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선교의 역사, 3.1만세운동 진원지를 찾아

호주 선교의 역사, 3.1만세운동 진원지를 찾아

[ 어서 와, 총회사적지는 처음이지 ] 3. 부산 및 경남 지역 : 부산진교회·부산진일신여학교·주기철목사기념관·춘화교회

최샘찬 기자 chan@pckworld.com
2022년 03월 23일(수) 21:22
부산진교회와 부산진일신여학교 교사.
【부산·창원=최샘찬 기자】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의 사적지를 찾아 부산과 경남 지역을 방문했다. 이곳에선 한국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헌신한 호주 선교사들의 발자취와, 조국을 위해 3.1운동에 참여한 성도들의 희생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부산진교회와 부산진일신여학교, 창원의 주기철목사기념관, 밀양의 춘화교회 역사를 확인하는 여정을 총회한국기독교사적(유물)협의회 회장 손산문 목사와 함께했다.

이번 총회사적지 순례의 출발은 호주장로교가 남긴 신앙의 유산을 확인할 수 있는 '부산'이다. 교단별 선교정책에 따라 경남지역 선교를 담당한 호주선교회는 부산에 교회와 학교, 그리고 병원(triangel method)을 세웠다. 부산 좌천동을 방문하면 부산진교회와 부산진일신여학교 교사, 부산일신기독병원이 한자리에 모여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 호주장로교 한국 선교 역사의 첫 열매, 부산진교회
부산노회 부산진교회(신충우 목사 시무)는 호주 선교사에 의해 세워진 부산 최초의 교회다. 교회를 올라가는 길목에서 '아름다운 사람들의 아름다운 이야기' 팻말과 함께 선교사들의 얼굴이 걸려 있다. 매견시(제임스 노블 맥켄지)와 그의 딸 매혜란(헬렌 맥켄지)과 매혜영(케서린 맥켄지), 그리고 민지사(벨레 멘지스)와 왕길지(겔슨 엥겔) 등이다.

부산진교회에 들어서면 1층 로비에 사료실과 마주한다. 방문객은 이를 통해 부산진교회의 역사를 대략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부산진교회는 1891년 멘지스 선교사에 의해 신앙 공동체가 형성됐고, 1901년 왕길지 목사에 의해 조직된 교회로 발전했다. 1904년 부산 지역 최초로 당회를 조직했으며, 1914년부터 매켄지 선교사와 심취명 목사가 번갈아 당회장을 맡았다.

부산진교회 문두호 은퇴장로(좌)와 손산문 목사.
교회 앞마당엔 2개의 기념비가 있다. 한국 땅에 온 첫 호주 선교사인 덕배시(헨리 데이비스)의 순교기념비와 민지사(멘지스)와 무어 부인의 공로기념비다. 현재 비들은 부산진교회가 추후 복원했으며, 1931년에 세워진 공로기념비는 교회와 지역 유지들이 함께 세웠다는 데 의미가 있다. 또한 부산진교회 부활동산엔 매켄지 선교사의 장남 매야곱과, 맥레 선교사의 딸 캐더린의 묘도 있다. 이러한 섬김의 흔적을 통해 부산진교회와 호주교회와의 접촉이 유지되고 있다.

부산진교회는 호주 장로교 한국 선교 역사의 첫 열매라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이 의미를 인정받아 총회 역사위원회의 선정으로 총회 한국기독교사적의 지정을 앞두고 있다. 부산진교회는 호주장로교회와의 연결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호주장로연합교회가 파송한 양명득 선교사와 함께 선교 역사 관련 도서를 한 권씩 쌓아나가고 있다.

좌부터 손산문 목사, 신충우 목사, 문두호 은퇴장로.
부산진교회 신충우 목사는 "교회가 사적으로 지정돼 호주 장로교의 한국 선교 기념교회로서 공식적인 인정을 받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지만, 그것보다 앞으로 교회가 무엇을 해 나갈 것인가가 중요하다"라며, "그것이 총회가 부산진교회에 위임한 역할이라 본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역사적인 일에 조금이나마 참여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영광이고, 복음에 빚 진 역사 있는 교회가 감당해야 할 사명이라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부산진일신여학교 교사.
# 부산 3.1운동이 시작된 부산진일신여학교 교사
부산진교회에서 나오면 바로 맞은편, 붉은 벽돌의 2층 건물이 보인다. 오래된 건물인데,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나 베란다 형태의 서양식 건축 양식이 독특하다. 이 건물이 바로 부산·경남의 3.1운동의 진원지이자, 한국기독교사적 제7호,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55호인 부산진일신여학교 교사다.

교사 안에는 기념전시관이 설치돼 학교 역사를 볼 수 있다. 여성 교육에 관심을 둔 호주장로교 선교회 여자전도부가 1895년 좌천동 한 초가집에서 고아들을 가르치면서 3년 과정 소학교를 시작했다. 1905년 단층 양옥교사가 세워지고 1913년 고등과 1기 졸업식이 열리며 많은 지도자를 양성해냈다. 그러나 1940년 신사참배 거부로 일제에 의해 강제 폐교된다.

두 개 층으로 이뤄진 전시관은 책걸상 등 당시 교실을 재현하고 있어, 학생들이 사용한 생리학·식물학 교과서, 성경 등을 볼 수 있다. 부산진일신여학교의 초대 교장은 민지사 선교사가, 부산진교회 초대 당회장 왕길지 목사가 2대 교장을 맡았으며, 3대 당회장인 매견시 목사가 부산진일신여학교의 설립자다.

무엇보다 이곳에서 부산·경남의 3.1운동이 시작됐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3·1운동에 참여한 학생들과 선교사들'을 안내해둔 곳에서 익숙한 이름을 발견했다. 초대교장 벨레 멘지스, 교장 마가렛 데이비스, 교사 데이지 호킹 등이다. 이들은 호주인 최초로 지난 3.1절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유공자 포상을 받았다. 3.1만세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교사 2명과 학생 11명이 투옥됐는데, 이 중 9명이 부산진교회 성도들이었다.

부산진교회와 부산진일신여학교 교사를 본 이후엔, 길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면서 부산진교회의 왕길지기념관을 거쳐, 부산일신기독병원을 들르길 권장한다. 부산 나병원(상애원) 원장으로 헌신한 매견시의 두 딸 매혜란, 매혜영에 의해 설립된 부산 일신기독병원은 맥켄지역사관을 운영 중이며, 홈페이지를 통해 투어를 신청할 수 있다.



# 일사각오의 길, 주기철목사기념관
부산진일신여학교에서 서쪽으로 40km를 이동해 창원 주기철목사기념관에 도착했다. 기념관 앞에는 커다란 바위 조형물이 눈길을 끈다. 주기철 목사가 기도한 마산 무학산의 십자바위를 원형과 흡사하게 제작했다. 그 뒤로는 리모델링을 마친 2층 건물의 기념관이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경남노회가 창원시로부터 위탁관리 중인 주기철목사기념관(관장:김관수)은 2015년 개관했다. 이를 위해 경남노회가 2007년부터 건립을 결의하고, 창원시와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왔다. 과거 연 3만 명에 가까운 방문객들이 찾았으나 코로나19 영향으로 방문객의 발길이 줄고 있다.

이 위기의 때를 기회로 여긴 경남노회는 2020년 5월 주기철목사기념관을 전체 리모델링했다. VR-AR 최신 기기를 설치해 방문객들이 생동감 있게 역사를 눈으로 볼 수 있게 했고, 주기철 목사의 친필 편지 등 그와 관련 자료를 쾌적한 상태로 전시하고 있다.

기념관에선 시청각자료로 주기철 목사의 생애를 찬찬히 둘러볼 수 있다. 1938년 총회의 신사참배 가결, 주기철 목사의 강한 반대, 그리고 결국 목사직 파면. 의성농우회 사건으로 검속당하고, 오랜 감옥생활과 고문 끝에 1944년 평양형무소에서 옥중순교, 1963년 대한민국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

기념관은 지속적으로 유물을 확보해온 덕에 상당량의 전시자료를 소장하고 있다. 현재 특별전시회에선 주기철 목사의 4남 고 주광조 장로의 유품 특별전이 진행 중이다. 수장고엔 아직 공개되지 못한 호주선교사관의 축음기, 언더우드 타자기 등 교회사 관련 진품 유물들이 많다. 코로나19 이후를 위해 기념관은 다양한 체험활동과 백일장 행사 등 다음세대와의 접촉점을 늘리려고 준비 중이다.

또한 경남노회는 주기철목사기념관 부지 내 생가복원 공사를 추진 중이다. 창원시와의 협의로 결정됐으며 현재 건설 입찰을 받으며 준비하고 있다. 생가가 복원되면 기념관과 함께, 주기철 목사의 모교회인 웅천교회, 목회지인 부산 초량교회와 마산 문창교회 등 주기철 목사 일대기를 살펴볼 수 있는 역사적 현장이 구축된다.

특별전시관에서 진행 중인현재 특별전시회에선 주기철 목사의 4남 고 주광조 장로의 유품 특별전이 진행 중이다.
창원의 주기철목사기념관을 방문하면 창원공원묘원도 둘러보자. 묘원 내엔 경남선교120주년 기념관과 호주 선교사 순교묘원이 조성돼 있다.

주기철목사기념관 수장고에서 김관수 관장이 1911년 구약성경을 꺼내 손산문 목사에게 "한국교회의 국보급 보물"이라며 소개하고 있다.
춘화교회.
# 춘화리의 김씨들이 주도한 3.1만세 운동, 춘화교회
총회 한국기독교사적 제25호로 지정된 경남노회 춘화교회(임융식 목사 시무)에선 밀양의 만세 운동이 시작됐다.

배위량 선교사가 1893년 밀양 지역에 복음을 전하고, 그로부터 4년 뒤 1897년 춘화리에 춘화교회가 설립됐다. 춘화교회는 1910년 경신학교(중등과정 남학교)와 일신학교(중등과정 여학교)를 설립하고 계몽운동에 나선다. 결국 교육을 받은 기독교인들의 주도로 밀양의 삼일운동이 일어난다.

춘화교회가 주도적으로 만세운동을 이끌었다는 설명은 밀양시립박물관 내 밀양독립운동기념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김씨들이 일촌을 이루어 살았던 마을 춘화리에서, 경신학교 교장으로 재직하고 있던 김래봉 장로의 주도하에 김응삼, 김성수, 김응진, 김영환 등이 만세 운동을 일으켰다.

춘화교회 독립만세운동 유적비. / 한국기독공보 DB
이들은 부북면 춘화면 청운면 덕곡리의 각 마을로 연락해 농민 600여 명을 4월 6일 오후 12시 춘화교회에 모이게 했다. 춘화교회에서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한 후 징과 북을 치고 나팔을 불면서 각 마을을 행진했다. 기세와 규모에 놀란 일본경찰은 바로 출동하지 못하고, 날이 밝고 나서야 53명을 검거했으나, 대부분 농민들이기 때문에 풀어주었다.

춘화교회 인근엔 만세운동을 주도한 김성수 선생의 생가 터와 묘지가 남아 있다. 유골은 국립현충원으로 옮겨진 상태지만, 그를 기리기 위해 분봉과 기념비는 남아 있다. 춘화교회는 당회록과 공동의회록 교적부, 헌금장부, 과거 사진자료들을 소장하고 있으며, 최초 예배당 복원을 준비하고 있다.

한편, 이번 부산 및 경남 지역 총회 한국기독교사적을 둘러본 손산문 목사는 "교회의 역사 작업은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인간의 반응이자 증거 작업"이라며, "역사적인 작업은 때를 놓치면 굉장히 어려워지는데, 역사의 증인들이 최대한 살아계실 때 역사관 건립 등 보존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라고 제안했다.

지강 김성수 선생의 묘지. 유골은 국립현충원으로 옮겨지고, 현재는 추모비와 분봉만 남아있다. / 한국기독공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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