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잘 사는 사회와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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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특집 ] 교육이 바뀌려면 의식과 시스템이 바뀌어야

최재훈
2019년 12월 20일(금) 00:00
독일 중등학교는 실업학교, 직업학교, 일반학교로 나뉜다. 개인의 능력에 맞는 학교를 진학하여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다는 의미라고 한다. 궁금증이 생겼다. 어느 학교를 졸업해도 사회적 지위, 임금의 격차는 없을까? 자료를 찾아보니 독일의 대졸자와 고졸자의 임금 격차가 적지 않다. 사회적 불만이 없다면 이상할 듯 싶었다.

독일에 두 번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두 가지를 교육청과 학교에 물었다. 중등학교를 몇 유형으로 나누고 유형별 진학 권한이 초등학교 교사에게 있는데 왜 이런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느냐, 부모들은 이 시스템에 만족하느냐. 이 시스템을 만든 건 개인의 능력을 잘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고 초등학교 졸업과 함께 진로가 결정되는 것에 부모가 만족하지는 않지만 지금까지 틀린 결정은 거의 없다는 답을 얻었다. 독일의 산업체계에 맞도록 교육이 설계된 것 아니냐고 다시 물었더니 개인의 능력에 맞춘 시스템이라고 한다. 하지만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을수록 대학 진학률이 높은 것이 고민이라고 했다. 개인의 능력이 뭘까 궁금해졌다.

그러나 새로운 학교그룹 면담, 학부모 면담에서는 다른 이야기가 나왔다. 봉건시대 신분체제의 교육제도가 산업체제로 연결되어 중등학교의 유형을 구분했고, 개인의 삶에 대한 관심 보다 산업체제의 관성적인 운영이 우선인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에 대한 대안 격으로 중등학교를 하나로 묶는 통합학교(게잠트슐레)가 등장했고 교육의 동등한 기회를 확대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했다. 2006년 7.9%였는데 2016년 15.6%로 증가했다는 자료도 있었고 어느 주는 70% 정도 운영된다고 했다. 개인의 능력이 다양하고 능력에 대한 속도도 다양하다는 것에 대한 인정이라고 했다.

두 그룹의 면담의 내용이 다른 것 같지만 서로 연결되어 있다. 개인의 다양한 능력을 잘 발휘할 사회를 만들고 싶은 것 같다.

우리나라도 일반계고, 특성화고, 자사고, 특목고 등이 있다. 전국적으로 일반계고가 대략 65.5% 정도 된다. 학력에 따른 임금격차가 큰 학력 계층 사회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학력에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는 정설이 되어 가고 있다.

중등교육 정책의 흐름 중에 일관성 있는 것들이 있다. 자유학기제, 성취평가제, 수행평가확대, 2015교육과정, 학생부 종합전형은 인구 감소와 미래 사회의 변화를 내다보며 만든 정책이 아닌가 싶다. 보편성을 기반으로 다양성과 개별성을 인정하는 교육정책이기 때문이다. 직업의 범주와 종류에 대한 인식을 확장하도록 돕고, 다양한 평가를 통해 개인의 다양한 능력이 드러나도록 설계 되어 있다.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같은 공간에서 다름을 인정하면서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것이 가능하다. 정부의 입맛에 맞게 흘러가는 정책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고민하면서 만든 정책이라고 생각된다.

교육정책이 입시정책으로 변질될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와 교육정책들이 제대로 운영된 학교가 소수였다는 것은 아픔이다. 정책은 내년에 보완하면 되지만 학생은 내년에 다시 다니기 어렵다. 학생과 학부모는 변화되는 교육정책 때문에 원망스러운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이 될 수 있다. 조심스러운 운영과 속도를 조절하는 운영이 필요했는데 사회 변화가 너무 빠르기 때문에 속도를 낼 수밖에 없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계획대로 흘러간다면 2010년 경에 시작된 교육정책의 완성이 2030년이기 때문에 짧은 시간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럼에도 교육의 변화가 필요하다. 초등학교에서 배움의 양을 줄여 배움의 속도의 차이를 인정할 수 있는 교육과정 운영이 되면 아이들의 자존감은 높아질 수 있다. 누구나 똑같은 시기에 똑같은 내용을 이해하지는 않는다. 초중고 배움의 연결도 필요하다. 아이들과 부모는 같은 맥락으로 위장한 다른 배움의 내용과 환경에 당황한다. 고등학교 교육과정의 다양화도 더 많이 요구된다. 학생들은 자신들의 선택권이 거의 없다고 말하는 것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진로에 대한 여러 경험과 확신을 주는 과정이 필요하다. 평가는 서열이 아니라 성장을 위한 디딤이고 학생부는 대학가는 자료가 아니라 삶의 이야기라는 인식이 있으면 좋겠다.

또 다른 인식의 변화도 필요하다. 실력 만능주의를 버릴 때도 되었다. 실력이 사람을 차별 하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거는 이제 그만 하자. 학벌이 특권이 되는 사회를 계속 유지 하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하지 않다면 우리는 어떤 관성을 버리는 것이 좋을지 생각해 보자. 다양성과 다름에 대해 충분히 공감하는 사회적인 연습도 해보면 좋겠다. 다양한 역량이 필요한 사회가 되어 가고 있고 리더의 유형과 리딩의 분야가 확대 되었는데 수능 시스템으로 가능하냐는 의문이 제기된 지도 오래 되었고 모두가 리더가 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확대 된지도 오래 되었다.

루터를 통해 변화되었던 독일 사회는 어느 직업을 가지더라도 그것이 나의 소명이고 하나님 앞에서 바로 사는 것이라는 인식이 미약하지만 존재한다. 누구나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사회가 몸부림을 한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과 연결 되어 있다는 것 중엔 나의 소명을 발견하는 것도 있을 텐데 소명이 입에서만 나올 뿐 손과 발을 통해 찾아보기 어려워지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이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득의 격차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겠지만 국가가 추구하는 교육의 방향에서도 한 사람을 소중히 생각하고 잘 살도록 도우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면 기독교인의 삶에서는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한 사람에 대한 소중함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는 굳이 물을 필요가 있을까 싶다.

최재훈/전주신흥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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