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안전하지 않다

교회는 안전하지 않다

[ 현장칼럼 ]

문윤희 간사
2019년 03월 18일(월) 15:19
"여자는 남자가 외로워 보여서 만들어진 존재야." "요즘 여자들이 남녀가 평등하다 말하는데, 그건 반성경적이지."

교회에서 소위 '젊은 축'에 속하는 남자 집사님의 말에 말문이 막혔다. '하나님의 사랑과 부르심'은 남녀를 구별해서 오는 걸까?

"여자들은 아이를 낳아야지요?" "권사님들, 웃으라고 한 이야기 아닙니다. 아이를 낳을 수만 있다면 낳아야 합니다!" 위트 있는 농담처럼 건네는 목사님의 설교에 예배당은 웃음이 가득 찼고, 필자 홀로 썩소를 지었다. 대한민국 여성이 한 아이의 엄마로서 감내해야 할 고통과 어려움은 문제가 아닌가보다.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말씀에 순종하라고 요구할 뿐이다. 아이를 갖지 못해 울고 있을 한나, 사라와 같은 여성들은 안중에 없는 언사가 아닌가.

한 목사님이 팔다리 없이 태어났지만 긍정적인 마음으로 세계를 감동시킨 '닉 부이치치'를 설교 중 사례로 인용했다. "닉 부이치치는 아름다운 아내를 얻은 성공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성공한 인생이란 '아름다운 아내를 얻는 것'인가.

더 심각한 말들도 많다. 한 언론사의 '교회 내 여성 혐오' 설문조사에 따르면 그 사례는 다음과 같다. "그 나이면 자궁이 말라 비틀어지겠네" "형제들의 성욕은 어쩔 수 없으니 여자들이 조심해야지" "화장 안 해서 못 알아봤다" "엉덩이가 커서 애를 잘 낳겠다"

교회에 들어온 순간 여자란 사실만으로 원죄의 이유, 유혹하는 자, 아이를 낳을 존재, 더 연약한 그릇이 되어버린다. 사회에서 어떤 중요한 일을 하건 상관없다. '여성'이란 정체성만 있을 뿐이다. 동등한 존귀한 존재로 인정받지 못하고 수많은 '대상들'로 전락한다.

교회를 생각하면 엄마의 고된 모습이 떠오른다. 우리 어머니들은 습하고 열기 가득한 곳에서 음식을 만들며 교회 '집안일'을 감당한다. 실은 '바깥일'도 도맡는다. 노방전도와 지역봉사를 비롯해 예배, 행사에는 늘 여성들이 자리를 채운다.

그러나 교회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자리에서 여성들의 모습은 좀처럼 보기 힘들다. 중요한 일은 봉사자리에선 보이지 않던 남성들이 차지한다. 부수적인 일은 당연히 여성들의 역할인 것처럼. 이름도 빛도 없이 봉사하던 여성들은 '잠잠하라'는 성경 말씀을 근거로 평가절하 되고, 스스로를 낮추는 것이 버릇 돼 결국 자기혐오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교회는 여성들에게 가혹한 곳이다. 성욕을 참지 못하는 형제들을 위해 옷차림에 조심하며, 교회 문제들에 목소리를 내기보다 조용히 기도로 함께 할 것을 요구받는다. 추가적으로 아름다운 외모를 가꾸면 더 좋고. 여성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온전한 '사람'으로 존재하지 못한다. 기울어진 세상보다 더 기울어진 교회를 청년 여성들이 뛰쳐나가는 이유다.

신체적으로 약한 남성도 있고, 강한 여성도 있다. 요리를 잘하는 남성도 있고, 기계를 잘 다루는 여성도 있다. 모두 각기 다른 은사와 사명을 가졌다. 하나님은 헤아릴 수 없는 지혜로 인간을 창조했다. 한 가지 기준인 성별로만 인간을 판단하고 구별하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먼저 맛볼 수 있는 곳이다. 필자가 꿈꾸는 하나님 나라는 누구에게나 안전한 공동체다. 교회가 세상보다 먼저 바르고, 안전한 공간을 만들어나가길 바라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까? 떠나간 자매들이 교회로 돌아와 동등한 은혜를 경험할 날을 꿈꾼다.

문윤희 간사/한국YWCA연합회 성평등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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