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성경 구락부 |2015. 02.10
[ 작은자 복지선교 40년 ]   

사단법인 대한청소년 성경구락부에서는 1974년 7월 1일 성경구락부 설립을 승인해주었고 명칭을 '제일중고등성경구락부'라 하였다. 무인가, 무허가 학교였던 이 학교가 이로써 소속이 생기게 되었다. 학교 입구에는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도록 맨 위에는 '활민부국', 오른쪽 기둥에는 '대한청소년 성경구락부 제일실업중고, 성남근로자청소년학교, 교훈, 깨닫자 뭉치자 …

독일 사람들의 모임, KNH |2015. 02.10
[ 작은자 복지선교 40년 ]   

1973년 가을 어느 날 노무라 목사는 김진홍 전도사의 전화를 받고 급히 한국에 왔다(노무라 모토유키 목사, 2014. 10. 9 이메일 면담). 아침 일찍 하네다 공항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탔던 노무라 목사는 2시간 후 한국에 올 때 탔던 바로 그 비행기로 도쿄의 집으로 돌아갔다. 독일에 가주었으면 좋겠다는 김진홍 전도사와 활빈교회 지도자들의 부탁 때문이었다. 70만 엔, 2천 달러 정도의 …

노무라 모토유키 목사 |2015. 02.10
[ 작은자 복지선교 40년 ]   

노무라 목사는 1931년 교토 직조공장 사장 손자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동지사대학 행정학 교수였다. 그는 목사이자 사회운동가였던 가가와 도요히코(1880~1960)의 영향을 받고 활동했던 사회선교의 선구자였다. 그의 어머니 노무라 가스코는 소비자운동가였으며, 1993년에는 가나안농군학교로부터 일가상을 수상하였고, 2005년 노벨상 후보에까지 오르기도 했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크리스천 사…

③청계천 빈민 선교의 시작 |2015. 01.27
[ 작은자 복지선교 40년 ]   

1971년 시작된 청계천 빈민촌 선교는 망원동 빈민선교와는 조금 달랐다. 망원동 빈민선교가 시작될 때 여러 사람의 협력이 있었다. 그러나 청계천, 정확히 말해서 송정동 74번지 개미마을과 판자촌에서는 김진홍이라는 장로회신학대학원생 혼자 빈민 선교를 시작했다.(김진홍 목사 면담 2014. 5. 29) 그는 연세대학교 도시문제연구소에서 6개월 과정 훈련을 받았다. 도시문제연구소 훈련은 1971년…

②1970년대 선교정책 |2015. 01.27
[ 작은자 복지선교 40년 ]   

1971년대 초 기독교계에서는 선교 100주년을 앞두고 선교정책 재검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1971년 12월 24일 '72년 새해 교회의 좌표'라는 좌담회가 총회 회의실에서 열렸다. 이 좌담회에는 이종성 장신대 학장, 김윤식 교단 총회 총무, 김형태 총회 서기, 노정현 연세대학교 교무처장, 이화미 여전도회전국연합회 총무가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선교 백주년을 향하고 있는 한국교회의…

①1970년대의 한국 |2015. 01.27
[ 작은자 복지선교 40년 ]   

화장실이 없는 동네 독일 아동후원단체인 킨더노트힐페(Kindernothilfe e. V. 이하 KNH)의 사랑이 우리나라 서울 청계천으로 흘러온 것은 1974년의 일이었다. 이 당시 우리나라는 사회적인 측면에서나 신앙적인 측면에서 많은 변화를 겪고 있었다. 1962년부터 제1차 경제개발이 시작되었다. 서울에는 의류나 옷, 가발공장과 같은 노동집약적인 산업체들이 많이 생겼다. 사람들은 농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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