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아름다운 사람

끝이 아름다운 사람

[ 미션이상무! ]

박주현 목사
2023년 11월 15일(수) 08:39
포천병원 교회 찬양팀.
보통 민간교회에서는 '내 교회'라는 인식이 분명하다. 하지만 군 안에서는 여러 가지 의미로 '내 교회'라는 인식이 희미하다. 우선, 용사들 같은 경우도 본교회는 따로 있고, 군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군인교회는 잠시 거쳐 가는 곳으로 인식한다. 마찬가지로 군인 간부, 가족들도 오랜 기간 그곳에 정착하지 않는 한, 1~2년이면 이동을 하기 때문에 마음을 열기가 쉽지 않다.

군종목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내가 맡고 있는 교회도 길어야 2년이다. 언젠가는 떠나야 하고, 아쉬움도 새로운 적응도 늘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대부분 루틴이 있다. 처음은 적응 기간이라 촉각을 곤두세우고 달음박질한다면, 점점 적응되고 익숙해질 때가 되면 떠날 시간이라 적극적인 시도보단 안정감 있는 운영을 한다. 확실히 떠날 때가 되면, 힘이 빠진다.

어느 순간 이렇게 적응되는 내가 참 싫었다. 그래서 처음보단 과정을, 과정보단 끝을 아름답게 매듭짓자는 마음으로 스스로의 좌우명을 '끝이 아름다운 사람'으로 규정하고 그렇게 살고자 한다.

군 현장에서 군종장교는 대부분 내가 속해 있는 부대 교회뿐 아니라, 예하대대 혹은 필요에 따라 전혀 상관없는 부대 교회를 지원하기도 한다. 이것은 너무나도 익숙한 일상이다. 나는 거리상 멀지 않고, 군종장교가 공석인 '포천병원'을 주일 오후에 주기적으로 종교지원을 한다. 아직도 첫날의 예배를 잊을 수가 없다. 아버지가 선교사님이신 용사가 기타를 메고 혼자 찬양인도를 하는데, 앉아있는 인원이 3명이었다. 본래 기독교 목사가 보직되어 있던 곳이었지만, 최근에는 법사가 보직이 되어 활성화되었던 종교행사가 한풀 꺾인 상황이었다. 새로 보직된 군종병도 기독교 군종병이지만, 상급자가 불교 성직자인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불과 4명의 인원이지만, 아무도 보고 있지 않고, 주목하지 않는 곳에서 자신만의 진실한 예배를 드리는 이들을 볼 때, 숫자는 그리 중요하지 않게 된다. 가슴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꽤 오랜만에 하게 되었다. 내 부대는 아니지만, 열악한 상황에서도 예배를 포기하지 않는 소중한 영혼들을 마주하며, 그 어떤 때보다 최선을 다했다. 용사들의 사정을 담당하고 있는 여단교회 성도님들과 공유해서 간식을 제공하며, 함께 포천병원 예배의 부흥과 영혼구원을 위한 공감대를 형성해 갔다.

감사하게도 이제는 소소하지만 찬양팀이 구성되고, 10명 남짓 되는 인원들이 예배에 참석한다. 월급도 많이 오르고, 먹는 거로 아쉬울 게 없고, 주말이면 핸드폰도 제한 없이 쓸 수 있기 때문에, 특심있는 신자들도 교회를 오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이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삶의 자리를 구별하여 예배를 선택한 이들이 참 대견했고, 함께하는 시간들이 감사했다.

시간이 지나, 나 역시 이곳에서 떠나야 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이동을 앞두고 고민이 생겼다. 이 인원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아이들이 찬양을 참 좋아하는데, 음향이 열악해서 많은 제약이 있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고민을 하다가 친분이 있는 음향업자를 불러, 보직이동 전 예배당 음향보수공사를 간곡히 부탁드렸다. 나도 가야 할 시간이 코앞이고, 업자도 미리 약속을 해둔 것이 아니라 시간 조율이 어려웠지만, 생떼를 부려서 마지막 종교행사 전 금요일 저녁이라는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지금 하지 않으면 향후 몇 년간 방치될 것이 뻔하기 때문에, 무리수를 던졌다.

해야 할 작업은 많고, 저녁에 공사를 시작하면, 끝나는 시간이 기약이 없기에 부대 입장에서도 타부대 목사님이 왜 저렇게까지 하나 의아해했었고, 당직계통으로도 신경을 써야 하니 누가 봐도 좋은 일이지만 민폐라 여겨졌다. 그렇게 금요일 저녁부터 시작된 작업은 새벽 2시까지 이어졌다. 부대도 처음에는 미심쩍고, 경계하는 입장이었지만, 그 시간까지 업자와 함께 작업하는 모습을 보고, 감사를 표해주었다. 그렇게 주일 마지막 예배를 드리고, 음향 교육을 하고, 구성을 새롭게 하고 전출 인사를 했다. 함께 하는 인원들도 더 좋은 환경에서, 더 좋은 마음으로 예배할 수 있음을 기뻐했다.

불필요하다 보일 수 있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 사랑하지 않고서는 하지 못할 일들이 참 많다. '굳이'라는 수많은 퀘스천 마크가 수면 위로 떠올랐지만, 용사들을 생각할 때, '굳이'는 '기꺼이'라는 단어로 새롭게 해석된다.

언제까지 이 부르심의 자리에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돌아보았을 때 후회 없는 시간으로, 기뻐하실 하나님을 기대하며 사역을 이어 나가기를 다짐해본다. 끝이 아름다운 사람, 오늘도 그렇게 사역의 자리에 남고 싶다.



박주현 목사 / 5기갑여단·육군 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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