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익태를 바라보는 기독교인의 두 시각

안익태를 바라보는 기독교인의 두 시각

최근 '안익태 케이스' 책 통해 나치 협력 정황 밝혀서
애국가 교체 여론까지, 기독교인들도 비판적 시각 갖춰야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2019년 02월 14일(목) 09:59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 선생이 친일 부역자일 뿐 아니라 친나치 인사였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그가 작곡한 애국가가 대한민국의 국가로 사용되는 것이 합당한 일인가에 대한 논란까지 불거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3.1운동의 정신을 앞장서서 기리고 있는 한국교회는 기독교인이었던 안익태 선생에 대해 무조건적인 옹호보다는 사실에 근거한 균형잡힌 시각을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안익태의 친일 행적은 이미 세간에 알려진 바가 있으며,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친일인명사전에도 친일 전력으로 이름이 올라가 있는 상태다. 최근에는 한신대 국제관계학과 이해영 교수가 '안익태 케이스'라는 책을 발간, 안익태가 일본 군국주의와 나치즘에 부역한 것을 지적해 또 다른 논란의 중심에 서고 있다.

안익태는 2000년대 들어 독일연방문서보관소 영상 자료실에 소장됐던 1942년 9월 만주국 건국 10주년 기념연주회에서 에키타이 안(안익태의 당시 이름)이 베를린 방송 교향악단을 지휘하는 영상이 공개되며, 이 음악회가 만주국 창설 10주년 기념음악회'라는 것이었고, 여기서 연주된 음악이 일왕에게 충성을 다짐하기 위해 연주되는 곡인 '에텐라쿠(越天樂)'와 만주국을 건설한 일본을 중심으로 세계 평화와 신질서를 확립하자는 내용의 '만주국환상곡'이었다는 점에서 우리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안긴 바 있다.

안익태가 처음부터 친일을 한 것은 아니었다. 1930년 미국 유학을 떠난 안익태는 1935년 애국가를 작곡하고, 미주 한인독립운동 단체 '대한인국민회'의 기관지인 '신한민보'1936년 3월 26일자 기사에 자신의 애국의 마음을 밝힌 바 있다. 그 기사에서는 "음악의 위대한 힘이 실로 민족 운동과 혁명 사업에 대단한 활기와 도움을 주는 것은 과거의 역사가 증명하는 바로서 진실로 바라건대 이 신작 애국가도 우리 민족 운동과 애국정신을 돕는 데 도움이 되기를 성실히 바라는 바"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유럽으로 활동무대를 옮긴 후부터 그는 이전과 다른 행보를 보였다. 이해인 교수의 '안익태 케이스'에 따르면, 안익태는 베를린에 머물던 2년 반 정도 에하라 고이치라는 유럽 첩보망의 독일 총책임자의 집에 머물렀으며, 안익태를 스폰서해주었던 독일협회는 나치의 외곽조직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교수는 전시 상황에서 첩보 책임자가 자신의 집에 아무 이유 없이 2년 반 동안이나 안익태를 데리고 있었겠느냐는 합리적 의심이 가능하다며, 당시 독일과 일본은 군사 동맹관계였고, 1943년 8월 안익태가 독일로부터 제국 음악원 회원증을 발부 받았는데 게슈타포가 신원 검증을 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 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10년간 우리는 모른 척했고, 조금 찜찜하지만 사회적, 정치적 비용이 너무 많이 드니 그냥 넘어가자는 생각을 해왔지만 이제는 역사 정의라는 차원에서 좀 더 국민적인 공론화를 통해서 새로운 국가를 만들자고 주장했다.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위원장 윤경로 박사(전 한성대 총장)는 "안익태의 친일 행적 및 나치에 동조한 것은 이미 친일인명사전을 만들 때도 조사되어 실렸던 것이고, 이번에 이해영 교수는 독일에 가서 더 자세한 정보를 파악하고 온 것으로 안다"며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시점에 기독교인들이 더욱 역사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윤 박사는 "안익태가 기독교인이었다고 해서 교회가 자꾸 덧칠, 회칠을 해서는 안된다"며 "기독교인은 하나님 앞에 내가 죄인 됨을 고백하는 것이며 우리의 죄만이 아니라 우리 민족이 과거 역사 속에서 잘못된 것이 있으면 하나님 앞에 고백할 수 있어야 성숙한 그리스도인, 바람직한 기독교인이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 박사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은 한국교회의 자세에 대해서도 의견을 피력했다. 그는 "100년 전 우리 믿음의 선조들은 민족대표 33인 중 16명을 차지할 정도였는데 본래 유명한 분들을 대표로 모시려 했지만 그분들이 다 고사를 해서 양심있는 기독교인들이 자신들에게 고난이 닥칠 것을 알면서도 기독교적인 양심과 민족을 사랑하는 믿음에 기반한 사랑으로 십자가를 졌던 것"이라며 "한국교회는 이러한 독립운동의 전통, 민주화 운동과 통일 운동에 앞장 선 전통을 본받아 세속과 물신주의를 벗고 믿음의 선배들이 보여주었던 양심과 염치, 민족애를 본받아 되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표현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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