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은혜

뜻밖의 은혜

[ 미션이상무! ]

김택조 목사
2023년 12월 07일(목) 22:33
지휘관 지시로 부대 내 안전기도회가 3개 종교 통합으로 진행됐지만, 김택조 목사는 '주여 삼창'을 한 후 '사단아 물러가라'를 외치며 부대의 안전과 장병의 건강을 위해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었다.
육군대학을 마치고 법무군종보직장교와 차후 보직을 상의할 때였다. 보직장교는 최전방 0사단을 거론했다. 전에 근무한 적 있는 사단과 교회에 또 간다는 것은 처음 들어보는 인사였다. 이전에 근무한 적 있어서 제한된다는 저의 항변은 통하지 않았다. 보직장교는 저를 0사단에 보내기로 작심한 듯 보였다. 군종역사상 한 사단사령부에 두 번 근무한 유일한 목사로 기록될 참이었다. 보직명령은 하나님의 명령이라 여기며 군생활을 해왔다. 당황해하는 아내와 자녀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온 가족이 최전방 0사단으로 향했다.

사단장님은 보직신고를 받으신 후 차담 중에 '이상한' 이야기를 꺼내셨다. 부대안전기도회를 3개 종교 통합으로 진행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기독교, 천주교, 원불교 기도는 간략하게 하고 불교는 한 시간 하는 '호국영령 위령제'로 하고 싶어 하셨다. 부대에 악성사고가 다수 발생한 것이 6·25전쟁에서 죽은 귀신들의 원혼이 저지른 것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전임 불교군종참모에게 지시하여 울산의 한 영험한(?) 비구니를 초청하여 진행한다는 계획까지 세운 터였다. 첫 사단군종참모로 부임했는데 처음부터 큰 부담을 안게 되었다. 겉으로는 합동종교행사인 듯 보였지만, 특정 종교 위주의 일방적인 종교행사였다. 난처했다. 군종참모로서 지휘관의 의도를 받드는 것은 중요하지만, 특정종교위주의 종교행사는 바람직하지 않았다. 부대악성사고의 해결책이 종교의식을 빙자한 '굿판'이라고 느껴졌다. 십 년간 불교 군종참모가 부임한 결과가 이런 상황까지 오게 했다. 고심 끝에 진행하기로 했다. 지휘관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며 '여기서 목사로 살다 군생활을 끝내겠다'고 다짐했다.

부대체육관에 모여 기독교,천주교,원불교 10분씩, 불교는 1시간을 진행했다. 간절한 마음으로 '주여 삼창'을 한 후 부대의 안전과 장병의 건강을 위해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었다. 마지막에 "부대를 괴롭히는 이 어둠의 세력들아 물러가라, 사단아 물러가라!"라고 강력히 외치며 기도를 마무리했다. 기도가 끝난 뒤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지휘관의 얼굴을 보니 벌겋게 상기되어있었다. 굿판이 진행되는 동안 사단기무대장과 차담을 하게 되었다. 그는 "목사님, 혹시 그 사단아 물러가라 하셨는데, 사단장님 물러가라는 뜻입니까?"라고 질문했다. 그제야 상기된 지휘관의 얼굴이 이해되었다. 기독교는 귀신을 위로하는 종교가 아니라 귀신을 쫓아내는 종교이며, 예수님께서도 그렇게 하셨기 때문에 저도 하는 것이라고 기무대장에게 설명했지만 불자인 그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이후 사단장님은 애매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며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믿음의 지휘관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하게 깨닫게 되는 시간이 시작되었다.

일 년을 기독교 신자 지휘관이 부임하시도록 기도했다. 성도들과 함께 새벽기도회와 수요기도회 때마다 간절히 부르짖으며 간구했다. 이듬해 가을 인사에 장로님이 사단장님으로 부임하셨다. 포병출신이 최전방 보병사단장으로 오시는 드문 경우였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분이셨다. 열정적으로 전도하며 복음을 전하는 분이었다. 전방소초에 수십여 개의 컨테이너 교회가 세워졌다. 숙원사업이던 신병교육대교회도 직접 뛰시며 후원받아 신축했다. 현재 막힌 상황 속에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자에게 부어주시는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였다. 죽기를 각오하고 사명을 감당할 때 부어주신 하나님의 세렌디피티(뜻밖의 은혜)인 것이다. 할렐루야!김택조 목사 / 총회 군종목사단장·사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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