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 목양칼럼 ]

박대준 목사
2019년 08월 22일(목) 00:00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7월 말, 휴가를 얻어 딸 부부와 함께 이탈리아를 찾았다.

아버지 회갑이라고 아이들이 준비해 준 소중한 여행길에, 밀라노에서 유학 중인 '교회 딸'이 유학을 마치고 들어오기 전에 오라고 해서 두 딸이 일정을 잡고 준비해서 이탈리아로 향했다.

이미 뉴스에 유럽이 40도를 넘나드는 더위라고 나온 지라 단단히 마음 먹고 출발했지만 견디기 쉽지 않은 여행길이었다.

베니스에서 밀라노, 피렌체를 들러 로마로 입성했다. 다른 곳은 화려한 성당들의 모습을 보며 압도되긴 했지만 그다지 마음을 끌지 못했는데 로마로 들어가는 길에서는 마음이 숙연해졌다.

바울이 죄수의 몸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향했던, 베드로와 바울, 그리고 수많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 생명을 던진 흔적이 가득한 곳 로마. 그 웅장하고 화려한 바티칸궁도, 세계에서 종교적인 건물로는 가장 크고 세계적인 화가와 조각가들의 작품으로 가득 찬 성 베드로 성당도 내겐 그리 큰 감명이 되지 못했다.

그런데 여행의 말미에 발걸음을 옮겼던 콜로세움에서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그런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지만 믿음을 지키다가 맹수에게 몸이 찢겨지고, 인간 횃불이 되어 어둠을 밝혔던 성도들의 순교의 현장에서 심장은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서 찾은 칼리스토 카타콤베 산에서 내 심장은 더 이상 진정되지 않았다. 분명 혈압약을 잊지 않고 먹고 나섰는데.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어둠으로 가득 찬 무덤 속 주검이 증인이 된 곳에서 받았던 세례와 성찬의 흔적들이 내 믿음을 향해 도전해오는 듯 했다. 그곳을 안식처로 삼고 믿음의 교제를 나누는 초대 성도들의 숨소리, 말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 같았다. 그 때 한 무더기의 조각들이 눈에 들어왔다. 조개껍데기와 진흙을 이겨 만든 부숴지고 깨진 조개껍데기만한 등잔들이 한 곳에 모여 있었다.

카타콤에서 세례를 받고 성찬을 행할 때 사용했던 것들이라고 한다. 그 밝기가 지금 휴대전화의 화면 불빛 정도라는 설명도 이어졌다.

바로 한 치 발 앞을 비추기에도 턱없이 부족했던 등잔을 들고 어둠 속을 안식처로 삼아 헤매었을 위대한 믿음의 선배들을 거기서 만날 수 있었다.

우리는 저 앞에까지 보면서 불안하고 걱정과 염려가 사라지지 않는데, 한 치 발 앞만을 바라보면서도 넉넉하게 살았을 그들의 모습이 부럽기만 하다. "주님, 더 이상 바라지 않겠습니다. 지금 여기 저와 함께 계신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다윗의 위대한 고백이 생각난다. "I shall not be in want"(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23:1)

박대준 목사/여의도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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