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나누려면 충전의 시간이 필요하다"

"사랑 나누려면 충전의 시간이 필요하다"

[ 연중기획V ] 'V' (5)vacation(휴식)

차유진 기자 echa@pckworld.com
2021년 06월 21일(월) 17:18
연중기획 'V'가 이번에 다룰 단어는 'vacation'이다. 'vacation'은 '휴가, 휴식, 쉼'을 의미한다. 어원이 '비우다'라는 의미의 'vacate'임을 감안하면, 'vacation'은 가득차 있는 자신을 비우는 일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도 있다. 자신을 가득 채우기 위해 전력질주하는 세상에서 간과하기 쉬운 비움의 원리들을 살펴본다.<편집자 주>



쌓여가는 코로나19 피로감 속에 주말과 겹치는 모든 공휴일에 대체일을 적용하는 '대체 공휴일법' 논의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 법률이 제정되면 올해만 4일의 휴일이 늘어나는데,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 성탄절이 해당된다.

모임인원 제한과 사회적 거리두기 등을 극복하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교역자들도 올해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다. 그러나 여름 프로그램이 집중돼 있는 7~8월을 눈 앞에 두고 휴가나 쉼을 준비하는 교역자는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아직 국내외 선교여행이나 봉사활동을 시작하기는 어렵지만 지난해 축소 또는 취소됐던 여름성경학교를 어떻게든 진행해보려는 교회는 상당히 늘어났다. 이미 한 달 전부터 기도회, 교사모임, 부모교육 등을 열며 여름성경학교를 준비하는 교회도 있다. 특히 온오프라인 성경학교를 준비하는 경우엔 더 많은 노력이 필요로 하기 때문에 지금 쉼을 생각하기란 쉽지 않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여름 프로그램을 마친 후에야 휴식을 갖는 교역자가 많지만, '쉼이 열심을 내기 위한 재충전의 시간인 것'을 감안하면 오히려 먼저 휴가를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교단 목회자들에게 3박 4일의 무료 휴식을 제공하는 '수건과 대야' 프로그램으로 잘 알려진 창성시민교회(장제한 목사 시무)는 지난해 코로나19의 어려움 속에도 무사히 모임을 가졌다. 참석자가 예년의 절반인 70명 대로 줄고, 참석 결정을 유보하거나 취소하는 일도 늘었지만, '매년 이 모임을 통해 힘든 여름을 이겨내는 교역자가 많다'는 생각 때문에 중단할 수 없었다.

제주도 등 관광지에서 매년 7월 초 모임을 열어 온 장제한 목사는 '일을 위해선 쉼이 선행돼야 함'을 강조했다. 그는 "참석자의 30% 이상이 매년 반복해서 오는 분들인데, 모두가 여름 전 쉼을 통해 긍적적 효과를 느끼고 있었다"고 말했다. 또한 "바쁘게 달려 온 사람들일수록 서로를 의식하지 않고 내려놓는 시간이 필요하다"며, "목회자들이 모여 함께 쉬고 대화하면서 자연스럽게 회복을 경험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수건과 대야' 프로그램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는 데 바로 교인들의 헌신이다. 교회는 이 프로그램을 위해 매년 30~40명의 봉사자를 필요로 한다. 휴식도 누군가의 섬김이 있을 때라야 비로소 완전해 질 수 있다. 교인들이 교회에서 쉼을 얻는 것도 어쩌면 교역자 등 다른 이들의 섬김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섬기는 사람이 탈진하면 교회 사역에도 문제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본보는 여름철을 앞두고 여러 차례 휴가와 재충전을 위한 기획을 마련해 왔다. 또한 전문가들의 글도 자주 게재했는데, 여기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번 아웃(burnout, 탈진)'이다.

교회 사역, 특히 영혼을 돌보는 일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특히 지치고 병든 영혼을 공감하고 위로하며 돌보는 데는 많은 감정이 소모된다. 감정 에너지가 소진되면 교인을 대할 때 사랑 대신 짜증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역자 스스로 쉼을 요청하기란 쉽지 않은데, '힘들어도 더 헌신하고 충성하라고 말해 온 내가 쉼을 말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 결국, 더 기도하고 각오를 단단히 해 위기를 이겨내려 하지만 번 아웃으로 더 큰 어려움을 겪곤 한다.

번 아웃은 '성과(成果) 사회'와도 관련이 깊다. 교회도 교역자들에겐 무한 경쟁의 성과 사회일 수 있다. 모든 일에 효율과 능률이 중시되며 나의 가치도 성과로 판단된다. 평균적인 능률이나 실적에 도달하지 못하게 되면 여러 부정적 감정들이 유발되기도 한다. 재능을 활용하기보다 재능의 노예가 되는 경우도 있는 데, 더 잘 하려는 욕심이 자신을 조정하는 경우다. 어쩌면 번 아웃은 강제적으로 우리의 욕심을 내려놓게 하는 하나님의 장치일 수 있다.

기독교에서는 긍정을 선호하지만, 심리 전문가들은 '과잉 긍정'을 착취와 소진의 원인 중 하나로 꼽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쉬는 것을 게으른 것으로 여기며 죄책감을 가져왔고, 대부분의 활동이 쉼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 있다고 여겨왔다. 하지만 성경은 일과 함께 쉼을 이야기한다. 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쉬며 누리는 시간이 있음을 보여준다.

'vacation'이 '비우다'라는 동사 'vacate'의 명사형임을 감안하면, 'vacation'은 가득차 있는 자신을 비우는 일로 볼 수 있다. 단지 일터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가득 차 있는 욕심, 경쟁, 목표, 생각 등을 모두 비워, 다시 무언가를 채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스마트 기기를 통한 소통이 발전하면서 쉼은 더 어려워졌다. 요즘 병원을 찾는 교역자들 중엔 안구건조증, 거북목, 어깨 통증, 두통 증상을 호소하는 일이 많다고 한다. 대부분 긴장 상태로 컴퓨터나 스마트 기기를 오랜 시간 사용할 때 일어나는 증상이다.

어떻게 하면 완벽한 휴가, 재충전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까? 휴가 기간 동안 사람들은 주로 가족과 시간을 갖는다.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맛 있는 음식을 나누며, 여행지에서 갖는 신선한 감정을 공유한다. 가장의 경우 휴가가 가족 봉사의 시간인 경우도 많지만, 가족의 행복한 모습으로도 만족과 쉼을 얻는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은 사랑 속에 있을 때 재충전된다. 사랑으로 가득한 'vacation'은 이웃과 사랑을 나눠야 하는 기독교인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다.


차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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