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의정원 의장이었던 손정도 목사 재조명

임시의정원 의장이었던 손정도 목사 재조명

한국교회사포럼, '손정도 목사의 신앙과 삶' 개최

최샘찬 기자 chan@pckworld.com
2019년 08월 19일(월) 10:54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과정에서 임시의정원 의장을 역임하는 등 독립운동가로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헌신한 손정도(1882~1931) 목사의 정신을 회고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광복절 74주년을 기념해 지난 13일 국회헌정기념관에서 '손정도 목사의 신앙과 삶'을 주제로 한국교회사포럼이 열렸다.

이날 포럼에서 임희국 교수는 손정도 목사의 생애 중 상해 임시정부 활동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한편 대한민국임시헌장 중 제1조 '민주공화제'와 제7조 '건국정신'과 관련한 부분이 기독교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임 교수는 "3.1운동 발생 당시 중국 북경에 있던 손정도 목사는 3월 26일 당시 국제도시였던 상해로 와서 임시정부 수립을 위해 여러 독립운동가들과 회합했다"며, "4월 11일 '대한민국'이란 국호가 정해졌고 13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이 선포되며 손정도 목사가 오늘날 국회에 해당하는 임시의정원 의장을 맡았다"고 설명했다.

4월 13일 반포된 대한민국임시정부 최초 헌법문서인 대한민국임시헌장과 관련해서는 "제1조에 '민주공화제'를 선포했는데 학자들은 민주공화제가 당시 일본의 법조문이나 중국의 헌법에서 찾아볼 수 없는 개념이라 민주공화주의를 헌법에 넣은 동북아시아의 최초 사례로 주목한다"고 말했다.

이어 임시헌장의 민주공화제 유래와 관련해 임 교수는 "임시의정원 다수가 개신교 지도자 특히 장로교회 목사와 장로이며, 주권재민을 바탕으로 균등(평등)을 핵심 정신으로 한 민주공화제는 국내 장로교회 헌법원리에 상응한다"며, "장로교회 헌법원리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 무의식적이든 채택됐을 수 있다"고 예상했다. 또한 대한민국임시헌장 제7조와 관련해 그는 "'대한민국은 신(神)의 의사에 의하여 건국한 정신을 세계에 발휘하고'라고 명시했다"며, "이를 기독교 입장에서 '하나님의 뜻'이라 해석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이번 포럼에선 안창호와 김성주 등 손 목사와 주변 인물 간의 관계성도 조명됐다.

도산 안창호(1878~1938) 선생과 손정도 목사의 생애를 비교하며 이들이 함께 독립운동한 과정을 설명한 이덕주 박사는 "경난의 시대 해석과 도산이 변함없는 우정과 관계를 유지한 이유는 가치를 공유했기 때문으로 보인다"며, "이분들은 새로운 문물과 학문이 쏟아질 때 민족의 근대화 노선에 섰으며, 일제강정기 때 저항하는 민족운동에 기독교 정신으로 함께 손을 잡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대부분 기독교인들이 반공주의 노선을 취했지만 도산과 해석은 민족을 구하자는 동일한 목적으로 초대교회 공동체에서 출발한 기독교 사회주의를 말하며 기라성 같은 근현대사 인물들과 함께 손잡았다"며, "앞으로 통일 과정과 통일 이후 한반도 평화가 정착되는 과정에서 남과 북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거의 유일한 인물인 손정도 목사의 가치를 최대한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정도 목사와 김성주의 관계와 관련해 이상규 교수는 "손정도가 숭실학교에서 수학하는 동안 2년 선배인 김형직(1894~1926)을 만나게 되는데 그가 김성주(김일성)의 부친이었고 후일 김일성과의 만남과 교류의 내연이 된다"며, 북한측 기록을 종합해 "김성주는 아버지 사망 후 길림으로 손정도 목사를 찾아갔고, 김성주가 육문중학교에서 공부할 때 손 목사가 여러번 학비를 지원해 주는 등 김성주를 자식처럼 대우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이 교수는 "김성주의 신앙생활 여부에 대해 북한측 기록은 언급이 없지만 아버지 김형직은 소작농의 아들로 기독교 신자였고, 김형직은 서부지방 교계지도자 강돈욱 장로의 도움으로 숭실학교에 진학한 것을 보아 김성주는 기독교에서 성장했다고 할 수 있다"며 "손정도 목사 휘하에 있으면서도 예배에 출석하는 등 교회생활에 대한 침묵은 정치적 이유에 근거한 의도적 은폐"라고 판단했다.


최샘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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