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회 사적지, 그 안에 담긴 의미와 가치 재발견

총회 사적지, 그 안에 담긴 의미와 가치 재발견

[ 어서 와, 총회사적지는 처음이지 ] 4. 전주와 완주, 남원

임성국 기자 limsk@pckworld.com
2022년 04월 21일(목) 07:40
【 전주·익산=임성국 기자】이른 아침 서울 용산역에서 KTX를 타고 도심을 빠져나왔다. 코로나19의 마지막 확산세로 대중교통은 여전히 불편하지만, 기차는 '어서 와, 총회사적지'의 세 번째 순례지, '전주'를 향해 달렸다.

코로나로 멈춰선 일상도 찬찬히 기지개를 켜기에 선진들의 흔적, '한국기독교 사적지'를 찾는 여정은 부푼 기대로 가득했다. 복음의 역사와 숨결은 한순간도 멈춘 적이 없었건만, 위기의 시간 수없이 되뇐 '다시, 회복'은 나약한 우리가 느낀 두려움의 표출 같아 죄스러운 마음뿐이다.

모진 핍박과 열악한 상황에서도 목숨마저 아끼지 않은 신앙의 선배들을 기억하며 역경의 시간을 씻고 일어나야 할 때이다. 어렵다고 좌절할 수만은 없다. 안 된다고 핑계 댈 필요도 없다. 묵묵히 말씀을 푯대 삼아 일상을 소중히 살아가면 된다. 그러다 신앙의 생동감이 넘쳐 가벼운 마음으로 훌쩍 떠나면 은혜는 배가 된다. 역사의 현장에서 신앙고백이 터져 나올 때쯤엔 신앙의 정체성과 자긍심은 봄꽃처럼 화사히 꽃 필 것이다.

불신자는 믿게 하고 신자는 가르친다

#한국기독교사적 31호 '전주예수병원'


완연한 봄을 재촉하는 시간, 총회한국기독교사적(유물)협의회 회장 손산문 목사(자천교회)와 전주의 선교 관문 '전주예수병원'에 도착했다. 올해 개원 124주년을 맞이한 의료선교기관으로 '예수사랑'을 실천해 온 역사의 현장을 만나는 기회이다. 1897년 미국 남장로교회 전주 선교부가 출범 후 '불신자는 믿게 하고 신자는 가르친다'라는 목표 아래 의료를 통해 지역 복음화의 기초를 쌓은 곳이기에 의미가 새롭다.

전주예수병원은 미국남장로교 마티잉골드 선교사가 전주 성문 밖 은송리에 작은 집을 구입해 어린이와 여성 환자를 위한 외래진료소로 시작했다. 1971년 설대위 선교사는 현대식 병원으로 신축했다. 1986년에는 기독교의학연구원이 설립돼 신앙과 과학, 병원과 지역 사회, 교회와 선교 방향 연구를 지속해왔다.

최근에는 의료 시설 등 규모를 확장하면서 전북권 최고 시설과 의술을 자랑하는 총회 산하 의료기관으로 성장했다. 특히 2009년 민간병원 최초 의료전문박물관으로 등록된 '예수병원의학박물관'에는 과거 선교사들의 진료 모습, 치료기록과 기구 등 선교사 관련 유물과 근대 의학사를 볼 수 있는 사진 및 유물 다수가 전시돼 있어 당시의 선교 상황을 생생히 목격할 수 있다.

지난해에는 병원 주차장 맞은편에 '전주시기독교근대역사기념관'이 준공돼 오는 6월 개관을 눈앞에 두고 있어 의료선교 역사는 더욱 새롭게 순례객들을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선교트라이앵글'이룬 선교사 발자취 투영

#한국기독교사적 제30호 '전주선교부 남장로교선교사 묘원'


붉은색 벽돌 건물의 웅장함을 간직한 전주예수병원을 빠져나와 산책하듯 잠시 걷다 보면 또 다른 선교 역사를 경험할 수 있다. 병원에서 예수대학교 전주신흥중학교 전주신흥고등학고 전주기전대학 등으로 이어지는 교육 현장은 미국남장로교 선교사들의 선교 방식을 가늠하게 했다. 특히 중화산 아래 위치한 '신일아파트' 대신 한일장신대학교(한예정성경학교)가 옛 자리를 소중히 지키고 있었다면, 전주 완산구 14만평이 넘는 일대는 여전히 의료와 교육 전도까지 아우르는 선교타운의 옛 모습을 간직한 '복음동'이 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안타까운 마음이 깃든다.

총회한국기독교사적(유물)협의회 회장 손산문 목사는 "과거의 역사를 현재화하면 우리 시대의 기독교적 신앙의 유산, 콘텐츠가 된다"며, "전주는 과거 미국남장로교 선교사들이 선교부를 세우고 학교와 병원, 교회를 설립, '선교적 트라이앵글'을 통해 호남 지역 선교의 발판을 놓은 곳으로 역사적 의미가 크다"며 한국교회 성도들이 꼭 한 번 방문해야 할 곳이라고 했다.

한참 이어진 가벼운 발걸음은 진지한 수행이 됐다. 당시 선교사들의 헌신적인 수고와 희생적 삶을 토대로 한국교회가 복음을 전하는 교회로 성장할 수 있었음을 인정하게 했다. 특별히 호남을 기반으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선교 사역에 헌신한 미국 남장로교회 소속 테이트, 레이놀즈, 전킨, 불링, 레이번,메티, 데이비스 등 7명의 선발대 선교사에게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었다. 그중 예수병원에서 의료선교 사역을 펼친 린니 데이비스 해리슨(Harrison. Linnie Davis, 1862~1903) 선교사와 군산 선교의 개척자로 서문교회 담임을 역임한 윌리엄 전킨(William M. Junkin, 1865~1908) 선교사가 안장된 전주선교부 남장로교선교사묘원에서는 고국까지 버리고 목숨 받쳐 헌신한 그들의 발자취가 투영돼 저절로 숙연케 했다.

병원 맞은편 동산에 자리 잡아 새로 건축한 병원 주차장에서 10분은 걸어야 만날 수 있는 묘원에는 해리슨과 전킨 선교사 외에도 병원에서 헌신한 선교사와 그들의 가족 등 17명이 안장돼 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해 낯선 땅을 찾아온 선교사들의 헌신적 삶을 거짓 없이 배우고,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묘원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좁은 길은 관리가 안 돼 불편함을 은혜로 감수해야 할 수도 있다.

'마로덕, 그는 떠났지만, 그의 생기 여전해'

#한국기독교사적 제29호 '마로덕 선교사 사택'


전주를 찾았기에 호남 지역 선교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미국 남장로교 마로덕(L.O. MaCutchen) 선교사를 지나쳐서는 안 된다. 마로덕 선교사는 20대 청년으로 1902년 한국에 도착해 언어 연수를 받고 군산과 목포 선교부를 거쳐 1904년 전주 선교부에 부임해 지역 교회 설립 등 복음 전도에 힘쓴 인물이다. 전주를 비롯해 완주 무주 진안 장수 익산 금산 등 전북 일대를 순회하며 전도했고, 38년간 선교 활동을 펼치며 80여 교회를 설립했다. 이뿐만 아니라 초등학교 과정의 영학교를 지역교회 내 설립했고, '달 성경학교(전주성경학원)'를 통해 목회자와 교회지도자 양성에 나섰다. 한국독립운동을 지원하고 신사참배 반대운동에 적극 가담해 1941년 1월 29일 강제 추방됐지만, 하와이에서도 한국 이민자들을 위한 선교 사역을 펼치다 1960년 고향에서 별세했다.

마로덕, 그는 오래전 한국을 떠났지만 구 예수병원 건물을 사용하고 있는 엠마오사랑병원을 등진 산기슭 한편에 자리 잡은 마로덕
사택 건물에서는 여전히 그의 생기가 느껴지는 듯했다. 전주 내 서양식 주택으로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됐지만, 여전히 그곳은 기독교전북원로원, 전주생동하는교회 등의 예배 처소로 사용되며 그의 신앙과 삶을 계승하고 보존하기 위한 후진들의 노력이 가득했다.


기독교사적지, 공간 넘어 가치와 의미 부여

#한국기독교사적지 제29-1호 호성교회 마로덕 선교사 기념비


마로덕 선교사의 선교 정신은 지역 교회에서 더욱 빛이 났다. 그에게 배움을 받은 후진들은 그의 숭고한 희생과 삶을 소중히 간직하고자 힘썼다. 전주 시내를 벗어나 아름다운 소양천을 벗 삼아 자리 잡은 호성교회(한관수 목사 시무)는 마로덕의 역사를 지키기 위해 힘쓰는 마로덕의 종갓집과 같은 대표교회이다.

1936년 3월 전주고등성경학교 학생들이 마로덕 선교사의 회갑을 기념해 학교 앞에 세운 기념비를 지킨 교회로 마로덕의 삶을 조명한다면 꼭 한 번 방문해야 할 곳이다.

애초 마로덕 선교사 기념비가 있던 전주고등성경학교가 건물 화재로 소실돼 전북노회 사무실 앞으로 기념비가 옮겨졌지만, 노회 사무실 매각에 따라 방치되자 호성교회 한관수 목사가 노회에 건의해 2007년 4월 8일 호성교회 예배당 앞 마당으로 이전했다. 기념비에는 6.25 전쟁 당시의 총흔이 남아 있을 정도로 역사성을 간직하고 있다.

한관수 목사는 "마로덕 선교사님의 기념비를 이전하고, 성도들에게 더욱 책임있는 신앙생활을 강조했다"고 소개하며, "복음을 위해 태평양을 건너 낯선 땅에 오신 마로덕 선교사님의 삶을 기억하며 우리의 삶에 그 정신이 계승되길 바란다. 그 복음이 우리 안에 살아 있는 역사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역사적 가치와 의미 지난 유물

#한국기독교 유물 제2호 완주 계월교회(유물 제2호), 제34호 남원 세전교회


전주에서 50분가량 차량으로 이동했다. 총회 유물 2호를 간직한 완주 계월교회(김진호 목사 시무)에 도착했다. 총회 역사위원회가 지난해 교회가 간직한 기독교 유물의 역사적 가치를 높이 평가해 총회 한국기독교 유물이 보관된 곳이다. 전주노회 기독교 사적 1호로도 지정된 유물들은 대한예수교장로회 제52회 총회에서 개회 타종으로 사용된 종과 함께 1909년도부터 1919년까지 기록된 교인들의 출석부(예배록), 제27회 총회 회의록 등이 포함됐다. 특별히 계월교회 종은 홍수로 유실돼 전 교인이 지역을 헤매며 찾던 중 8년 만에 발견된 것으로 지역 교회사를 반영한 의미 있는 교회 유물로 평가받고 있다.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종 안에 담긴 소중한 사연을 접한 많은 성도들의 찾는 발길이 끊이지 않았으며, 특별히 전북 순례길 탐방 중 유물을 보기 위해 방문하는 필수 코스가 됐다.

마지막 순례지는 완주에서 1시간가량 이동해 도착한 남원 세전교회(김수동 목사 시무)이다. 교회에서는 특별한 의미와 사연을 지닌 종을 볼 수 있다. 2017년 한국기독교사적 제34호로 지정된 종은 일제 탄압의 징발을 피한 소중한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1917년 위인사 선교사가 설립한 교회는 1920년 오주열 장로가 구입한 종을 타종해왔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강제 징발을 피해 교회 종을 지키고자 힘썼던 오 장로는 자기 집 마루 아래 종을 보존하다가 해방 이후 다시 꺼내 교회 종탑에 매달았다.

당시 일제 강점기 강제 징발을 모면한 교회 종이 드문 상황에서 실제로 목숨의 위협을 받았지만 교회 종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당회원과 성도들의 기도와 헌신이 묻어난 종은 지금도 잘 보존돼 있었다.

이 같은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높이 평가한 손산문 목사는 "역사의 유산을 보존하는 데는 역사적 의식과 보존의 의지가 내포돼 있다. 이 두 가지가 선제적으로 포함돼 있어야 그 안에서 역사의 귀한 가치와 의미를 깨닫게 된다"며, "한국교회가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깨닫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가치를 현재와 다음세대에도 더욱 잘 전달 할 수 있도록 깊이 있는 노력과 관심이 필요하다"며 한국교회의 실천과 관심을 요청했다.

전주지역 순례:전주예수병원(제31호)-미남장로교 전주선교부 선교사 묘원(제30호)-마로덕 선교사 사택(제29호)-전주호성교회(29-1호)-완주계월교회(유물 제2호)-남원세전교회(제34호)

임성국 기자
끈끈한 연대의 정...과거의 현재화 작업에 동행    어서와, 총회 사적지는 처음이지 결산    |  2022.12.20 09:33
광주의 골목골목, 복음화 위한 고난의 발자취     8. 광주·전남 서부지역 야월교회 순교지, 미국남장로교 선교사 묘원, 우일선(Wilson) 선교사 사택, 옛 미국남장로교 광주선교부 부지, 오방 최흥종 목사 신림기도처, 비금덕산교회    |  2022.08.22 08:45
극동의 근현대사 민중과 함께 울었던 흔적들     7. 경북 영천 청송 포항 일대    |  2022.07.21 16:55
민노아 선교사의 자취 담긴 6채의 양관, 고스란히 보존돼     5. 청주의 양관    |  2022.05.21 16:42
호주 선교의 역사, 3.1만세운동 진원지를 찾아     3. 부산 및 경남 지역 : 부산진교회·부산진일신여학교·주기철목사기념관·춘화교회    |  2022.03.23 21:22
과거를 현재화 시키는 작업, '쓸모있는' 순례     1. 프롤로그    |  2022.01.19 10:00
만경강 뱃길서 뿌려진 복음의 씨앗, 빼앗긴 들에 '희망'을 심었지...    2. 전북 익산    |  2022.02.28 18:04
"기독교 사적, 아직도 알려져야 할 이야기 많다"    전남 남부:애양원, 신황교회    |  2022.06.20 02:06
대구와 경북 지역에 기쁜 소식을 전했던 아름다운 발자취를 찾아     10. 대구 및 경북 서남부지역: 대구제일교회(제13호), 대구YMCA(제15호), 청도풍각제일교회(제37, 37-1호), 성주후평교회(제40호)    |  2022.10.26 13:56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