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의 축복

설교자의 축복

[ 목양칼럼 ]

이근형 목사
2021년 08월 18일(수) 08:20
매 주일 예배 시 선포되는 설교말씀의 제일 큰 수혜자는 회중이기 이전에 설교자 자신이다. 필자는 IMF가 한창이던 1998년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신대원에 지원했다. 예기치 못한 결정에 부모님의 반대가 무척이나 심했지만 아들의 확고한 결단을 꺾지는 못하셨다. 복음을 전하여 성도를 그리스도의 제자로 양육하는 목회적 사명은 너무도 고귀하여 그 어떤 세상 가치와 목적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런데 그 때는 미처 몰랐다. 목사에게는 양육도 중요 하지만 결국은 설교가 가장 중요한 사역이라는 것을 말이다.

매주 주일마다 의례적으로 듣던 설교의 준비가 그토록 어려운 것인지를 미리 알았더라면 목회자의 길을 한번 더 재고해 보았을 것이다. 가장 크게 어려움을 느낀 부분은 설교와 목회자의 삶이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예컨대 내가 먼저 용서하지 못하면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설교할 수 없었고, 내가 전도하지 않으면서 전도를 강조할 수 없었다.그래서 설교준비는 주일이 두려울 정도로 힘겨웠다. 때로는 설교 준비로 긴 밤을 지새운 적도 있었다.

그렇게 신학을 시작한지 어느새 20년이 넘었다. 부족한 가운데 담임목회를 시작한지도 5년차가 되었다. 지금도 말씀을 연구하고 공부하며 알아가야 할 것들이 여전히 태산이지만 설교 준비가 예전보다는 조금 여유로워진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부터인가 말씀 앞에 두렵고 떨림으로 서는 설교자의 고뇌와 회개가 오히려 약해지는 듯 했다.

그러던 중 최근 설교 준비를 하다가 말씀을 통해 성령께서 문제점을 깨닫게 하셨다. 그것은 사도행전 5장에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의 비극적인 이야기이다. 이들 부부는 이웃의 구제를 위해 자발적으로 땅을 팔았다. 하지만 그 중 일부만 주님께 드리고는 전부라고 거짓을 말했다. 이들의 거짓은 곧 드러났고 하나님의 심판으로 부부 모두가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게 된다. 이 사건에 대한 여러 해석이 있지만 분명한 사실은 그들의 기만 행위가 하나님 앞에서 너무도 큰 죄악이었다는 점이다. 베드로의 지적처럼 그들은 성령을 속이려 했고 그 행위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거룩한 성도가 하나님을 속이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고 신의를 저버리는 중대한 범죄행위이다.

이 시대의 교회가 사랑의 하나님만을 강조하다 보니 희생과 헌신 없는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이 많아질까하는 우려가 크다. 목회자라고 예외가 아니다. 한 주간 이 본문을 묵상하며 지내다가 어느 시점에서 나 스스로가 하나님을 속이려는 모습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찬양을 부를 때 목사인 내가 전심으로 경배하지 않으면서 마스크 뒤로 그 진실을 숨기려 했고, 하나님께 다 드리겠노라 헌신했던 마음을 다시 되찾아 와 모든 것의 주인이 되고자 했다. 하나님을 속이려 하면서도 그것이 죄인지 조차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말씀을 준비하며 묵상 가운데 이런 모습은 아나니아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너무도 부끄러운 순간이었다.

다시 생각해 보면 죄를 깨닫는 자체가 은혜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고뇌하며 씨름하는 설교자에게 허락해 주시는 특별한 복이다.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 "라고 고백했다. 날마다 자신을 쳐서 말씀 앞에 복종시키는 목회자가 가장 복되며 그가 섬기는 공동체의 성도들이 행복한 것이다. 설교 준비는 분명히 어렵고 고통스런 과정이지만 이를 통해 회개하고 주님을 더 가까이 하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모든 설교자에게 주시는 가장 큰 위로이자 축복이 될 것이다. 설교자는 가장 큰 복을 받은 사람이다. 이 사실을 기억하자.



이근형 목사 / 소정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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