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이름, 기독 학부모!

새로운 이름, 기독 학부모!

[ 주간논단 ]

신기원 교장
2023년 07월 18일(화) 10:00
혼돈과 공허를 가르고 흑암을 뒤집었던 창조의 첫날, 하나님은 가장 먼저 빛을 만드셨다. 성경은 말씀한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창 1:3)' 그런데 창조의 속성상 하나님은 빛보다 먼저 만드셨어야 하는 것이 있었다. 이것을 먼저 만들어야 빛을 만드실 수 있다. 무엇일까? '이름'이다. '빛'이라는 '이름.' 빛이라는 이름이 없이는 '빛이 있으라'라고 말씀하실 수 없다. 하나님은 '빛'이라는 '이름'을 먼저 만드신 다음 '빛이 있으라' 말씀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첫 번째 미션도 '이름 짓기'였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이름'을 지을 수 있는 미션과 특권을 주셨다. 동물들이 아담 앞에 줄을 섰다. 아담은 자신 앞에 장사진을 이룬 동물들의 이름을 빠르고 정확하게 불러주었다. 하나님께 물려받은 창조의 역량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나님은 인간의 이름을 바꾸기도 하셨다. 성경에는 개명한 사람들이 대략 15명 정도 등장한다. 대표적인 사람이 아브라함, 사라, 야곱, 베드로, 바울 등이다. 하나님은 왜 그들의 이름을 바꾸셨을까? 이름이 존재이고 의미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김춘수의 '꽃' 중) 우리는 모두 꽃으로 살아야 하고, 의미로 살아야 하고, 잊혀지지 않는 눈짓으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수많은 이름들이 있다.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도 있고, 소속된 곳에서 불러주는 이름도 있다. 그 많은 이름 중에 새로운 인식이 필요한 이 이름 하나를 소개하려고 서론이 길어졌다. 바로 '기독 학부모'이다. 대부분의 성도들은 자녀들이 학교에 다니는 학부모들이다. 이미 학부모였던 성도들도 있고, 조만간 학부모가 될 성도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기독학부모로써 정체를 가지고 있는 부모가 얼마나 될까? 기독교적 관점으로 자녀를 양육하고 가르치는 부모가 얼마나 될까? 무너지고 황폐한 교육의 현실 앞에 하나님의 마음으로 애통의 눈물을 흘리는 부모가 과연 있기나 한 것일까?

아이들은 살인적 경쟁의 우리(Pen)에 갇혀있다. 청소년 3명중 1명이 자살 충동을 느낀다고 한다. 아동 우울증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우울한 아동' 이것은 도무지 말이 안 되는 표현이다. '하얀 먹구름'처럼 형용모순이다. 아이들이 있는 모든 곳이 놀이터이고, 아이들이 만지는 모든 것이 장난감이고, 아이들은 재미와 흥미의 롤러코스터를 매일 타도 지치지 않는 슈퍼맨이다. 아이들은 결코 우울할 수 없는 존재다. 누군가의 말이 정말 맞다. '대한민국 아이들은 기적적으로 우울하다'

이 고통과 애통의 상황을 누가 바꿀 수 있을까? 아니 누가 책임지고 바꿔야 하는가? 바로 '기독 학부모'이다. 자녀 교육에 대한 책임은 '신앙교육'에 국한되지 않는다. '학교 교육'을 포함한 모든 교육의 근원적 책임은 부모에게 있다. 교육의 주체는 정부도 교육부도 시교육청도 아니다. 학부모는 자기가 확신하고 있는 가치를 자녀에게 가르치고, 학교를 선택해서 보낼 수 있는 본질적 권한을 가지고 있다. 이 권한을 제대로 사용하는 '기독 학부모'가 절실히 필요하다.

'기독 학부모 교실'의 저자인 박상진 교수는 기독 학부모를 4가지 유형으로 구분했다. 첫 번째는 '기독 학부모'에서 '기독'만 강조되는 경우, 기독교인으로서 충실하지만 학부모로서의 역할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교회 봉사형'이다. 두 번째는 '기독 학부모'에서 '학부모'만 강조되는 경우, 학부모의 역할과 사명은 강조되지만 '기독'이 강조되지 않기에 '세속형'이다. 세 번째 '기독'도 강조되고 '학부모'도 강조되지만 이 둘 사이가 연결되어 있지 않은 '분리형'이다. 네 번째는 '기독'이 학부모에 스며있고, '학부모'가 기독 안에서 비로소 그 분명한 의미를 발견하는 '통합형'이다.

우리가 지향하고 소망하는 '기독 학부모'는 '통합형 기독 학부모'이다. 통합형 기독 학부모는 '기독'의 든든한 뿌리를 내리기 위해 매일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을 갈망한다. 매 순간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묻고 묵상한다. 그리고 신앙과 삶을 분리시키지 않는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육이 무엇인지 분별하기 위해 몸부림을 친다. 학부모에게 주어진 교육의 권리를 명확히 이해한다. 학부모에게 주어진 교육의 선택권, 참여권, 요구권을 적극적으로 발휘하며 엄연하고 당당한 교육의 주체가 된다. 힘든 일이다. 그렇지만 이것이 가치 있는 삶이다.

'빛이 있으라' 말씀하신 태초의 하나님이 지금 다시 세상을 창조하신다면 아마 서둘러 말씀하실 것 같다. '기독 학부모가 있으라.' 기독 학부모가 빛이 되어야 하는 절실한 시대이다.




신기원 교장/밀알두레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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