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몸 이끌고 '장애인의 친구' 된 목회자

불편한 몸 이끌고 '장애인의 친구' 된 목회자

[ 이색목회 ] 조은선교회 차재우 목사

임성국 기자 limsk@pckworld.com
2019년 03월 08일(금) 15:57
조은선교회 대표 차재우 목사(부천노회)가 장애인 가정의 심방을 위해 휠체어를 타고 거리를 나섰다.
"절망 중일 때 하나님이 제게 주셨던 그 기쁨, 나 같은 장애인에게 전하기로 다짐했죠."

자신도 몸이 불편한 장애인이면서 장애인들을 돌보는 목회자가 있다. 부천노회 전도목사로 '조은선교회' 대표를 맡아 20여 년간 묵묵히 장애인 사역을 펼치고 있는 차재우 목사(62세)다.

차 목사는 양쪽 다리 전체가 마비된 1급 장애인이다. 휠체어, 낡은 자동차 없이는 그 어디도 다닐 수 없는 신세다. 선천성 장애로 유달리 어려운 학창시절을 보냈고, 외롭고 힘겨웠던 가정사에 눈물 흘린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하지만 벼랑 끝에서 만난 실낱 같은 희망, 예수님을 영접하고 나서는 장애인들을 마음에 품고 한평생 섬김의 사역자로 살기로 마음먹었다.

자신의 친구, 장애인들을 만나기 위해 불편한 몸을 이끌고 오늘도 마을 곳곳을 누비는 차 목사. 자신만을 바라보며 기다리고 있을 그들을 생각하면 잠시 자신을 스쳐 간 외롭고 무거운 사역의 무게는 감사의 찬양으로 뒤바뀐다.

지난 2월 27일 경기도 의정부의 작은 마을에서 장애인 성도를 심방하기 위해 휠체어를 탄 차 목사를 만났다. 그는 "목회의 대상은 바로 나다. 목회는 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도록 채찍질하면서 나와 함께 하는 동역자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한다"며 "장애인들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목사가 되고 싶다"는 바람과 함께 자신의 사역을 소개했다.

차 목사는 겸손했다. 자신의 사역을 '보잘 것없는 작은 것'이라고 포장했다. 화려하지도, 전문성을 갖추거나 체계적이지도 않다고 평가했다. 하나님 앞에선 더욱 내세울 게 없고, 감추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하지만 부끄럽지는 않다고 했다. 진실함, 순수함을 잃지 않도록 노력한다고 했다. 작은 교회 건물을 세울까 고민하던 마음을 내려놓고, 재정적 걱정까지 털어버리니 진짜 장애인만을 위한 사역, 장애인과 함께 하는 사역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됐다.



#몸이 불편하시지만, 얼굴이 너무 평안해 보이신다.

선천성 소아마비를 앓았다. 어머니에게 버림받았고, 가정사는 불행했다. 하지만 누나와 친구의 도움을 받아 고등학교까지 졸업했다. 장애인 인권 등 환경이 조금씩 변하고 있지만 과거 사회 구조는 장애인을 고립하게 했고, 사회생활조차 불가능하게 할 정도로 열악했다. 고등학교 재학시절 276명 중에 275등을 할 수밖에 없었고, 열등감이 커졌다. 상처도 많았다. 하지만 셋째 누나는 고등학생인 나의 마음에 복음의 씨앗을 심었다. 하나님을 만났고, 불편한 몸은 더이상 내게 장애가 아니었다. 의식이 변하니 표정도 변했다. 자신감이 생겼고, 목소리도 커졌다. 하나님 때문에 작았던 내 인생이 당당해졌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으면 늘 평안해야 한다.



#장애인 사역을 시작하신 계기는?

20대에 정릉교회에 출석했다. 청년부 활동을 열심히 했다. 무슨 일이든 도전하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시계수리와 금·은 보석 세공 기술, 전기기술도 배웠다. 신앙생활에 열심인 내 모습을 보고 교회 성도님들이 신학 공부를 해보라고 권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호적을 파겠다며 반대했다.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마음의 결정을 했다. 교회와 성도님들의 도움을 받아 신학공부를 시작했다.

정릉교회 평신도성서신학원에 입학했고, 서울장신대에 입학해 졸업했다. 목사 안수를 받기 전 교회 사역을 하고 싶어 지역 교회에 지원했지만,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면접조차 거부당했다. 눈물로 기도하던 중 예수님을 영접하면서 다짐했던 '하나님이 제게 주셨던 그 기쁨, 나 같은 장애인에게 전하겠다'는 다짐이 떠 올랐다. 곧장 장애인 촌을 이루고 있는 노원구 상계동을 찾았다. 장애인이 있는 곳이라면 장소 가리지 않고, 그들과 어울렸다. 그 어울림이 지금의 평생 사역으로 이어졌다.



#사역은 어떻게 진행되나?

40대에 목사 안수를 받았다. 전도사 시절부터 장애인과 동고동락했다. 목사 안수를 받으면서 신앙 모임이 되도록 더욱 힘썼다. 장애인과 관련된 모임에는 빠지지 않았고, 모든 경조사를 챙겼다. 당시 장애인 사역을 위한 선교회가 많이 유입되던 시기에 한 선교단체에서 사역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많던 선교회는 이제 모두 사라졌다. 복지 정책이 발전하면서 장애인에게 종교 단체의 필요성이 적어졌다. 결국 마지막 남은 내가 장애인 사역을 위해 조은선교회를 설립했다.

조은선교회는 장애인들이 예배드리는 공동체로 지역 교회를 방문해 예배를 드린다. 그 기간이 20년을 훌쩍 넘었다. 현재는 동안교회가 장소를 제공해 주셔서 봉사자를 포함한 50여 명의 장애인들과 한 달에 한번 정기 예배드리고 있다. 교회 권사님들께서는 장애인들을 위한 식사를 제공해 주신다. 이외에도 가정심방, 식사교제, 야외활동, 상담사역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경제적 수입이 없다. 생활과 사역에 어려움은 없나?

교회가 아닌 지인들에게 작은 도움의 손길을 받고 있다. 아내가 식당에서 12시간 설거지를 하며 받은 월급으로 생활비와 사역비를 충당한다. 부천노회 임원들이 관심을 갖고 적극적인 도움을 주고 계신다. 정말 감사하다. 부족할 수밖에 없지만 주어진 상황에 감사하고 있다. 가장 큰 어려움은 장애로 인해 남은 아픔과 상처가 여전히 내 안에 자리 잡아 한계에 갇혀 있는 목회자가 되지 않도록 극복하는 것이다.



#장애인 사역에 대한 이해와 교회적 접근은?

교회 주차장에서도 장애인 주차 공간에 버젓이 주차한 일반차량을 볼 수 있다. 변화하고 있지만 장애인 혼자 휠체어 타고 가서 예배드릴 수 있는 교회는 몇 곳 안 된다. 특별히 중도 장애인에 대한 관심과 사역은 전무한 상태이다. 중도 장애인을 전도하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목회자들이 휠체어 타고 3일만 생활할 수 있다면 한국교회 장애인 사역의 방향과 수준은 달라질 것이다. 장애인과 어울리는 교회, 사역 현장의 소리를 더욱 귀담아듣고 묵묵히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가 되면 좋겠다. 특별히 특수 사역을 준비하는 많은 동역자들이 책에서 나오는 지식 말고, 현장에서 소통하면서 깨닫고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사역에 임하면 좋겠다.



#향후 계획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말씀처럼 나의 땅 끝은 '장애인의 마음'이다. 더 많은 장애인을 만나 마지막까지 그들의 마음에 복음의 씨앗을 뿌리겠다. 장애인의 인권과 특별히 이동권이 보장되도록 더욱 힘쓰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지금까지의 장애인 사역을 문서로 정리하고자 한다. 작은 선교회, 조은선교회는 열정을 품고, 장애인 사역에 더욱 매진하겠다.

임성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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