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아름다운 사람 (2)

끝이 아름다운 사람 (2)

[ 미션이상무! ]

박주현 목사
2023년 11월 22일(수) 15:21
시설 보수 및 리모델링을 한 군인교회에서 축도하고 있는 박주현 목사.
군인교회는 대략 1004개 정도가 있다. 상징적인 숫자이기도 하지만, 이 많은 교회를 현역 군종목사가 다 담당할 수 없다. 1004개의 교회는 연대급 교회 안에 소속된 대대교회들까지를 포함한 숫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군종목사 한 명이 다수의 교회를 섬기는 일은 흔한 일이다. 하지만 몸이 하나고, 물리적인 시간까지 제약이 있는 경우 그 교회를 비워둘 수 없어서 함께 협력하는 사역자들이 빈틈을 메꿔준다. 그분들은 민간성직자 혹은 군선교사라고 부른다.

필자가 포병여단을 담당했을 당시,예하대대 교회가 13개였고, 각 교회를 담당해 주시던 대대교회 민간성직자분들이 13명이었다. 부대 특성상 지역 간의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애로사항이 많았지만 함께해 주는 이들이 있기에 감당할 수 있는 사역이었다.

군종목사는 국가의 녹을 받는 군인이자 성직자이다. 하지만 민간성직자분들은 대부분 자비량 선교이기에 개인의 능력이나 노하우 등에 따라 선교 환경이 풍족할 수도, 부족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민간인의 신분으로 군 현장 안에서 활동하는 것은 많은 제약이 있다. 코로나 기간은 부대출입 자체가 허용되지 않아, 부대 앞에서 장병들을 위한 간식만 전해주고 떠나야 했던 날들도 많았다. 이 부대를 담당하기 전까진 피상적인 이해뿐이었지만 이름도 빛도 없이, 장병들을 향한 시간과 물질, 정성을 아낌없이 흘려보내는 이들의 마음을 현장에서 바라보며 많은 도전을 받았다.

한 번은 부대 차원의 연합예배를 준비하며 평상시 돌아보지 못한 대대교회를 방문할 계획을 세웠다. 준비가 잘 된 줄 알았는데 대대교회를 담당하는 목사님이 전화가 왔다. "목사님 혹시 이번 예배 장소를 다른 곳으로 바꿀 수 있을까요?" 그래서 여쭤봤다. "혹시 무슨 일 있으신가요 목사님?" 민망하게 대답하는 목사님의 말씀을 아직 잊을 수 없다. "당일 많은 분들이 참석하시는데, 교회에 화장실이 없습니다. 평상시 예배 중에도 급한 친구들은 본부대까지 뛰어가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남자분들뿐만 아니라 여성분들도 갈 곳이 없어서 어려울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군종목사의 임무 중 하나는 대대교회를 담당하는 사역자분들과 좋은 관계 속에서 행정적인 도움과 필요를 채워주는 일이다. 대대 용사들을 위해 헌신하시는데 하나라도 더 도울 것들이 없는지를 살피는 것은 당연한 역할이다. 하지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인프라도 없고,이제 보직이동을 할 날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렇게 그냥 흐지부지 지나쳐 버릴 수 있었지만, 마음 가운데 거룩한 부담이 올라온다.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교회 예배당에서 기도를 하고 있는데 문자 한 통이 왔다. "안녕하세요 목사님, 저희 교회가 군교회 중 노후화가 심해 예배드리기에 어려움이 있는 교회에 대해 시설 보수 및 리모델링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혹시 필요한 교회가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오." 할렐루야! 예전에 신교대 사역을 할 때 몇 번 문자를 주고받았던 집사님이 문자를 보내주신 것이다. 평상시 나의 필요를 위한 기도는 그렇게도 외면하시던 하나님이 교회와 영혼을 사랑하는 일에 대해서는 이렇게나 즉각적으로 응답을 해주신다.

군교회 모금을 위한 헌신예배 때 설교 요청을 받고, 부랴부랴 교회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PPT자료와 설교를 준비했다. 그리고 대대목사님과 함께 교회를 방문했고, 이 열악한 현장이 교인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고, 공감대가 형성되어 바자회는 교회를 지원하고도 남을 만큼 넉넉한 재정이 마련되었다.

그렇게 나는 보직이동을 했고, 후속조치로 대대목사님과 교회를 연결해 드리고 이 글을 쓰기 하루 전 금액이 잘 전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목사님은 이제 용사들이 더 이상 예배시간 때 화장실이 급해서 예배당을 뛰어나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너무 감사해서 눈물을 훔치셨다. 그 눈물을 보며, 이 순수한 마음을 주님께서 기뻐하셨고, 나라는 부족한 사람을 통로로 사용해주셨구나 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열악한 중에도 끝까지 맡은 자리를 포기하지 않고 눈물과 정성으로 사역하며, 이름도 빛도 없이 사역하는 분들을 보면서 어떤 마음으로 사역을 해야 하는지 다시 한번 배우게 된다. 언제까지 이 사역을 계속하게 될지 모르지만, 맡겨주신 시간, 자리에서 끝이 아름다운 사람을 향한 여정을 계속해 나가야겠다.

박주현 목사 / 5기갑여단·육군 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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