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아 선교사의 자취 담긴 6채의 양관, 고스란히 보존돼

민노아 선교사의 자취 담긴 6채의 양관, 고스란히 보존돼

[ 어서 와, 총회사적지는 처음이지 ] 5. 청주의 양관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2022년 05월 21일(토) 16:42
민노아선교사비 앞에서 선교사의 일화를 이야기 하며 웃고 있는 손산문 목사, 이성득 목사, 김성수 목사.
민노아 기념관은 현재 일신학교의 상담실 겸 교목실로 사용되고 있다.
【 청주=표현모 기자】"민노아 선교사님은 '충북 선교의 아버지', '중부권 선교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분이죠.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한국교회에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는 거예요. 민 선교사님은 선교전략가, 건축가, 교육자, 한국교회 찬송가의 아버지이기 해요. 지금까지는 평양이나 서울 중심으로 선교사 역사가 발굴됐지만 지방에도 그에 뒤지지 않는 소중한 역사가 많아요."

지난 10일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탑동 청주성서신학원 원장실에 모인 원장 김성수 목사와 손산문 목사(총회한국기독교사적(유물)협의회 회장·자천교회), 이성득 목사(청주동산교회·전 청주성서신학원 이사장)는 서양 선교사들이 거주하던 '청주 양관(洋館·양옥과 같은 말로, 서양식으로 지은 집이나 건축물)'과 민노아 선교사(F. E.. Miller)에 대한 이야기를 기자에게 쏟아놓았다.


#청주 상당구 탑동 6개의 양관


현재 청주시 상당구 탑동에 있는 양관은 모두 6개다. 청주양관은 충청북도 지방문화재 133-1~6호으로 지정됐고, 지난 2012년 3월에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로부터 총회 한국기독교사적 9호로 지정됐다. 이 양관들은 청주의 최초의 서양식 건물이기도 하고, 청주에 기독교가 전파된 상징이기도 하다. 양관에 대한 설명을 하기 위해서는 청주에 기독교가 전해진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901년 청주에 살던 오천보 등 3명이 경기도 죽산으로 행상을 갔다가 그곳에서 미국 선교사를 만나 예수를 믿고 돌아와 마을 주막에 교회를 만들었다. 이곳이 청주 최초의 교회인 신대리교회. 이곳에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는 소식이 미국북장로교 선교부에 전해지자 선교부는 민노아 목사 부부를 파견했고, 그들은 선교활동을 하며 양관을 짓게 된 것. 민노아 목사는 처음에는 초가집을 얻어 기거하다가 1907년 청주에 온 계군(E. Kagin)과 더불어 청주시 탑동 야산을 26원에 사들여 나무를 베고 건물을 지었다. 당시 나무가 얼마나 크고 많았는지 장정 150명이 2주 동안 도끼로 나무를 잘랐고, 벌목한 나무를 옮기는데도 300명의 인력이 동원됐다. 양관 건물은 붉은 벽돌을 쌓고 기와를 얹어 서양식과 전통식이 복합된 형태로 준공됐다. 양관은 건축 당시 높은 지대에 위치해 청주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였다. 생전 처음 보는 서양식 건물, 형형색색의 꽃으로 가득한 정원, 양관을 잇는 구름다리를 손을 잡고 건너는 선교사 부부의 모습은 조선인들에게 생소하기도 하고,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청주성서신학원으로 사용되는 부례선 목사 기념 성경학교.
#선교사 거주지가 마을주민들의 배움터·사랑방으로


민노아기념관 정면 모습.
민노아 선교사는 1902년부터 미국 본부에 청주 선교본부가 필요하다고 요청, 2년 후 허가가 떨어져 1905년부터 양관을 건축하기 시작, 1906년에서야 완공됐다. 양관이 지어질 때 청주 사람들은 하루 평균 500명 정도가 모여 구경을 했다고 하니 당시 조선인들에게 이 건물이 얼마나 신기하게 비춰졌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당시에는 초가집이 대부분이었고, 개인주택을 2~3층으로 짓는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하던 때였다. 여기에 유리창문과 양변기, 벽난로 등은 이들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했다.

양관은 본래 선교사들의 거주와 사무실로 사용됐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생활이 어려운 어린이들과 문맹인 성인들에게 글을 가르쳐주는 배움터의 역할을 하게 됐다. 배움터의 역할 이외에도 고민이 있거나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마을주민들이 찾아와 고민을 쏟아놓기도 해 양관에는 매일 문간에 벗어놓은 신발이 수십 켤레가 있을 정도로 사람들로 붐볐다.

1914년에는 노관, 지도 의사 부부가 건물 한 곳에 병원을 차리고 주민들을 진료하면서, 청주의 양관 건물에서는 복음 전파와 함께 교육 선교, 의료선교까지 동시에 진행됐다.

청주 사람들이 처음부터 선교사들에게 마음을 열고 양관을 찾은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김성수 목사에 따르면, 첫 번째 주택이 완공될 무렵 홍수가 무심천 제방을 무너뜨려 400채의 가옥을 파괴하고, 40여 명의 인명 피해를 내는 자연재해가 발생했는데 선교사들은 이재민들이 양관에 머물 수 있도록 집을 개방하고 먹을 것을 주었다. 이때 지역주민들의 마음이 많이 열렸다고 한다.


포사이드기념관은 충북기독교역사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청주성서신학원, 미국 주일학교 성탄절 헌금으로 건축돼



이날 세 목사가 이야기를 나눈 청주성서신학원(부례선 목사 기념 성경학교)도 1921년도에 설립된 유적지다. 부례선 선교사가 청주에서 3년간 선교하다가 29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그의 아내 에밀리 몽고메리가 미국으로 가 모금을 해서 세운 건물이다. 당시 몽고메리는 한국 청주에 신학원이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하자 전국의 주일학교 성탄절 헌금과 모교회의 헌금을 합쳐 금액을 지원했다. 신학원은 처음 성경공부반으로 시작됐는데 당시 민노아는 농촌 지역 사역에 1년 중 6개월의 시간을 쏟을 정도로 각 지역을 돌아다니며 사경회를 인도했다. 청주선교부는 초기에 11개의 성경공부반을 개설했으며, 첫 10년 동안 남자성경학원의 학생수는 119명이었다.

일신여중고 내에 있는 양관 안내판.

#일신여고 내 보존되어 있는 양관


현재 양관 6채 중 민노아 기념관, 포사이드 기념관, 노두 기념관, 소민병원 등 4채가 일신여고 내에 위치해 있다. 소열도기념관은 청주 양관 중 유일하게 매각되어 개인 소유가 되어버렸고, 부례선목사 기념 성경학교는 청주성서신학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양관이 있는 언덕에는 현재 일신중고등학교가 들어서 있는데 예장과 기장의 분열로 1955년 세광학원이 기장에 속하게 되자 예장에서도 학교를 세우기로 하면서 건축된 학교다. 1966년 학교 설립 기성회를 조직해 미국연합장로회의 지원금과 청주 탑동의 선교부 부지를 사용해 1968년 개교했다. 일신여고 입구에 들어서 본관을 지나 왼편의 학교 안내도를 따라 걷다보면 4채의 양관을 만날 수 있다.

이중 밀러가 포사이드의 기부금으로 1906년 완공한 건물이 포사이드기념관이다. 학교 중앙 언덕에 자립 잡은 이 건물은 탑동 양관과 함께 동서양이 혼합된 건물양식을 갖췄다. 기념관 앞에는 세 개의 묘비와 한 개의 기념비가 서있다. 민노아와 퍼디 선교사 솔타우 선교사의 딸 데오드라 그레이스의 묘소다. 던컨기념관도 던컨 부인이 보낸 기부금으로 지어졌다. 민노아기념관은 일신학교의 상담실 겸 교목실로 사용되고 있다.

일신학교를 세울 때 학교 운영을 위해 양관 일부를 이전하려고 했으나 이 계획이 알려지자 충청북도문화재관리위원회는 양관 6개 동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1983년)해 오늘에 이르기까지 보존되고 있다.

1900년 대 초 당시 이곳에 올라와 본 조선인들은 아름다운 꽃밭을 보고 황홀해 했다. 그들은 이 아름다운 정원에 넋을 잃고 "선교사님들은 천당이 필요없겠네요. 여기가 천당이니까"라고 얘기하곤 했다는 이야기가 지금까지 전해진다.


표현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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