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 트라우마 이해

탈북민 트라우마 이해

[ 주간논단 ] 북한사람 이해하기(3)

김경숙 박사
2023년 06월 13일(화) 10:00
뇌가 담당하는 가장 중요한 기능은 우리의 생존을 보장하는 것이며, 이 기능은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유지된다. 우리의 뇌는 우리를 둘러싼 환경과 상호의존 관계에서 '안전한' '위험한'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수준에 따라 자기보존을 위한 반응단계를 조절한다. 사회적 행동과 정서 조절을 지지하는 신경 회로들은 신경계가 '안전'하다고 느낄 때만 기능하며, 그 회로들이 건강과 성장, 회복에 관여하며 인간다운 삶을 유지할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위험한' 또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단계에서는 싸움(도전)-도피 혹은 셧다운(얼어붙기) 반응과 같은 자기방어적 대처를 하게 된다. 이 단계에서는 건강과 회복을 지원하는 사회 참여체계가 작동하지 않고 오롯이, 자기보존 차원의 방어를 지원하는 상태로서 생존에만 몰입하는 동물 수준의 삶에 머물게 된다. 심리적으로는 신뢰 상태가 과잉 경계 상태로 대체된다. 트라우마는 바로 자기방어에 갇힌 상태, 즉 싸움-도피 반응에 갇혀버리거나 만성적인 기능 정지 상태에 얼어붙은 경우를 말한다. 이렇듯 트라우마는 안전하지 않은 환경에서 생존을 보장해준 방어 기술이 위험이 지나간 후에도 활성화되어 대가를 치르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하버드 정신의학과 교수인 허먼은 폭력과 속박이 정치적 영역에서 경험되든, 가정과 성관계라는 사적인 영역에서 경험되든 상관없이 통제받고 종속되었던 경험은 공통적인 정신적 외상을 가져온다고 말한다. 반 데어 콜크 역시 트라우마는 생리학적 근원을 가지고 있어 몸과 마음, 뇌가 인지한 정보를 다루는 방식 자체를 근본적으로 재편한다고 말한다. 학자들은 트라우마는 자기-타인 인식의 변화, 자기-타인-공동체와의 관계 변화, 정서 조절 기능의 손상, 주의력과 의식기능의 손상, 신체화 증상, 정체성 변화, 핵심 신념 체계의 외상화 등 다층 위의 신체적·심리적·정신과적 증상들을 포괄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안정감을 깨트리는 경험들이 인간의 신체적·심리적·정신적 영역에 어떠한 손상을 초래하는지, 인간이 불안전한 세상에서 살아가며 잠재적으로 치르는 대가가 어떠한지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가령 우리가 '위험' 또는 '생명의 위협'에 얼마나 취약한 존재인지 알게 된다면, 안전하지 않은 환경에서 자기보존을 위한 적응적 반응 대가인 트라우마가 인간을 얼마나 비인간화하는지 이해한다면, 우리에게 안전한 생태체계 환경이 얼마나 절실한지 유념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트라우마에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인간이 몸담은 생태체계 환경이 인권을 보호받을 수 있는 안전한 환경인지, 혹은 반평화적·비인권적 환경인지의 질문과 맞닿게 된다. 반평화적·비인권적 환경은 전쟁이나 테러 상황만이 아니다. 세계에서는 전체주의 국가 통제와 종속, 가정폭력, 아동학대 등의 '전쟁'을 겪는 이들이 훨씬 더 많다. 예컨대 전체주의 체제에서 북한사람이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는 정치적 폭력·가정폭력·경제적 결핍과 극심한 기아 등은 그 자체가 트라우마 경험이며 심각한 인권침해다. 탈북과 중국살이, 북송 등도 극한적인 인권침해 경험으로 그들의 트라우마 기억을 촉발할 수 있는 사건들이다. 이렇듯 우리 시대의 탈북민은 고질적인 인권침해를 경험한 트라우마 희생자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트라우마는 자기(self) 손상뿐 아니라 개인과 공동체를 연결하는 애착과 의미의 체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즉 트라우마는 세상이 안전하고 살만하다는, 자기는 가치 있으며 사랑받을 만하다는, 세계질서에는 의미가 있다는 기본적인 믿음을 파괴한다. 또한 자신은 온통 '적'에게 둘러싸여 있고 세상은 위조되었다고 의심하며 불신하게 된다. 이렇게 불안감을 느끼며 화가 난 몸으로 살아가면서 고질적인 정서 조절의 어려움을 겪게 된다. 예컨대'나뭇가지를 뱀으로 보며' 자기방어 차원의 공격적·폭력적 대응을 한다든지, 혹은 공포에 얼어붙는 것과 같은 반응을 하게 된다. 실제로 일반주민들은 탈북민의 성격 특징이 매우 공격적·폭력적인 성향을 나타내며 의심과 불신이 깊다고 말하기도 한다. 또한 정신 신체화 증상으로 뚜렷한 원인이 없는 만성통증, 두통, 소화기 질환, 순환기 질환 등 다양한 증상을 발현하며 고통 속에 질척대게 한다. 이렇듯 트라우마는 한 개인의 자기(self) 기능화와 사회적 기능화를 제어하며 삶의 안녕감을 현격히 떨어뜨린다. 가령 트라우마는 탈북민 정신건강을 침해하며 남한사회 정착과 사회통합을 저해하며 사회적 비용부담을 증가시킨다. 특히 복음 전도와 제자화, 예수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가는 신앙 여정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따라서 한국교회는 한 생명의 구원을 위해, 개인적·공동체적 치유와 회복을 위해 탈북민 트라우마에 주목해야만 한다.



김경숙 박사/연세의료원 통일보건의료센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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