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성벽에 돌을 들고

무너진 성벽에 돌을 들고

[ 미션이상무! ]

임성국 기자 limsk@pckworld.com
2023년 08월 09일(수) 10:16
철원에 있는 십자군교회 예배당 모습.
그리스도인이라면 응당 신앙의 롤모델이 있을 것이다. 필자의 롤모델은 느헤미야이다. 나랏일과 하나님의 일을 겸하고 있다는 점에서 군목으로 재직 중인 필자에게도 귀감이 되지만, 그보다 중요한 사실은 '느헤미야의 진심' 때문이다. 이미 황폐해진 이스라엘로 돌아온 느헤미야는 가장 먼저 성벽을 돌아보았다. 한밤중에, 모두가 잠든 때에 아무에게도 알리지 아니하고 무너지고 불탄 성을 둘러본다. 말을 타고 가다가 더 나아갈 수 없을 땐 말에서 내려서 걷고 또 걸었다. 느헤미야가 무너진 성벽의 돌을 들고 했던 다짐은 이후 백성들을 향한 선포에서 강력하게 나타난다.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 이것이 그리스도의 일을 명 받은 이의 진심이며, 나의 진심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필자의 첫 근무지는 철원에 위치한 3사단의 '십자군교회'였다. 이름마저도 군인스러운 이곳은 육군 내에서도 악명(?)높기로 소문난 '필사즉생 골육지정 백골부대'의 신병교육대 교회였다. 초임이기에 의지는 있지만 모든 것이 어리숙한 상태에서 도착한 십자군교회를 처음 바라보았을 때가 눈에 선하다. 커다란 해골 동상이 교회 앞마당에 떡하니 있었다. 빨간 벽돌로 아담하게 지어진 교회 건물과 해골 사이엔 커다란 괴리감이 존재했다. 실제로는 부대의 랜드마크이지만 이 해골 동상이 필자에게는 마치 "무너져가는 청년선교의 현장을 여실히 보여주마!"하고 웃는 악당들의 웃음소리 같았다.

해골 덕에 정신을 번쩍 차린 탓일까? 필자는 생각했다. '무엇을 먼저 할 수 있을까? 그래, 낡은 교회 로비를 정리하고 누가 봐도 해골이 아닌 깔끔한 교회가 먼저 보이게끔 하자!' 그리고 무작정 망치와 헤라를 들었다. 벽을 치고, 바닥을 부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손에 든 것들을 내려놓고 그저 울 수밖에 없었다. 아주 오래되어 낡아버린 장판을 바닥에서 뜯어내자, 건축 당시의 대리석 바닥이 보였다. 그리고 잊히지 않는 그 모습, 로비 한가운데 대리석 바닥에 금줄로 선명하게 그려졌던 십자가. 아마도 건축가는 '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다'라는 사실을, 로비를 지나치는 모든 이들이 볼 수 있도록 십자가를 그려놓지는 않았을까? 그러나 세월이 지나며, 대리석은 흙먼지가 날린다는 이유로 장판으로 십자가마저 덮어버리지 않았을까?

그때 들린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은 '더는 십자가가 덮이지 않게 해라. 느헤미야의 마음으로 사역해라'였다. 무너진 성벽에 돌을 들고 '더이상 하나님의 나라를 빼앗기지 않으리라!' 다짐의 다짐을 했을 그 마음 말이다.

작금의 교회현실은 대체로 암담하다. 교회 안팎의 수많은 문제가 세간에 오르내리며 사회는 곱지 않은 시선으로 교회공동체를 바라본다. 누군가는 '교회는 망했다'라며 공동체를 떠나고, 누군가는 도망갈 시기를 놓쳐 마냥 주저앉아 '마라나타의 시기'만을 기다린다. 그런데 말이다. 정말로 그러한가? 정말로 무너져 가는가? 무너진 성벽의 돌은 한 번 들어봤는가? 그 돌 아래에 여전히 예수가 계신다. 여전히 밟히고, 찌그러지고, 밥 먹듯이 무시당하고, 십자가의 수난마저 체화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다. 그리고 기다리신다.

우는 심정으로, 애타는 마음으로 무너진 성벽의 돌을 집어 들고 다짐할 이 시대의 느헤미야를 각자의 자리에서 사람들과 함께 울어줄, 이스라엘의 성벽처럼 무너지고, 십자군교회의 장판처럼 굳어진 사람들의 마음 안에도 여전히 예수가 필요하며, 여전히 유일한 소망이심을 알려줄, 시대를 향한 다짐이 이전보다 더 우리 안에 타오르기를 소망한다.

김진협 목사 / 독수리교회·육군 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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