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시대, 북핵은 인류 위협하는 위험

기후위기 시대, 북핵은 인류 위협하는 위험

[ 연중기획 ] '그래도 가야할 길, 평화' 9. 핵보유국과 비핵화.

서보혁 박사
2023년 10월 11일(수) 13:54
1. 과거



1992년 1월 31일, 남북한은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을 채택했다. 핵무기 개발 및 보유, 배치를 금지하는 것이 골자였다. 30여 년이 경과해 북핵 상황이 악화된 현 시점에서 볼 때 아련한 얘기이다. 당시 비핵화 공동선언은 1980년대 후반부터 전개된 남북 대화 및 교류의 연장선상에서 가능했던 일이다. 1991년 8월 8일에는 양측이 '남북 기본합의서'를 채택해 화해, 불가침, 교류협력에 합의했다. 그보다 남북이 상호 체제를 인정한 의의가 크다. 글로벌 냉전이 해체되면서 미국이 한반도에 전술 핵무기를 철거하고 북한과 접촉에 나선 것이 남북 긴장완화와 대화의 분위기를 만든 것이다.

물론 북한의 핵의혹은 사라지지 않았다. 북한이 안보 위협을 이유로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하고 긴장이 고조됐다. 그런 가운데 북한과 미국이 협상에 나서 1994년 10월 21일 제네바 '기본합의'를 채택하는데 1년 6개월이 걸렸다. 제네바 합의를 이행하는데 미국 내에서 공화당의 반발이 컸고, 남북관계가 진전이 없어 한미 간에도 대북정책을 둘러싸고 이견이 드러났다. 조지 W. 부시 정부가 들어서고 9.11 테러가 발생하면서 북핵문제는 중국의 주선 아래 6자회담으로 인계됐다. 북한은 미국의 군사적 위협을 진정시키고 핵 포기 대신 가능한 보상을 파악하기 위해 6자회담에 나섰다. 그 결과 2005년 '9·19 공동성명'이 나왔는데, 북핵 포기 대신 '안전보장+경제지원' 나왔다. 그러나 북한과 미국, 양측은 이 합의로 상대가 협력하리라 믿지 않았다. 한국은 정권에 따라 대북정책이 지그재그 모습을 보였다. 안보문제에 관한 한 북한은 한국을 불신하고 미국과 협상하려 했다. 그러나 이는 한미 동맹관계로 상쇄됐다. 그런 가운데 북한이 취한 최종 선택지는 미국과의 협상이 아니라 핵 보유의 길이었다. 북한은 한국, 미국과 가진 합의, 그리고 6자회담에서의 합의를 위반하고 그 대가를 감수하면서 그 길을 간 것이다.

합의와 위반, 핵 개발과 통제를 오간 지난 30년 이상의 북핵 역사로 무슨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그 교훈이 지금 상황에 적합한가? 그렇지 않다면 무슨 길이 있을까? 무시와 주관을 잠시 밀어놓고 생각해볼 필요는 충분하다. 물론 그 교훈은 간단하지 않다. 첫째, 핵개발을 (포기가 아니라) 중단하고 협상에 나선 때는 남북미 사이에 대화와 긴장완화 조치가 있을 때였다. 그 반대도 성립한다. 둘째, 핵문제를 포함한 북한의 안보문제는 북한의 입장 때문에 남북보다는 북미 채널이 상대적으로 더 큰 역할을 한다. 그것이 다자회담의 형식을 빌리더라도 말이다. 셋째, 합의 이후 준수과 위반 사이에는 당사자들의 진정성과 국내정치적 변수가 영향을 미친다. 여기서 당사자의 진정성은 당사자와 하나님 밖에 모르기에 상대는 적어도 합의를 위반하지 않은 상태에서 상대를 감시하는 것이 최선이다. 이런 교훈이 지금 상황에 딱 맞지 않더라도 미래를 생각할 때 성찰의 창으로 삼을 만하다.



서보혁 교수
2. 현재



그럼에도 과거에 대한 성찰이 현재와 반드시 부합하지 않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가 발간하는 '2023 연례보고서(SIPRI Yearbook 2023)'에는 북한의 핵무력이 국가안보전략의 중추이고 핵탄두를 30기 가량 보유하고 그 이상의 생산능력이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북한은 지난 9월 26~27일 최고인민회의에서 '핵무력 강화'를 헌법에 명시했다. 그러나 최고인민회의보다 더 위상이 높은 노동당 제8차 대회(2021.1.5.~7)에서 김정은은 "최강의 전쟁억제력 비축", "핵무기의 소형경량화, 전술무기화"을 주창했고 그에 따라 핵개발을 고도화시키고 있다. 북한이 핵보유국을 자처한 지는 오래됐다.

이에 대해 한국은 한미동맹을 핵동맹으로 발전시켜 북핵에 대응하고 있다. 대북정책 성향은 집권한 정부에 따라 다르지만, 북핵 위협에 대응하는 국방력 강화는 초당적인 행보를 보여왔다. 그 연장선상에서 제75주년 국군의 날을 앞두고 9월 26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국군의 시가행진이 10년만에 진행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북한이 핵을 사용할 경우 한미동맹의 압도적 대응을 통해 북한 정권을 종식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바이든 정부는 다른 행정부에 비해 외교안보정책에서 대북정책의 비중을 약화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코로나19와 국내정치적 갈등과 중국, 러시아 대응에 집중해야 하는 상황이 작용했을 것이다. 바이든 정부는 북핵의 고도화에 직면해서 한미동맹은 물론 한미일 삼각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북한에 대해서는 제재를 지속하면서 대화의 문은 열려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은 태도가 북핵을 저지하고 대한민국의 안보와 한반도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분명 북한이 기만·지연·분열 전술을 구사하면서 핵개발을 지속해온 본심을 경계하는 자세를 전제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 보건·기후 위기와 우크라이나 사태가 겹쳐 식량, 에너지, 건강 위기 등 지구촌 차원에서 인류의 실존적 위기가 엄습하고 있다.



3. 미래



핵무기, 북핵 문제는 새로운 환경에 직면하고 있다. 그 환경은 전통적인 군사안보 위협에 인간안보 위협이 겹친 것이다. 핵무기 개발 및 배치·운용에는 돈과 광물, 인력 등 전반적인 국가자원의 왜곡된 배분은 물론 인간은 물론 다른 생명체와 토양, 공기 등 생태환경에 악영향을 미친다. 이렇게 핵의 위협 범위가 광범위할 뿐만 아니라 그 영향이 서서히, 오랫동안 발생하는 소위 '느린 폭력'을 보여준다. 이렇게 인류가 미증유의 글로벌 복합위기에 직면한 상태에서 비핵화는 무기만 아니라 에너지, 북핵만이 아니라 전 세계의 비핵화가 기본 노선이 아닌가 생각하는 것이다.

지난 몇 년 동안 냉전 해체 이후 세계는 가장 높은 군비경쟁으로 치닫고 있다. 그에 반례해 대중의 삶은 지역과 인종을 막론하고 피폐해지고 있다. 다시 한반도 비핵화 남북 공동선언을 생각해본다. 한반도 평화에 관해 남북의 책임과 주도성, 그리고 미국의 협력 하에서 가능했다. 지구화, 정보화, 패권의 쇠퇴 등을 운운해도 미국은 아직 세계 유일의 패권국가이다. 한국은 그 동맹국이다. 두 나라는 자유민주주의로 연대하고 그 연장선상에서 보건·기후·재난·분쟁 등 글로벌 이슈에 관심이 높고 기여도 역시 높다. 북핵 위협에 공동 대처하는 한편, 지구촌의 생존 위협 앞에 전 세계의 비핵화도 선도할 능력과 위치에 있다. 이는 윤석열 정부가 추구하는 '글로벌 중추국가'로서의 위상에도 부합한다. 북핵 포기, 한반도 비핵화를 추구하되 거기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2021년 1월 '핵무기금지조약'이 발효됐다.

글로벌 복합위기는 특정 이념을 기준으로 국가 대 국가의 대결을 허용하지 않는다. 인류와 인류의 터전이 존립의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이제 고온현상, 해수면 상승, 대형 대풍과 산불이 인류의 삶을 더욱 가까이서 위협하고 있다. 핵(무기)을 근본적으로 생각하는 이유이다. 필자는 북핵도 반대하지만 모든 핵을 반대하고, 모든 무기를 반대하고, 자연 기반·재생 에너지를 지지한다. 물론 그에 앞서 절제와 겸손으로 생명과 삶의 터전을 대해야겠다는 반성을 한다.



서보혁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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