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보내드리세요

그냥 보내드리세요

[ 목양칼럼 ] 윤광재 목사

윤광재 목사
2019년 04월 05일(금) 11:10
"면허증 좀 봅시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내게 다가온 교통경찰관이 건낸 말이다.

잊을 수 없는 오래 전 일이다. 심방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그만 교통사고를 내고 말았다. 정지 신호를 미리 보지 못하고 뒤늦게 정지한다는 것이 그만 정지선을 넘어 횡단보도 중간까지 가서야 겨우 멈춰 선 것이다. 문제는 횡단보도를 빠르게 건너려고 달려들던 초등학교 5학년 여자 아이 둘과 부딪친 것이다. 그 충격에 아이들은 넘어지고 말았다. 차를 도로 가장자리에 세우고 넘어진 아이들에게 다가갔는데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았는지 금방 일어났다. 그래도 큰 사고였다. 더욱이 횡단보도에서 일어난 사고였기에 문제가 심각했다. 신호 위반에 횡단보도 사고이며 대인피해까지 겹친 것이다. 아이들의 다친 정도에 따라 형사처벌까지 받을 수 있는 아주 힘든 상황이었다. 그 때 내가 얼마나 두려움에 떨었는지 지금도 당시 일을 생각하면 머리가 주뼛 선다.

이내 경찰관들이 현장에 왔고 나는 다친 어린이들과 함께 가까운 파출소로 불려갔다. 면허증 제시를 요구하는 경찰관에게 면허증을 건냈다. 경찰관은 다친 아이들의 부모를 만나 사고 처리를 하겠다며 연락을 취했다. 얼마 뒤에 한 아이의 어머니가 황급히 달려왔다. 다른 아이의 어머니는 직장에 다니는 분이라 못 왔지만 서로 잘 아는 사이라 본인이 해결하면 된다고 했다.

그런데 두려움에 떨고 있는 나에게 그 어머니가 대뜸 하는 말이 "목사님이십니까?"하고 묻는 것이 아닌가. "네 그렇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큰 사고를 냈습니다"하고 인사를 드렸더니, 그 어머니는 세워진 승합차에 붙어있는 교회 이름을 보고 목사님인 줄 알았다며, 경찰관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우리 애들 보니 크게 다치지 않은 것 같네요. 상처도 없고 하니 이 분을 그냥 보내 드리세요."

"그냥 보내드리세요."

이 말을 나는 평생 잊을 수 없다. 그냥 보내드리라는 말에 경찰관은 그래도 되겠느냐고 한 번 더 확인하더니 신호 위반 범칙금만 부과하고는 그냥 가란다. 그리고 "목사님은 오늘 좋은 분 만난 겁니다." 한마디 덧붙였다. 맞다. 세상에 이런 분이 다 있나 할 정도로 나는 참 좋은 분을 만난 것이다. 마치 죽었다 살아난 듯 그 파출소를 나오는데 내게 천사나 다를 바 없는 그 어머니가 내게 말을 한다. "저는 OO교회 집사입니다."

천사 같은 집사님과 법을 어기고 사고를 낸 목사. 그 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얼굴이 화끈 거린다.

"그냥 보내드리세요." 주님의 음성처럼 들린다.

윤광재 목사 / 노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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