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기다림의 달인

하나님은 기다림의 달인

[ 목양칼럼 ]

박봉재 목사
2023년 07월 12일(수) 15:29
필자가 농촌목회 초년병 시절, 강원도 산골에서 목회하시던 큰 형님이 이런 질문을 했다. "목회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 무엇인 줄 알아?" 그때는 목회 초기였기 때문에 모든 일이 다 어려울 때였고 선뜻 답하지 못했다. 형님은 "기다리는 일이 제일 어려운 것 같아"라고 말했다. 세월이 많이 흘러 이제 은퇴를 몇 해 남겨두지 않은 오늘 새삼 형님의 말씀을 떠올려보니 과연 맞는 말이었다. 목회에서 제일 힘든 일은 기다리는 일이었다. 어디 목회뿐이겠는가? 이 세상에서도 제일 어려운 일이 기다리는 일이다.

짧고 유한한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는 뭐든 빨리빨리 이뤄지길 원한다. 그리고 우리 인생 대부분의 문제가 여기서 발생한다. 기다리지 못하고 서두르면 일이 꼬이는 수가 많다. 그래서 성숙한 사람이란,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다. 씨를 뿌렸으면 여름 지나고 가을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때가 되면 열매를 맺는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그런 믿음이 없으니까 늘 불안해하는 것이다. 사람 농사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 교회 권사님의 남편이 곧 돌아가실 것 같다는 전화를 받았다. 황급히 달려가 보니 방안에서 두 아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남편은 얼마 전 병원에서 가망이 없다는 진단을 받고 집에서 임종을 준비하고 있었다. 권사님은 불신자인 남편의 구원을 위해 부단히 노력한 분이었다.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권사님의 복음 제시로 남편이 예수님을 영접했다'는 얘기를 들었기에 필자는 '하나님의 자녀 됨의 증표로 세례를 베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급히 세례수를 준비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다. 그리고 이어진 임종예배 중 남편은 아주 평온한 모습으로 조용히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됐다.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에 주목하지만 그분의 목적지는 우리 안에 오시는 것이었다. 구원의 여정은 들어오셔서 시작하는 것이다. 마지막 순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모습을 지켜보며 유가족들과 장례식을 마쳤다. 신앙이 없는 큰 아들이 "아버지가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도 목사님이 오시기를 기다리셨나 봅니다"라고 말했다. 마지막 순간 세례를 받으며 하나님의 부름을 모습을 보며 신비와 은혜를 느꼈다.

장례식을 마치고 아들과 며느리는 아버지를 잡았던 손으로 어머니 권사님의 손을 잡고 우리 교회의 예배자로 서게 됐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9)"는 말씀이 있다. 선은 헬라어로 '칼로스'이고 히브리어의 '토브'이다. '좋은'이란 뜻이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시다.

사람이 바뀌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오랜 세월 동안 함께 살아 온 육신의 속성이 얼마나 질긴가? 그렇지만 가야 한다. 골고다가 바로 저기인데 여기서 멈출 수는 없지 않은가? 언약궤 앞에서 일곱 나팔을 불어야 한다. 씨 뿌리고 포기하지 않으면, 새로운 생명이 잉태되리라. 무너진 여리고 위에 예루살렘을 세우리라.

그냥 스스로 잘한다 생각하며 오해하다 떠날 인생이었는데 이렇게 지각을 열어 깨닫게 해주시니 감사하다. 하나님은 기다림의 달인이시다.

박봉재 목사 / 연곡소망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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