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는 정동을 걷자

가을에는 정동을 걷자

최은숙 기자 ches@pckworld.com
2019년 09월 02일(월) 07:01
#한국기독교역사투어 '정동'

가을에는 정동을 걷자. 아이의 손을 잡고 걸어도 좋고 연인들이어도 좋다. 교회학교 아이들이어도 좋고 누구든지 마음만 맞으면 상관없다.

도심 속 거대한 나무들이 시원한 가을 바람을 타고 숲속의 향기를 만들어내는 곳. '언덕 밑 정동길엔 아직도 남아있는 눈덮힌 조그만 교회당'이 보이고 '향긋한 오월의 꽃향기가 가슴깊이 그리워지면 다시 찾아오는' 추억이 묻어난 거리. 그러나 이 아름답고 로맨틱한 정동길을 '좀 알고' 걷다 보면 '누구나 흔들 수 있는' 힘이 없던 나라의 치욕을 가슴 시리게 마주 보게 된다. 그리고 그 격변의 시대를 함께 한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등 수많은 선교사들의 삶과 헌신에 뜨거워지기도 한다. 그럼 그 길, '좀 알면서' 함께 걸어볼까?



#코스는 이렇게

사단법인 한국기독교언론포럼이 서울시의 '2019 종교단체 지원 공모사업'에 선정돼 지난 8월 28일 서울 중구·정동 일대 국내 선교 초기 역사 유적지를 탐방하는 '한국 기독교 역사 투어'를 진행하고 한국교회 순례길을 소개했다.

이날 참가들은 4시간 코스로 배재학당에서 시작해 정동제일교회 → 중명전 → 예원학교 → 이화 100주년 기념관 → 이화학당 옛 정문 → 구 러시아공사관 → 고종의 길 → 구세군 중앙회관(옛 구세군 사관학교) → 영국대사관(외관) →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 성가수녀원까지 걸으며 초기 선교사들이 교육 및 의료선교, 교회를 설립하고 복음을 전했던 발자취를 돌아봤다.

시간과 거리가 부담스럽다면 보다 짧은 코스도 있다.

돈의문 → 여한중화기독교 한성교회 → 구 러시아공사관 → 이화여고 → 정동제교일회 → 배재학당까지(2시간)하는 코스와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에서 시작해 덕수궁 → 구세군중앙회관 → 감리회관 → 새문안교회(2시간)까지 하는 방법을 추천한다.



#발길 닿는 곳이 역사의 현장이자 선교의 현장

'크고자 하는 자는 마땅이 먼저 다른 사람을 섬겨야 한다'는 진리대로 살다간 아펜젤러의 삶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배재학당역사박물관에서는 고종이 하사한 현판, 유길준의 서유견문 등 역사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바로 옆으로 감리교 최초의 서양식 개신교 예배당인 정동제일교회를 볼 수 있다. 이어 알렌, 언더우드, 기포드, 마펫, 빈튼, 헤론 등 선교사들의 집이 자리잡고 있던 예원학교와 고종과 명성황후가 이화(梨花, 배꽃)라는 이름을 내려줬다는 '이화학당'에서 유관순 동상을 만날 수 있다.

그야말로 발길 닿는 곳이 역사의 현장이자 선교의 현장이다.

덕수궁 중명전은 선교사 알렌의 집이기도 했으며 정신여학교의 발상지이기도 하지만 을사늑약이 체결된 비운의 장소다. 을사늑약 후 조선의 외교권이 상실되고 5년 만에 일제식민지가 되는 한일병합조약을 맺게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곳에서 또 한명의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선교사를 만나게 된다. '한국의 친구'라는 별명을 가진 헐버트 선교사는 이준과 함께 헤이그 밀사로 파견돼 돼 유럽 각국에서 조선의 독립성을 외쳤다. 중명전 입구 오른 쪽 돌담길은 '미스터 선샤인'의 유진초이(이병헌)가 미국 공사관에서 오고가던 거리로 촬영됐던 곳이라고.

가장 최근에 개방된 '고종의 길'도 눈길을 끈다. 명성왕후가 시해되자 고종이 몰래 궁을 빠져나와 러시아 공사관으로 몸을 피하는데(아관파천) 당시 고종이 지나갔다고 추정되는 길이다. 덕수궁 돌담길에서 구 러시아공사관까지 이어지는 길이는 총 120m에 불과하고 10분 정도 밖에 걸리지 않는다. 고종은 120m의 길을 걷는 동안 무슨 생각을 했을지 문득 100년 전 고종이 되어도 본다. 고종의 길은 관람시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꼭 참조할 것. 고종의 길을 지나 구세군중앙회관을 거쳐 성공회 서울대성당에서 '딱' 하루, 특별하게 개방된 '성가수녀원'을 마지막으로 코스는 마무리됐다.

잠깐! 정동을 지나 광화문에는 한국 최초의 조직교회인 새문안교회가 있다. 시간이 허락된다면 정동을 걷다가 새문안교회와 새문안교회박물관도 관람해보시길.


최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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