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이 선교다

동행이 선교다

[ 주간논단 ]

박보경 교수
2023년 11월 21일(화) 08:00
환대의 공간인 '아둘람의 집'을 시작할 때 필자의 큰 딸은 가장 든든한 지지자요, 모든 과정의 동행자였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원하던 대학원 진학을 포기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충격 속에 있는 가족을 엄마를 대신해서 살뜰히 보살피고, 경제적으로 가족에게 큰 도움이 되어준 큰딸이 5년의 기다림 후에 마침내 자신의 꿈을 찾아 변호사가 되기 위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기로 했다. 그리고 대학원으로 진학하기 전에, 엄마와 잠시 함께 살아보고 싶다고 한국에 왔다. 초등학교 5학년때 미국에 있는 아빠에게 보내야 했던 큰딸이 더 늦기 전에 잠시라도 엄마와 살아보고 싶다고 말할 때 나는 가슴이 아렸다. 그렇게해서 한국에 온 큰딸과의 동행이 시작됐다. 그리고 이 동행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는 8월까지로 정해져 있었다.

아둘람의 집을 마련하는 것은 이 동행의 여정이었다. 딸은 미국 집을 팔고 한국에서 새로운 집을 구입하는 과정, 아둘람의 집의 컨셉을 정하기 위한 다양한 공간의 방문, 그 전 과정을 함께 했다. 그리고 위기가 올 때마다 곁에서 지지자가 돼주었다. 한번은 구입할 돈이 부족해 내가 포기하려고 할 때 지금 사는 아파트를 팔자고 제안한 것도 큰딸이었다. 마침내 지난 4월에 아둘람의 집을 위한 장소를 마련하게 됐을 때 우리는 함께 감격했다. 잠시 한국에 머무는 동안 이 전과정을 동행해 준 딸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둘람의 집을 한창 준비하던 6월, 우리 가정은 뜻밖에 충격적인 일을 맞았다. 바로 이 큰 딸이 갑상선암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암은 상당히 진행되어 전이까지 되었다고 했다. 남편을 하늘나라로 보낸지 얼마되지도 않았는데, 다시 암이 우리 가정에 찾아왔다. 처음 알았을 때의 슬픔과 좌절, 원망과 탄원은 이 짧은 글 안에서는 표현이 불가능하다. 왜 우리에게, 그리고 이런 시점에 고난이 찾아왔나? 욥의 원망이 나의 원망이 됐다.

아둘람의 집에는 독대의 공간이 있다. 독대자가 자신에게 찾아온 불행과 상처를 독대의 시간을 통해서 성찰하며 치유하라고 마련한 공간이다. 독대의 공간에 있는 '재소명의 나무'는 박완서 작가의 첫 작품 '나목'에서 영감을 얻어 준비됐다. 차가운 겨울, 헐벗은 나무는 겉으로 보기에는 고목같으나 사실은 나목이다. 이 겨울이 지나면 다시 가지에서 싹이 날것이다. '나목'은 '고목'이 아니다. 죽은 것처럼 보일 뿐이다. 바로 독대자들의 모습이 나목과 공명됐다. 독대의 공간은 우리 모두가 주님의 사역을 감당할 때 마치 헐벗은 상태로 죽은 것 같아 보이는 '나목'으로 주님 앞에 다시 서야 할 시간이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때 우리는 주님께 나아가 자신과 다시 만난다. 그리고 자신의 여정 중에 함께 하셨던 주님을 다시 만난다. 독대는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필요한 시간이다. 모녀는 아둘람의 집을 시작하면서 주님으로부터 갑작스럽게 독대의 시간을 요청받은 것이다.

얼마나 지났을까? 독대의 공간에서 매일 기도하던 어느날, 문득 나는 "동행"의 주님을 만났다. 깜깜하기만 했던 지난 몇 개월 동안 나는 그 모든 과정을 모녀와 함께 걸어가고 있는 주님을 다시 만났다. 척박한 광야에서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하는 우리들의 손을 잡으시며 '나만 따라와' 라고 말씀하시는 주님, 그 동행의 주님을 만났다. 그것은 마치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들의 곁에 함께 걸어가는 부활한 주님과의 동행 같은 것이었다. 엠마오로 걸어가는 두 제자 곁에서 조용히 동행하시고, 마침내 말을 걸어오시는 주님처럼 말이다. 마치 엠마오로 가는 여정 내내 함께 걸어가며, 일어난 일에 대하여 새로운 관점으로 설명하시는 주님을 경험하듯이, 그리고 이들이 마침내 환대의 식탁에서 위로하시며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용기를 주시는 주님을 만났듯이, 우리에게도 동행의 주님을 경험했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동행하시는 주님안에서 안식을 얻었다.

선교란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들과 동행하는 것이다. 독대의 숙제를 지닌 하나님의 일꾼과 동행하는 것, 이것이 선교이다. 우리 모두가 독대자임을 받아들이고, 동시에 우리가 타인을 향한 환대자가 되어야 함을 인정하며 독대자들과 동행하는 것이 오늘날의 선교이다. 그리고 함께 동행하는 그 여정, 그 여정 중에 하나님의 선교는 일어난다.



박보경 교수/장로회신학대학교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