말이다. 아내는 설교준비에 설교자의 고통이 따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아니, 고통이 따르지 않는 설교는 올바른 설교가 될 수 없음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요. 그냥 고통이 아니지요. 해산하는 것과 같은 고통이 따르게 마련이지요. 영혼의 고통이기에 어쩌면 더 큰 고통일 수도 있지요." 아내의 반응에 대한 내 대답이었다.

그렇다. 모든 설교자들도 그러하겠지만, 설교 준비하는 시간은 영혼의 고통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 아니, 그 같은 고통을 자청하며, 생명과 혼을 불어넣는 심정으로 설교를 준비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하는 설교자의 바른 태도여야 하지 싶다. 말씀 듣는 분들의 영혼이 죽고 사는 문제가 전하는 말씀에 달려 있는데.

오래 전 일이다. 어떤 분이 필자가 섬기는 교회에 등록을 했다. "그 동안 저는 제 영혼을 맡겨도 좋을 교회를 찾았습니다. 이제 찾은 것 같습니다." 등록심방예배를 드리는 자리서 그 분이 하신 말씀이다. 그 말에 전율이 일었다. 두려웠다. 그런데, 어찌 아무렇게나 쉽게, 함부로 하나님의 말씀을 준비할 수가 있겠는가.

이처럼 설교 준비하는 고통의 터널을 지나는 것이 만만치 않다. 자주는 아니지만, 너무 힘들어 도망가고 싶을 때도 있다. 내가 지나치게 힘들어 할 때는 "당신은 왜 그렇게 어렵게 설교를 준비하는지 모르겠어요."라는 아내의 핀잔 아닌 핀잔을 들을 때도 있다. "그럼 당신도 설교 한 번 해봐요. 그럼 내 심정을 이해하게 될 거요." 내 답이다.

이런 과정을 거쳤기 때문일까? 설교를 마무리하고 탁~하니 필을 내려놓을 때(필자는 설교를 컴퓨터로 하지 않고, 직접 손 글씨로 쓴다), 찾아오는 영혼의 희열이란, 어찌 표현할 말을 찾지 못할 정도다. 물론, 준비한 말씀을 전해야 하는 또 다른 고통의 여정(?)을 앞두고 있지만, 하나님이 설교자에게 주시는 은혜와 감동은 설교자가 되어보지 않으면 결코 경험하기가 쉽지 않은 것들이다.

"이제 집에 가야겠어요. 좋은 설교 부탁해요." 아내는 집으로 돌아갔다. 목양실에 홀로 남게 되었다. 이제 혼자 있다. 아, 아니다. 혼자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말씀의 진정한 저자이신 성령 하나님과 함께 있다. 그러기에 이 시간이 목회자요 설교자인 내게는 가장 귀하고, 가장 즐겁고, 가장 복된 시간이다.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이기도 하고.

"주님, 말씀 사역에 성령을 부으소서. 아멘."



고병호 목사 / 발안반석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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