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경강 뱃길서 뿌려진 복음의 씨앗, 빼앗긴 들에 '희망'을 심었지...

만경강 뱃길서 뿌려진 복음의 씨앗, 빼앗긴 들에 '희망'을 심었지...

[ 어서 와, 총회 사적지는 처음이지 ] 2. 전북 익산

최은숙 기자 ches@pckworld.com
2022년 02월 28일(월) 18:04
만경강 뱃길을 따라 선교사들은 익산에 복음의 씨앗을 뿌렸다.
만경강의 철새들.
레이놀즈 선교사가 만경강 뱃길을 따라 익산에 도착한 나루터의 현장.
만경강변의 둘레길.
【 전북 익산=최은숙】전북 익산지역의 총회사적지 순례는 익산역에서 출발했다. 익산역은 호남·전라·장항선에서 운행하는 모든 열차가 지나가는 유일한 역이다. '철도 교통의 요지'답게 용산역에서 KTX를 타면 2시간 이내에 익산역에 도착할 수 있다.(웬만한 수도권 지역보다 가깝다!)

익산의 '철도'역사는 한국근현대사의 아픔과 같이 한다. 익산역이 개통된 이유는 단 하나. 일제시대 넓고 기름진 호남평야에서 생산되는 쌀을 수탈하기 위한 교통수단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군산항 개항으로 일본인들이 군산 전주 익산지역으로 이동하며 대농장을 형성하기 시작했는데, 이곳에서 수확한 쌀을 보다 효율적으로 일본에 '빼돌리기 위해' 전라선과 호남선 철로를 건설하게 된다. 익산은 경주 부여 공주와 함께 우리나라의 4대 고도 중 한 곳이지만, 익산역이 개통되고서야 열 가구 남짓하던 익산의 인구가 3400여 명의 대도시로 발전하며 근대도시로 성장했다.


금강과 만경강을 품고 출발

이날 순례는 '만경강'일대를 둘러보는 것으로 시작됐다. 익산은 거대 곡창지대를 감싸며 북쪽에는 금강이 남쪽에는 만경강이 흐르고 있다. 만경강 일대에는 은빛 색으로 반짝이는 물억새와 겨울 철새 무리들이 하늘을 가로지르는 모습이 장관을 이룬다. 겨울 바람에 조금은 황량하고 쓸쓸함이 있지만 '만개한 갈대 꽃이 솜같이 널려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솜리'로 불렸다는 옛 익산의 모습을 조금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여유가 있다면 군산과 전주를 잇는 만경강변의 둘레길을 잠시 걸어보는 것도 좋다. 봄에는 파란 하늘 위로 흩날리는 벚꽃이, 가을에는 바람 따라 살랑거리는 은빛 물억새의 몸짓에 어쩌면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수고했어".

본격적인 총회기독교사적 순례길에 앞서 '만경강'을 찾은 이유는 '빅피쳐(Big Picture)'다. 익산의 기독교를 논하려면 '만경강'을 빼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전라도 지역의 선교는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 '7인의 선발대'에서 출발한다. 그들은 1892년 11월 한국 제물포에 도착한 후 교계예양협정(Commity Agreements)을 통해 전라도와 충청도 일부를 선교구역으로 할당받는다. 이후 1894년 전주를 시작으로 군산 목포 광주 순천선교부를 차례로 설치하고, 전라도 지역의 교세를 확장해 나간다.

제석교회 고패집 원형.
시대의 아픔과 눈물

이들은 전주선교부에 이어 두번 째 선교부 위치를 당시 인구왕래가 가장 왕성했던 군산항 일대로 정하고 배 한척을 구입해 금강과 만경강을 오르내리면서 선교를 시작했다. 이는 익산이 전주와 군산을 왕래하는 선교사들의 중간거점 지역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총회한국기독교사적 제43호 대장교회의 최초 예배당 터에는 선교사들이 군산으로 가기 위해 잠시 머물렀던 흔적이 남아있다. 대장교회100년사에는 레이놀즈 선교사가 1894년 전라도 지역 답사를 위해 만경강변 대장촌에 머물며 전도여행을 했다는 기록이 실제로 기록되어 있다. 대장촌은 숙박시설인 '여각'이 모여있었고, 대장교회 예배당 터 주변에는 만경강 나루터가 있었다.

"… 전주에서 40리 떨어진 대장촌에서 하루 잤다. 서 씨(통역)가 많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많은 책을 팔았고 신약성경 한 권도 팔았다'<레이놀즈의 선교 기록 중>

대장교회 일대는 만경강과 넓고 비옥한 곡창지대가 있는 마을로, 농경지로는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 대규모 농업을 위해 만들어진 대장촌(춘포)으로 일본의 거대한 농업자본이 몰려들었고 이곳의 땅과 쌀을 수탈하기 위해 대규모 농장이 설립됐다. 이렇게 수확한 쌀을 군산항까지 실어 나르기 위해 세운 철로가 바로 '춘포역'이다. 지금은 '폐역'이 됐지만 국내 최고(最古)의 간이역으로 인정돼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수탈의 전진기지'답게 대장교회 주변으로 일본인 대지주 호소카와 농장가옥과 호소카와 도정공장(정미소) 등 식민지의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근대문화유산도 경험할 수 있다.

대장교회 일대를 돌다보면 일제의 강제수탈로 고통 당하는 한국의 소작농이자 대장교회 성도의 아픔이 동시에 느껴진다.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 아픈 역사가 반복되어서는 안돼"라고 호통치는 신앙의 선배들의 목소리를 가슴으로 듣게 된다.

대장교회 역사위원회는 "그러한 맥락에서 대장교회의 역사는 우리 교회만의 역사가 아니고 이 지역 주민들의 삶의 역사요, 호남지역과 민족복음화의 역사와도 궤를 같이 한다"면서 향후 '춘포지역 기독교 역사문화 유적지 탐방로'를 만들어 교회의 역사와 함께 한국근현대사의 아픔까지 소개할 계획이다.

익산 4.4만세운동을 주도한 문용기 성도의 동상.
대장교회 최초 예배당 터.
여기서 잠깐!!

과거 약 10여호 정도가 거주하는 한적한 마을이었던 '익산(솜리)'는 1899년 군산항 개항 이후 군산과 전주를 왕래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작은 시장과 마을이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1914년 동이리역이 건립되면서 현재 남부시장 주변(솜리시장)일대가 번화했고 1919년 솜리시장에서 4.4.만세운동이 있었다. 남부시장 뒤로는 익산 4.4 솜리 만세운동 광장과 기념탑이 나오고, 일제강점기부터 있었던 적산가옥도 꽤 눈에 띈다. 남전교회에 가기 전에 잠시 들려보는 것도 좋다.

모교회, 그리고 분열의 현장

익산의 모교회는 총회한국기독교사적지 제18호 남전교회다. 남전교회는 익산 4.4만세운동의 진원지로 150여 명의 교인과 도남학교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거리 만세 운동을 주도했다. 일본군의 총격으로 교인 문용기, 박영문, 장경춘이 순국했고 수많은 사람이 부상당하고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남전교회가 솜리 4.4만세 운동을 조직하고, 독립만세운동을 벌여서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사건은 만세운동 역사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사건이다.

그러나 남전교회의 순례는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1897년 10월 설립된 남전교회는 1950년대 기장과 장로교의 분열로 '다르지만 같고, 같지만 다른' 2개의 교회가 100m의 '거리두기'로 세워져있다. 한국기독교장로회는 남전교회를 2000년 9월 총회 유적지 제1호로 지정하고 한국전쟁 순교자 박병호 순교비, 4.4만세 운동 순국열사비, 역사자료실 등을 구비하며 교회역사의 '전통성'을 강조하고 있다. 대체로 문용기 열사의 교회를 언급할 때면 기장의 남전교회가 소개된다.반면 총회사적지로 지정된 남전교회는 세월의 흔적만 묻어난 '한국기독교사적 제18회' 팻말만이 덩그러니 놓여있다. 한없이 초라하고 남루해보이는 모습도 마음이 아프지만, 하나의 뿌리에서 출발해 같은 역사를 가진 두 교회가 따로 또 같이 이웃해 있을 수밖에 없는 현실도 가슴이 시리다. 한국교회 분열의 현장을 익산의 모교회인 남전교회가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전킨 선교사도 가슴 아파 울고 있을지도)



예수사랑, 나라사랑의 교과서

총회한국기독교사적 제19호 제석교회는 익산, 군산, 강경지역의 3.1운동을 주도하여 3.1운동 거점지로 인정받았다. 해리슨(하위렴) 선교사는 1908년 교회 내 부용학교를 세워 100여 명의 학생을 가르쳤는데 당시 부용학교 졸업생과 군산 영명학교에 진학했던 제석교회 성도들이 마을 주민과 더불어 기독교 학생들을 규합해 3.1만세 운동을 주도했다. 이후 일제는 제석교회 성도들이 3.1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는 이유로 부용학교를 강제폐교하고, 교회 종탑과 성경까지 불태워 버렸다.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도 끝까지 반대하며 항일의식과 민족주의적 열정으로 독립 열망을 표출했다.

제석교회는 또, 1890년대 홍씨 일가가 지었던 3채의 고패집 중에 한 채가 거의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 이 곳 고패집에 십자가를 설치해 고패집 교회를 갖게 된 것이 제석교회의 전신이며, 이는 두동교회와 같이 당시의 사회적 상황을 반영해 한국교회 건축의 독특한 유형을 보이고 있다. 고패집이란 일자로 된 집채에 부엌이나 외양간 따위를 직각으로 이어 붙인 집으로 위에서 내려다 보면 그 평면이 ㄱ자 모양이다. 제석교회는 고패집 예배당을 복원하기 위해, 지자체의 지원을 지속적으로 요청하고 있지만 아직은 요원해 보인다고.



'남녀칠세부동석'의 현장

총회한국기독교사적 제4호 두동교회는 전북 김제의 금산교회(예장 합동)와 함께 '장로교회'에 현존하는 ㄱ자형 교회다. 두동교회의 ㄱ자 예배당은 남녀 회중석을 직각으로 배치해 두 축이 만나는 중심에 강단을 설치했다. ㄱ자형 예배당은 남녀칠세부동석, 남녀유별의 전통을 보여주면서도 남녀 모두에게 신앙을 전파하려고 했던 선교사들의 독창성이 돋보인다.

1929년 설립된 두동교회의 ㄱ자형 예배당은 평면의 한옥교회로 소나무로 지어졌으며 함석지붕에 홑처마 우진각 형태로 되어 있다. 교회 바로 옆엔 큰 소나무가 교회를 감싸고 있고, 오래된 종탑도 보인다. 두동교회는 1908년 설립된 금산교회와 같은 ㄱ자 예배당이지만 차이가 있다. 금산교회는 남자석 3칸 여자석이 2칸이고, 두동교회는 3칸씩 크기가 같다. 정경호 목사는 "한국 선교 초기에 선교사들이 문화적인 차이로 여성을 만나기 어려워 남성을 중심으로 전도 하다가, 전도부인의 등장으로 여성도가 증가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코로나19로 관람객 입장이 불가능한 것은 아쉽다.


사랑의 종

값없는 사랑, '사랑의 종'

숨가뿐 일정 속에서 마지막으로 총회기독교사적 제33호 황등교회 교회종을 찾아나섰다. 황등교회 교회종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종으로 1884년 제작됐다. 플로리다주 리스퍽제일교회에서 교회종을 교체하며 기존 교회종을 황등교회에 기증하기로 했다. 그러나 1950년 한국전쟁 발발로 일본에 발이 묶이게 됐다가, 1951년 6월 1일 교회종을 설치했다. 미국교회의 '값없는'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사랑의 종'으로 명명된 이 종은 현재도 타종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역사성이 있는 교회의 종이 깨질까 전전긍긍하기도. 미국교회는 한국교회에 많은 종을 기증했지만 현재까지 미국에서 직접 제작한 종으로 현존하는 종은 황등교회의 종 뿐이다.

기장의 남전교회 앞에는 3.1운동 기념공원이 마련되어 있다.
예장 통합의 남전교회 모습.
이번 익산지역 총회기독교사적은 총회사적(유물)협의회 부회장 정경호 목사(제석교회)가 동행했다. 꼬박 하루를 동행하며 익산의 총회기독교사적을 소개한 정 목사는 "한국교회의 위기는 복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역사를 상실했기 때문"이라면서 "잃어버린 역사를 되찾는 것이 복음을 되찾는 것"이라고 열변을 토했다.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교회가 익산에만 20여 개가 되지만 역사의 흔적이 남아있는 교회는 거의 없다"고 거듭거듭 아쉬움을 토로한 정 목사는 "우리는 역사라는 집을 잘 만들고 지켜내야 한다"면서 "익산지역의 사적지 순례를 원하는 교회와 성도들이 있다면 언제나 환영하며 기꺼이 순례에 동참하겠다"고 귀띔했다.



전북 익산지역 순례:익산역 → 만경강 일대 둘레길 → 대장교회(춘포역 호소카와 농장가옥과 호소카와 도정공장 둘러보기) → 솜리4.4만세운동광장과 기념탑 → 남전교회 → 제석교회 → 두동교회 → 황등교회 → 익산역


최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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