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동의 근현대사 민중과 함께 울었던 흔적들

극동의 근현대사 민중과 함께 울었던 흔적들

[ 어서 와, 총회 사적지는 처음이지 ] 7. 경북 영천 청송 포항 일대

최은숙 기자 ches@pckworld.com
2022년 07월 21일(목) 16:55
자천교회 전경
남녀칠세부동석의 유교적 문화를 보여주는 칸막이.
엄주선 강도사 순교유적지
【 경북 영천·청송·포항 일대=최은숙 기자】동대구역에서 영천시 북쪽으로 1시간 정도 자동차로 달리다보면 조용하고 작은 마을에 한 눈에 봐도 전형적인 한옥이 한채 보인다. 전국에서 가장 별이 잘 보인다는 보현산 자락에 위치한 이 고택은 100년이 넘은 역사를 가진 경북 유일의 한옥교회이자 총회한국기독교사적 제2호로 지정된 자천교회(손산문 목사 시무)다. 경북지역의 총회 사적지 탐방은 이곳에서 출발한다.

#독특한 건축양식과 기법, 교회사·건축사적 중요한 가치

자천교회는 아담스(J. E. Adams) 선교사와 권헌중 장로의 운명적인 만남에서 시작한다. 1898년 대구·경북지역의 선교를 담당한 아담스 선교사는 영천, 청송 지역으로 전도여행 중이었고 경주에서 서당 훈장으로 의병 활동을 하던 권헌중 장로는 청송에서 일본경찰을 피해 은신하다가 대구로 거처를 옮기려던 찰나였다. '마침내' 어느날 영송과 청송의 경계가 되는 노고재에서 이 둘의 극적인 만남은 성사됐고, 아담스 선교사를 통해 복음을 받아들인 권 장로가 1903년 자천교회를 설립하면서 역사가 시작됐다. 처음에는 초가 한 채를 구입해 예배를 드리다가 교인이 늘어나자 사재를 털어 1904년 현재의 16칸 목조와가로 현 예배당을 완공하고 영혼구원이라는 교회의 본질적 사명과 함께 나라와 민족을 위한 대사회적인 역할을 펼쳐나갔다.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 등 격동의 근현대사를 겪으며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자천교회는 초기 한국교회 예배당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특히 예배당 건축양식과 기법들은 교회사적, 건축사적으로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지난 2003년 경상북도 지방문화재로 지정됐다.

자천교회 예배당은 전국적으로 몇 안 되는 개신교 초기 한옥 예배당으로서 독특한 'ㅡ자형'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전통적인 한옥 예배당은 'ㄱ자형' '정방형' '장방형' 등의 형태가 일반적인 데 자천교회는 똑 같은 장방형 집 두 채를 나란히 ㅡ자형으로 배치한 '겹집' 양식으로 건축된 점이 독특하다. 교회의 지붕은 아주 짧은 용마루를 가진 '우진각' 형태이며 지붕이 크고 높아 이를 지탱하기 위해 서까래를 촘촘하게 설치하고 실내에 네 개의 기둥을 세웠다. 중앙의 기둥 열을 따르면 강대상에도 수직 기둥이 있어야 하지만 이를 아치형의 기둥으로 대신해 강대상 공간을 자연스럽게 확보했다.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당시 유교문화로 교회는 예배당에 칸막이를 설치했는데 자천교회에서도 그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다만 당시 대부분 천으로 휘장을 쳐 남녀석을 구분했다면 자천교회는 나무 칸막이를 설치했다. 중앙의 기둥들 때문에 기둥과 기둥 사이를 나무로 잇대어 칸막이로 사용한 것이다. 이 때 강대상 중앙에서 회중석을 바라보면 칸막이가 기둥에 가려 보이지 않아 설교자는 마치 열린 공간에서 설교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고 예배자들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게 했다. 교회 건축에 대한 선인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자천교회는 예배당 옆에는 또 다른 고택이 있다. 이 집은 원래 권헌중 장로의 소유였지만 일제치하 시대에 교회를 섬기면서 가세가 기울어지자 이 집을 지역의 유지에게 팔았다. 그러나 2007년 당시 유지의 아들인 김경환 선생이 교회에 고택을 기증을 하면서 초창기 교회 터 일대 모습을 되찾게 됐다. 근대 개화기의 전형적인 전통 한옥의 모습을 갖추고 있는 이 고택은 600여 평의 대지 위에 안채 사랑채 좌·우 별채 대문채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 목조 와가다.

엄주선 강도사의 묘역
엄주선 강도사의 묘역에 함께 한 이들.
#경북 유일의 6.25전쟁 순교자 '엄주선 강도사'

'청송사과'의 역사는 독립운동가이며 청송 화목교회(권오정 목사 시무) 박치환 장로의 작품이다. 경북 의성군에서 태어난 박 장로는 1919년 만세시위 운동을 벌이다가 중국 등으로 망명했다. 이후 1923년 고향으로 돌아와 청송 현서면에 사과 묘목을 심어 재배한 것이 지금의 청송사과의 시작이 됐다. 대를 이어 화목교회에서 신앙을 계승하고 있는 박효일 원로장로는 "할아버지께서는 기독교인으로서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해야 한다고 늘 강조하면서 교회와 학교를 가까이 하라고 당부했다"면서 "사과묘목도 가난하고 불쌍한 나라와 민중을 위해 가져와 전파시키신 것이다"고 회상했다.

경북 유일의 한국전쟁 순교자도 엄주선 강도사도 화목교회와 관련이 깊다. 6.25전쟁 순교자 '엄주선 강도사'는 1950년 12월 화목교회에 부임해 이듬해 2월 17일 새벽기도를 마치고 교회에서 기도하다가 공산군에 납치됐다. 몇날 몇일 그들과 지내며 사단장 김두봉에게 "민족끼리 총부리를 겨누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복음을 전하다가 수차례 폭행을 당했다. 결국 그는 생과 사의 마지막 순간 "지금이라도 예수를 믿겠다고 약속하면 죽이지 않고 집으로 돌려보내주겠다"는 회유를 거절하고 순교한다. 시신 발견당시 엄 강도사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19군데가 죽창에 찔린 자국으로 처참했다. 함께 납치된 청년들의 증언에 따르면 엄 강도사는 죽창에 찔림을 당하면서도 "저들의 잘못을 깨닫게 하시고 용서해 달라"고 기도했다고 한다.

1951년 3월 경북노회 순교자장으로 치러진 엄주선 강도사 장례는 현재 순교자 묘역인 현서면 화목리 군유지에 안장됐다. 이 곳은 2012년 5월 9일 경상북도와 청송군의 지원을 받아 순교테마공원으로 조성됐다. 화목교회는 자체 예산 3000만원으로 순교지인 의성군 춘산면 '바랑골'(엄주선 강도사 시신이 발견된 장소)과 화목교회에 순교비를 세웠다. 총회는 엄주선 강도사의 뜻을 기려 2013년 의성군 엄주선 강도사 순교지와 청송군 순교 테마공원을 각각 총회한국기독교사적 제10호와 제10-1호로 지정했다.

엄주선 강도사 묘역에는 그의 부인 최동욱 전도사와 화목교회 장로들의 묘가 함께 있다. 사실 순교자 묘역에 장로와 권사가 함께 안치된 경우는 거의 없지만 당시 엄주선 강도사의 시신을 수습한 이들이 "우리는 순교자가 되지 못했으나 죽어서라도 순교자의 발치에 남고 싶다"는 유언에 따라 함께 묻혔다.

이 곳은 코로나 이전까지만 해도 연간 3000~4000여 명의 방문객이 다녀갈 정도로 유명한 관광명소로, 화목교회 목회와 장로들이 방문객들을 맞으며 엄주선 강도사의 순교 이야기를 소개한다.

#단절될 뻔 했던 유형의 유산, 새로운 이름으로 다시 이어가

총회 기독교사적지 제38호는 구 포항제일교회(박영호 목사 시무)예배당이다. 하지만 현재는 포항소망교회(이성희 목사 시무)가 사용하고 있다. 포항제일교회가 지난 2003년 구 예배당과 부지를 포항소망교회에 매각하고 이전하게 되면서 벌어진 상황이다. 역사의 기억들은 포항제일교회의 흔적이지만, 이제 그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은 포항소망교회의 몫으로 남게 됐다.

포항제일교회는 포항 지역의 모교회로 일제강점기와 6.25동란 등 격동의 세월을 민중과 함께 했다. 일제강점기에는 교회가 설립한 영흥학교를 통해 민족계몽운동에 기여했고, 이를 토대로 학교와 교회가 포항 지역의 3.1운동을 이끌었다.

6.25한국전쟁 당시 가장 치열한 전투지였던 포항시가 포격으로 완전히 폐허가 됐을 때에도 이 예배당만은 유일하게 보존된 일화도 유명하다. 당시 '축복 받은 교회'라는 제목으로 '타임지'표시에 실려 전 세계에 소개됐다. 지금도 교회 외부 벽에는 6.25전쟁 당시의 총탄 자국이 그대로 남아있어 전쟁의 상흔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유형의 신앙 유산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 안에 담긴 많은 무형의 신앙 유산을 증거하는 중요한 도구가 된다는 점에서 교회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 포항제일교회는 포항 지역 복음화와 근대화에 커다란 공헌을 했다. 일제강점기 시대에는 3.1운동을 통해 복음에 입각한 평화적 비폭력 운동을 시민들과 함께 전개했고, 6.25 전쟁 동안과 전후 복구 사업에 교회가 앞장서서 지역 사회를 이끌었다. 이러한 교회의 긍정적 역사성은 오늘의 한국 교회를 성찰하는 반성적 통로가 될 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한 귀한 신앙 교육의 장이 된다. 나아가 미래의 한국 교회를 좀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중요한 길잡이가 되기도 한다.

한편 포항시는 이러한 지역의 역사성을 살려 구 포항제일교회를 중심으로 '근대역사·문화거리 조성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현 포항소망교회 예배당 바로 앞에 '포항3.1운동 기념비'를 건립하는 것을 시작으로 '포항3.1운동길' 조성, '3.1운동 기념탑 건립' 등의 작업을 준비 중이다.

#포항 대전리 '만세촌' 14명의 의사 중 9명이 교인

'대한독립만세!' 그 뜨거운 함성이 100년을 거슬러 지금까지 생생하게 이어지는 마을이 있다. 포항시 북구 송라면 대전리 '3.1 만세촌'은 마치 1919년의 그 날로 타임슬립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만세운동과 독립운동의 모습이 벽화로 가득하고 집집마다 태극기가 휘날린다.

대전리는 포항지역 3.1만세운동의 근거지다. 마을 입구에 '3.1만세촌'이라는 표지석이 있고 두곡숲에는 '대전 3.1의거 기념비'가 서 있다. 전체 80여 가구에 불과한 마을에서 14명의 3·1운동 의사가 난 곳이라고 하니 그럴만도 하다.

1919년 3.1 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자 이 마을의 윤영복 선생 외 13인과 청하면 오용간 선생 외 8인이 거사를 논의하고 그 해 3월 22일 청하장날에 맞춰 500여 명의 군중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날 시위로 90여 명이 검거됐고 이 마을의 14인 지사도 끌려갔다. 이에 항의하기 위해 대전리 주민은 5일 후 두곡숲에서 다시 만세운동을 벌이며 항일운동을 이어갔다.

한 마을에서 14명의 의사가 나기도 유례를 찾기 힘든 일인데, 그 중 9명이 대전교회(성희경 목사 시무) 교인이라는 것은 더욱 놀랍다.

1919년 3.1운동 당시 대전교회는 영수 윤영복을 중심으로 만세 시위를 주도했다. 대전교회 창립자인 이익호의 아들 이준석 이준업 형제의 집에서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준비하고, 교인들은 주민들과 독립만세시위를 벌였다. 이익호는 배재학당 졸업 후 낙향해 교회를 세워 기독교 중심의 구국계몽운동을 전개했지만 일찍 병사해 그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의 민족의식과 신앙 구국의 의지가 아들과 교인들에게 그대로 이어졌고, 교회가 만세운동의 중심에 설 수 있었던 것이다.

예장 총회는 대전교회를 '1919년 3.1운동 참여교회'로 선정한 바 있으며 이 교회가 보존하고 있는 '영일3.1동지사'를 2022년 총회 한국기독교유물 제5호로 지정했다. 아울러 대전교회 설립자 이익호 선생의 가옥이자 이준석·이준업 형제의 생가를 한국기독교사적 제45호로 지정했다.

한편 이준석·이준업 형제의 생가 바로 옆에는 대전3.1의거기념관이 운영되고 있다. 이 곳에는 대전리 출신 14인 의사들이 당시 항일 운동을 전개하면서 사용했던 유품, 판결문, 영정 등 102점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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