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사적, 아직도 알려져야 할 이야기 많다"

"기독교 사적, 아직도 알려져야 할 이야기 많다"

[ 어서 와, 총회 사적지는 처음이지 ] 전남 남부:애양원, 신황교회

차유진 기자 echa@pckworld.com
2022년 06월 20일(월) 02:06
애양원교회 임용한 목사(좌)와 대화하고 있는 손산문 목사.
1924년, 1973년, 2003년 건축물이 나란히 있는 장천교회.
신황교회.
【 순천·여수·광양=차유진】전라남도 남부지역의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사적으로는 여수 애양원 및 애양원교회(제6호) 및 손양원 목사 묘소(제6-1호), 광양 신황교회(제16호)가 있다.

이 사적들의 역사적 의미를 살펴보기 위해 먼저 순천역에서 2.5km 거리에 있는 옛 순천선교부 자리를 찾았다.

순천시 행동 문화거리를 지나 순천중앙교회(순천읍교회) 쪽으로 넘어가면 순천기독진료소 건물이 나오는 데 이 일대에서 순천선교부가 자리하고 활동했다. 당시 미국남장로회는 전주, 군산, 목포, 광주에 선교부를 운영했는데, 먼 거리를 오가며 사역하던 광주선교부 소속 오웬 선교사가 급성폐렴으로 사망하자 전남 남부지역 선교부 설립을 준비하게 된다. 이듬해 파송된 프레스톤(변요한)과 코잇(고라복) 선교사는 저렴했던 이 지역 땅을 매입하기 시작했고, 1911년부터 미국인 사업가 조지 왓츠 장로의 전폭적인 지원이 이뤄지면서 선교사 사택, 병원, 신학교 건물이 들어선다. 1928년 건축된 순천기독진료소 옆에는 이들의 헌신을 기리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다른 지역은 외국인 선교사들이 세운 선교부를 중심으로 교회가 확산됐지만 순천에는 이미 외곽에 자생적으로 설립된 교회들이 있었고, 이들에게서 중심부의 선교부를 향해 교회가 확산된 것이 특색이다. 이렇게 외곽으로부터 기틀을 잡아 간 교회들은 순천향교, 옥천서원 등 유교 세력이 강한 중심부까지 퍼지며, 일찍부터 신앙 공동체를 형성했다.

#총회 사적 지정 앞두고 있는 장천교회

외곽에 세워진 모교회 중 하나가 현재 총회 사적지 선포를 앞두고 있는 순천남노회 장천교회(윤성완 목사 시무)다. 한 장소에 1924년, 1973년, 2003년 건축한 예배당이 순서대로 서 있는 모습이 방문객들을 놀라게 한다. 1907년 설립된 교회는 일제 강점기인 1910년 이미 근대교육을 위해 사설학교를 운영했으며, 교회 내 성경구락부에서 한글을 가르치며 문맹퇴치운동에 앞장섰다. 그 사이 배출한 목회자만도 40명에 달할 정도로 지역 인재 양성에 크게 기여한 교회가 장천교회다. 1924년 건물은 현존하는 율촌면 최초의 석조 건물로 인정받아 2004년 문화재가 됐다. 건물 앞에는 순교비가 서 있는데, 1950년 손양원 목사와 함께 순교한 지한영 강도사와 그 아들 지준철 씨를 추모하고 있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사적이 많은 애양원교회

총회 사적 제6호인 애양원 및 애양원교회(임용한 목사 시무)는 1909년 설립됐다. 오웬 선교사를 문병 가던 포사이드 선교사가 길에서 만난 한센병 환자를 광주로 데려와 치료하면서 출발한 광주나병원이 애양원의 전신이다. 이후 많은 나환자들이 광주 봉선동에 모여들자 더 넓은 땅을 찾아 1926년 이동한 곳이 현재 위치인 여수시 율촌면 신풍리다. 당시 소록도에도 대규모 나환자 시설이 있었지만, 애양원은 일제가 세우고 운영한 소록도 시설과는 크게 달랐다. 설립자 윌슨 선교사(우월순)는 병의 치료를 넘어 환자들이 자립해 가정까지 이루기까지 도움을 제공했다. 윌슨 선교사가 조성했던 한센인 마을은 지금도 애양원교회를 찾아가는 길목에서 마주하게 된다. 조금 더 올라가면 애양원 10대 원장인 토플 선교사(도성래)의 이름을 딴 토플하우스와 1920년대 지은 병동들을 복원해 팬션으로 운영하는 건물들이 나타난다.

이곳을 방문하면 먼저 애양원교회의 도움을 받아 교회, 순교자기념관, 병원 순으로 관람하는 것이 좋다. 손양원 목사가 11년간 목회했던 여수노회 애양원교회는 복원작업을 거쳐 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애양원교회 역시 등록 문화재이며, 교회 로비에는 봉선리교회(1909~1927), 신풍교회(1928~1935), 애양원교회(1935~1982), 성산교회(1982~2018), 애양원교회(2016~현재)로 이어지는 역사와 손양원 목사의 사역을 정리한 안내판이 붙어있다. 본당 안에는 성경을 올려놓는 선반이 기울어져 있는 당시의 장의자를 비롯해, 예전 모습을 보존하고 있는 가구와 건축양식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지난 17일 방문에서 기자와 총회한국기독교사적(유물)협의회 회장 손산문 목사(자천교회)는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은 애양원교회 당회록 세 권을 확인할 수 있었다. 1916년부터 기록된 1권은 주로 한글을 사용하지만 3권으로 가면서 한자 사용이 늘어나는데, 손 목사는 "초기엔 선교사의 뜻에 따라 한글을 많이 썼는데, 이후 사역을 이어받은 한국인 목사들이 한문을 선호해 나타난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임용한 목사는 "잘 알려진 애양원교회지만 아직도 소개해야 할 이야기와 유적들이 많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여름철 더위 때문에 시작된 산상예배의 흔적, 교회에서 장례를 치른 한센병 교인들이 묻힌 무연고 묘지, 손양원 목사가 피난을 위해 배를 탔다가 애양원 사람들 때문에 내렸다는 포구 등도 한국교회 교인들에게 소개되기를 희망했다. 교회에서 1km 정도 거리에 손양원목사순교기념관이 있으며, 주차장에서 언덕길을 따라 오르면 총회 사적 제6-1호인 손양원 목사와 두 아들의 묘소가 있다.

#백운산 골짜기에서 부흥했던 신황교회

순천노회 신황교회(최수남 목사 시무)는 광양시 진상면 백운산 골짜기에 있다. 두메산골이라고 부를 만큼 한적한 산 속으로 한참을 들어가니 멀리 나무 사이로 십자가탑이 보인다. 1905년 설립된 것으로 알려진 신황교회다. '조선예수교장로회 사기(1928년)'에는 '1907년에 교인수가 육칠백에 달해 예배당 8간을 새로 지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교회는 부흥했다. 이 8간 한옥교회에도 남녀가 따로 들어갈 수 있는 좌우문이 있었다고 전해지며, 교회는 300명 규모의 소학교를 설립해 아이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순천 매산, 광주 수피아 등 전라도의 초기 학교들이 1910년대 설립된 것을 감안하면, 이보다 먼저 외곽의 교회들이 다음세대 교육을 시작한 것이다.

신황교회가 소장하고 있는 대표적인 유물은 전통 주물 방식으로 제작된 종이다. 당시 교회종을 제작하는 곳이 몇 곳 없었고 종이 흔들리면서 안쪽의 추가 종을 때리는 서양 방식이 주였지만, 신황교회의 종은 마치 외부에서 타종하는 전통종을 축소해 놓은 듯 한 모양을 하고 있다. 이 종은 분실됐다가 우연히 발견돼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는데, 종 표면에 교회 이름이 한문으로 선명하게 적혀 있었기에 가능했다.

손산문 목사는 "교회의 유물들이 헌책방이나 고물상에서 발견돼 돌아오는 경우를 가끔 보게 된다"며, 현재의 것과 옛 것을 함께 가지고 가려면 두배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옛 것은 정리하는 현상을 안타까워했다.

다행인 것은 최근 들어 문화재 보전과 관광 활성화를 위해 교회사적에 관심을 갖는 지자체들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순천시 매곡동에 위치한 순천시기독교역사박물관이나 광양기독교100주년기념관처럼 지자체의 지원으로 시설이 설립되는 경우도 있고, 문화재로 지정돼 유지보수에 도움을 받는 교회들도 늘고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목회자와 활동가들은 가치를 인정받는 일이 쉽지는 않다고 전했다. 역사를 정리해 책으로 만드는 일은 물론이고, 현장을 그냥 보존하는 일조차도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적(史跡)은 옛 것이지만,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현재의 것이기도 하다. 현장에서 만난 총회 사적들은 과거의 것이라기 보다 과거를 증언하는 현재의 것에 가까웠다.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시간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사적이었다.


차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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