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가치

삶의 가치

[ 주간논단 ]

전혜정 총장
2019년 02월 26일(화) 10:00
자동차들의 홍수 속에 사는 우리들의 일상적인 삶은 심각한 대기 오염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이로 인한 생명의 위협은 시급한 문제다. 깨끗한 물을 마실 권리와 오염되지 않은 공기를 호흡할 수 있는 권리, 이는 18세기 정치적 투쟁으로 쟁취한 인간 기본권들이다. 즉 개인의 자유와 소유권 보다 이제는 더욱 절실한 생존 기본권이 되었다. 사람이 재산을 잃으면 조금 잃는 것이고 명예를 상실하면 많이 잃는 것이라지만, 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 것이다. 환경오염이 소중한 우리의 건강을 잠식해가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일반적으로 환경오염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기술문명의 발달에 의한 공업화·산업화로 간주되고 있다. 그러나 산업화사회 기초를 들여다보면, 인간의 이기적 욕망 추구가 산업사회를 움직이는 원동력임을 알 수 있다. 18세기 이래 서구에서 개화된 개인주의, 자유주의, 그리고 이와 맞물려 발달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현대사회는 그 근본에서 인간의 이기심이 자리잡고 있다. 자신의 욕구충족을 앞세우는 현대인들은 소비의 인간이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추구의 삶을 추구한다. 소비의 인간은 물질소비를 통한 욕구충족이야말로 자신의 행복 달성의 지름길이라 생각한다. 유한한 물질을 앞다투어 쟁취하려다 보니 이웃들과 심한 경쟁관계를 야기하게 되었다.

결국 인간관계를 살벌하게 만들고, 여유와 인간다움을 앗아가 결국 우리 삶의 주변을 황폐하게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런 사회에 익숙한 현대인은 타인을 사랑하고 배려하려는 여유가 없다. 우리는 '나 자신'보다는 '내가 갖는 것'에 더 신경 쓰고, 자신의 '참다운 인간다운 삶'보다 '소유를 추구하는 삶'을 보다 앞세운다.

우리는 삶의 방식과 태도를 바꾸어야 할 절박한 시점에 와 있다. 왜냐하면 이기적 욕구충족의 삶은 인간사회를 비인간적 삶을 강요하는 사회로 만들어 가거나 인간들 사이의 참다운 인간관계를 황폐화시키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러한 삶이 우리가 사는 환경을 오염시켜 생태계를 파괴하는 삶이 된다는 것이다. 끝없이 팽창하는 물질소비 욕구로 인한 상품생산증가는 더 많은 공업생산을 가져오고, 이는 더 많은 자연 파괴로 이어진다. 물론 생산과 소비는 인류 생존을 위해 필수적이지만, 적절한 한도를 넘는다면 인류 생존자체를 위협하게 된다.

각자가 제멋대로 과도한 물질소비생활을 누리다 보면, 결과적으로 삶의 터전을 오염시키고, 생태계를 파괴하게 되어 생명까지도 위협한다. 과도한 소비는 자신의 욕구충족을 위한 것이기는 하지만, 남(이웃이나 자연 생태계)에게 부담을 주는 행위가 된다. 돌고 돌아 나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망가뜨리게 된다. 자신의 행복을 위한 삶이 행복은 커녕, 소중한 생명까지도 손상시키는 삶이 된다는 사실이다. 만약 인간이 이처럼 무분별하게 이기적 욕망만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면 앞으로 닥칠 생태계 파괴와 이로 인한 인류파멸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자신을 깊이 성찰해보면, 또 다른 면이 우리 속에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인간은 이기심 이외에 남을 사랑하려는 욕구도 갖고 있다. 남을 사랑하는 것은 물질을 사랑하는 것과는 다르다. 남을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배려하려는 정신에서 사랑의 욕구가 충족된다. 자신의 이윤 보다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농부는 벼에 농약을 칠 때도 가려서 할 것이고, 이런 정신을 가진 식품제조업자는 남이 먹는 식품을 정성스레 만들려고 할 것이다. 이처럼 이기적 욕구를 자제하는 검소한 생활을 즐기고 물질소비를 통한 육체적 만족 추구보다는 내 주변의 인간과 자연을 돌보고 사랑과 관심을 쏟는 생활을 즐긴다면 개발을 빙자한 자연파괴, 이윤에 눈멀어 인체에 유해한 식품을 제조하는 일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인류에게 다가오는 환경재앙도 알고 보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생활양식과 그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재앙을 물리치는 가장 근본적인 방안도 삶의 근본적 변혁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더불어 지구상에서 살아가려는 태도는 나 자신 속에 잠들어 있는 소중한 '사랑의 욕구'를 돌보는 일에서 시작된다. 이런 마음을 가진다면 누구나 우리 주변의 모든 것들, 예컨대 집에서 기르는 개나 고양이뿐만 아니라 야생동물이나 시골길에 피어 있는 야생화에 이르기까지 귀중하며 소중하게 보인다. 옛날 스토아 철학자들은 우주는 살아있는 생명체라 역설하고, 인간은 그런 우주와 유기적 연관을 맺고 살아가는 존재로 파악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이 나의 소중한 생명과 긴밀한 연관을 가졌다는 통찰이다. 그래서 스토아 철학자들은 우주자연과 통하는 영적인 삶을 최고의 이상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이를 위해 자기 욕구자체를 줄이는 검소한 삶을 예찬하면서 우주 대자연과 인류를 생각하는 절제를 강조하였던 것이다. 요컨대 남을 자신 보다 우선적으로 배려하는 정신은 살기 좋은 인간적 사회를 만들어 가는 정신적 기초가 될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생태계 파괴나 환경오염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생각된다.



전혜정 총장/서울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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