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흔적을찾아서 ] 1. 3.1운동100주년 맞이 배위량 선교사 순례길 탐방

고무송 목사
2019년 03월 19일(화) 09:50
대구 와룡산에서 내려다 본 금호강과 농지.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갈라디아서6:17) 사도 바울의 고백이다. 초대교회로부터 '흔적'(痕迹:Stigma)은 예수를 좇는 사람들의 상징으로 추앙됐다. 모름지기 그리스도인은 '예수의 흔적'을 몸에 지닌 사람들. 어떤 흔적을 몸에 지니고 있는가? 그것이 곧 그 사람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이며, 어떤 흔적을 역사에 남겼는가? 그것이 곧 그 민족을 평가할 수 있는 준거(準據)아니겠는가. 그것이 곧 창간 73주년을 넘어 100년을 지향하고 있는 한국기독공보가 선교역사신학자 고무송 목사와 함께 '흔적을 찾아서' 길 떠나는 이유인 것이다.<편집자 주>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배위량 선교사 순회전도길과 3.1운동 유적지를 탐방합니다. 2월 26일대구를 출발, 3월 1일 포항에서 마치게 되는 3박 4일 답사순례 일정입니다.숙박시설이 불비하오니 침낭과 도보행진에 필요한 장비를 구비, 대장정에 차질이 없도록 참여와 기도를 부탁합니다. 배재욱 올림'

배재욱교수(영남신대)는 그동안 신학교 동아리 학생들과 함께 배위량 선교사 순회전도길 도보행진을 펼쳐왔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만세유적지를 포함,특별순례행사를 마련한 것이다. 필자는 북쪽 종점 경기도 행신발 KTX 첫차에 몸을 실었다. 대구제일교회 역사관에서 열리는 개회예배엔 30여 명이 참여, 열기가 뜨거웠다. 준비위원장 배 교수의 대장정 출발 인사말엔 비장감이 감돈다.

"바보 같은 자의 우매한 일에 동참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그 동안 5000번 넘게 전화와 문자를 올리고 참여를 독려했지만, 반응이 없었습니다. 여러 번 포기할까 망설이기도 했습니다만,성령님의 강권적인 역사와 이름도 빛도 없이 도와주시는 분들이 계셨기에 오늘 이 행사가 마련됐습니다. 경북노회를 비롯한 지역교회 목회자와 성도님들 그리고 영남신대 배위량길평화순례단 동아리 회원들, 특별히 장신대 신대원 77기 동기생 여러분의 지원과 격려에 감사드립니다. 끝까지 완주해 주시고 평화와 기쁨 넘치는 답사순례길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이날 대구지역은 섭씨 5도, 그토록 극성을 부리던 미세먼지도 걷히고 갑자기 봄이 찾아온 듯 쾌청한 날씨, 두둥실 순례자들의 마음은 부풀고 발걸음이 가볍다. 그렇지만 만만찮은 답사일정 아닌가.

배위량선교사(Rev. William Martyn Baird, Ph.D., D.D.)
#배위량(裵偉良),그는 누구인가?

미국북장로교회 한국 파송 선교사 베어드 목사(Rev. William Martyn Baird, Ph.D., D.D.), 그의 한국 이름이 배위량이다. 1891년 부산에 도착,선교활동을 펼치던 그는 1893년 4월 17일 경상도 북부 내륙지방 전도여행을 결행한다. 당시 개항장을 벗어나 내륙으로의 진출은 불법이었으며, 알렌(Dr. H. Allen) 공사의 만류를 거부한 발걸음이었다. 교회사가 임희국 교수(장신대)는 '경상북도 대구 초창기 선교사들의 사역:열정, 문화충격, 헌신, 소통' 제하의 논문에서 배위량을 가리켜 '믿음으로 호랑이 굴속에 뛰어든 선교사'라 지칭한다. 그는 조랑말을 타고 밀양 청도를 지나 팔조령을 넘어 가창을 경유, 대구에 입성했으니, 때는 1893년 4월 22일 토요일 낮 1시경. 대구에서 3일간 머물고, 25일 동명을 거쳐 상주 안동지방으로 떠난다. 대구를 면밀히 관찰, 선교 전진기지로서의 적합성 여부를 검토한 것이다. 그러니까, 이번 답사순례길은 시편 126편 기자의 표현 그대로, 126년 전 배위량 선교사가 "눈물을 흘리며 복음의 씨앗을" 뿌리고 다녔던 위대한 발걸음을 즈려밟고 가는 호사스런 꽃길인 셈이다. 그는 1894년 4월 30일 재차 방문, 마침내 대구를 6개항 적합판정의 선교기지(Mission Compound)로 선포한다. 선지자의 예지와 서부 개척자의 풍모를 감지케 되는 대목이다.

배위량선교사(Rev. William Martyn Baird, Ph.D., D.D.)
이상화 고택.
#호랑이 굴속에 뛰어든 선교사

1896년 1월 배위량은 대구에 선교부를 개설하기 위해 217달러 76센트(약 25만원)를 지불하고 가옥 한 채를 구입, 가족을 데리고 정착한다. 그 집이 바로 대구제일교회 역사관으로, 이번 순례길의 출발지점인 제일예배당이다. 선교보고서는 당시 상황을 활동사진처럼 그려주고 있다.

'베어드 박사는 대구에 땅을 매입, 공개적으로 거주하기 시작했다. 그는 부인과 한살 반짜리 아들 존을 데리고 왔다. 마을 주민들은 대구에 처음 출현한 백인 여자와 아이를 보려고, 부산으로부터 육로로 100마일을 타고 온 가마에 와글와글 모여들었다. 그들은 백인을 보기 위해 가마의 휘장을 잡아당겨 보기도 하고, 안뜰에까지 쳐들어왔다. 소요사태를 막아달라고 관청에 요청해야 했다.'

선교보고서는 조선의 급박한 정치, 경제, 사회상황을 비교적 정확하고도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때 대구에서는 좋은 집들의 가격이 떨어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왕후(민비)가 지난 가을 일본 폭도들에게 살해됐다. 국왕(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했다(아관파천). 농민반란(동학혁명)이 일어났다. 서울거리에선 전투가 벌어졌다(청일전쟁). 양반들은 싼값에 집을 팔고 시골로 숨어들었다. 그런 집을 헐값에 구매한 것이다. 복덕방은 매입자가 외국인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모른체 했으며,턱없는 가격을 요구하지도 않았다.모든 면에서 '신사처럼' 행동했다.'

그토록 대구를 사랑하고 의욕적으로 선교 사역을 개척한 배위량, 그는 대구를 떠나게 된다. 1896년 10월 선교사 연례모임에서 서울지역 교육담당자문으로 발령, 학원사역(언더우드학당)과 연못골교회(연동교회) 목회협력사역을 담당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1897년 2월, 배위량은 다시 평양으로 이동, 그곳에서 숭실학당(현 숭실대학교)을 개설하는 엄청난 역할도 감당하게 되는 것이다. 대구 선교사역은 그의 손 아래 처남 아담스(James E. Adams:안의와)에게 인계된다. 그는 1987년 11월 1일 가족과 함께 대구에 정착했으며, 그해 성탄절엔 의료선교사 존슨(Dr. Woodbridge O. Johnson:장인차)이 부인과 함께 부임, 진료활동을 시작한다. 이로써 미국북장로교 대구선교는 대구제일교회 설립을 비롯, 동서남북을 향한 개척사역(남문안예배당-서문교회-남산교회-칠성정교회-중앙교회-동웅정교회)과 함께 학원선교(대남-계성-신명), 의료선교(제중원-나환자진료소-동산의료원) 등 이른바 삼위일체 전인구원(全人救援)사역을 펼치게 되는 것이다. 신비하고도 오묘한 섭리(攝理)의 역사여!

순례길 청라언덕에서. 앞열 맨 우측이 필자 고무송 목사.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2019년 2월 26일 오전 10시 30분, 개회예배와 삼일절기념 특강을 마친 배위량길 답사순례단은 3박 4일 대장정의 발걸음을 내딛었다. 맨 먼저 도착한 곳은 이상화 고택.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골목 하얀 담벼락에 내리닫이 까만 글씨로 빼곡히 적혀있는 그의 시를 읽어내리면서 누군가 인기가수 안치환의 노래를 흥얼거린다. 순간, 필자의 뇌리엔 보니엠(BoneyM)의 '바빌론 강가에서(Rivers of Babylon)' 멜로디가 스치는 것이었다. 라벨(M. Ravel)의 '볼레로(Bolero)'마냥 시편 137편 말씀을 반복하는, 경쾌하면서도 애조를 띤 단조풍(短調風)의 멜로디. 70년대 말 세계를 풍미했던 디스코 열풍 가운데 대표 그룹으로서 인기를 독점, 송두리째 누렸던 보니엠의 78년 히트곡. 여성 3인과 남성 1인, 4인조의 흑인 멤버들이 영가(靈歌)처럼 읖조리는 시편 137편 절절한 그 말씀!

"바벨론 기슭 거기에 앉아 시온을 생각하며 눈물 흘렸다. 그 언덕 버드나무가지 위에 우리의 수금 걸어 놓고서 우리를 잡아온 그 사람들이 그곳에서 노래하라 청하였지만 우리를 끌어온 그 사람들이 기뻐하라고 졸라대면서 '한가락 시온노래 불러라'고 하였지만 우리 어찌 남의 나라 낯선 땅에서 여호와의 노래 부르랴(조선그리스도교연맹 중앙위원회 발행 성서)"

2001년 4월, 한국기독공보 사장으로 재직하던 필자는 남북연합 부활절예배에서 평양봉수교회 노(老) 장로님이 눈물 흘리며 봉독했던 시편 137편 본문. 그 말씀이 이상화의 시와 오버랩(overlap), 가슴을 울렁이는 것이었다. 비록 시간과 공간, 그리고 민족역사의 다름이 존재하지만, 자유와 국권(國權)을 빼앗긴 배달겨레와 히브리민족의 고통은 한 나라 한 핏줄 같은 동병상련(同病相憐) 아니겠는가!

#동저서고(東低西高)복음화현상

이날 이상규 명예교수(고신대)의 '대구-경북지방에서의 삼일운동과 기독교' 제하의 특강은 참가자들에게 지난날의 자긍심과 함께 오늘의 교회 현실을 직시, 옷깃을 여미게 하는 명강이었다.

"지난날 미국북장로교 선교사들의 대구를 포함한 영남 선교는 참으로 눈부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선교 2세기로 넘어선 영남지역의 복음화율이 아직껏 8%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엄중한 현실은 이 지역 교회 지도자들에게 자성을 촉구하는 각성제이며 분발의 촉매제가 돼야 할 것입니다."

천병석교수(부산장신대 조직신학)의 일갈(一喝)은 차라리 죽비라 할 것이다.

"미국북장로교 선교지역인 우리 영남의 낮은 복음화율과 대조적으로 미국남장로교 선교지역인 호남의 복음화율이 30~35%라는 엄청난 대비, 이른바 동저서고(東低西高) 복음화 현상은 부(富)의 편재에 있어선 동고서저(東高西低)라는 사실과 불가분의 관계일진대, 이같은 현상은 과연 무엇에 연유되는 것일까? 영성인가? 헌신인가? 신학적 검토와 목회 차원의 긴급하고도 세심한 점검이 요청되고 있으며, 특별히 내일의 한국교회와 이곳 영남지역의 목회자를 양성하고 있는 신학교수는 물론 교회 지도자들에게 엄청난 도전이며, 긴급히 풀어내야 마땅한 심각한 과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배위량 선교사의 흔적을 찾아 대구 일대 영남지역을 돌아보는 답사순례길 내내, 필자는 세미한 음성에 귀 기울이며 마음을 촉촉히 적셔야 했다. 그것은 필자가 영국 런던에서 선교신학 논문을 집필하며 목회사역을 감당하던 시절, 독일 베를린의 은사님과 주고받았던 전화 메시지였던 것이다.

'고 목사님, 제가 대구 사람이거든요. 한국 현대사 속에서 대구 사람들이 잘못을 저지른게 많습니다.특별히 군사독재자들이 전라도 사람들에게 범했던 죄과(罪過)들 말입니다. 고 목사님도 광주 민주화운동 희생양(Scapegoat) 아니겠습니까. 그럴만한 자격은 없지만, 저 한사람만이라도 전라도의 미자립 농촌교회를 섬기면서 속죄의 삶을 살고 싶습니다. 알맞은 교회를 소개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박 교수님, 놀랍고도 고마운 말씀입니다. 그러나, 광나루 선지동산에선 교수님 오시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답니다. 저로선 추천할 만한 교회도 모를뿐 아니라, 동의할 수도 없습니다.송구합니다.'

결국, 전라남도 나주 농촌지역 '우산교회' 청빙을 받으셨던 은사님! 그 분의 목회현장 리포트 '우산교회 이야기'는 스테디셀러로, 오늘도 나를, 그리고 우리 한국교회를 깨우치고 있는 것이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박동현 교수님, 어찌하여 은사님은 세미한 음성으로 배위량 선교사의 '흔적을 찾아서' 길 떠난 나그네, 순례길에 나선 이 못난 제자의 여리고도 완악한 가슴에 마음의 촛불을 밝혀주는 것입니까?"

고무송목사 / 한국교회인물연구소 소장 · 전 본보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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