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백관수, 日 감옥서 쓴 한시 최초 공개

독립운동가 백관수, 日 감옥서 쓴 한시 최초 공개

[ 2.8독립선언 100주년-도쿄 르포 ] 조선의 독립, '기다리는 봄'으로 형상화 … 차남 백순 박사 "원죄 등 부친 시에는 기독교사상 녹아져 있어"

이수진 기자 sjlee@pckworld.com
2019년 02월 10일(일) 18:44
독립운동가 백관수의 옥중 한시를 소개하고 있는 차남 백순 박사.
최연홍 재미 원로시인이 2.8독립선언서와 미국의 독립선언서를 비교해 발표하고 있다.
【 일본 도쿄 = 이수진 기자】 2.8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혐의로 동경 감옥에 투옥돼 옥고를 치른 근촌 백관수의 옥중시가 처음으로 세상에 선보여졌다.

일본에서 한국문학을 연구하는 모임인 '인문평론연구회'가 9일 2.8독립선언 100주년 기념으로 개최한 워크숍에서 독립운동가 백관수의 차남인 백순 박사(80세·와싱톤중앙장로교회 원로장로)는 부친이 감옥에서 지은 시 71편이 담긴 '동유록'을 소개하며, 그 속에 나타난 근촌의 사상과 정신, 심정에 대해 발표했다.

한학에 조예가 깊었던 백관수는 1년여 간의 옥고를 치르는 동안 71편의 한시를 썼다. 1920년 3월 25일 출옥한 그는 옥중에 쓴 시를 정리해 '동경감옥에서 쓴 노래'라는 뜻으로 '동유록'이라 이름 붙였고, 2.8독립선언 100주년을 맞아 차남이 이를 한글과 영어로 번역해 출간했다.

"위 우러러 부끄럽지 않음이여 / 밑 굽어보아도 부끄럽지 않음이여 / 굽어보던 우러러 보던 부끄러움 없으니 / 무엇 뉘우칠 일 있으리오 // 커다란 옮음으로 적을 꾸짖었음이여 / 사람의 도리를 따랐음이라 / 도의가 이미 분명하거늘 / 무슨 잘못 있으리오"(독립운동가 백관수의 옥중시 '자위가')

백관수의 시 전반에는 조선 독립에 대한 열정을 '봄을 기다리는 마음'과 '부끄럽지 않은 마음' 이 두 가지가 형상화되고 있다.

백 장로는 "아버지가 간절하게 기다린 봄은 '반만년 아름다운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조선의 독립', '충의로운 나라사랑이 갈망하고 있는 조선의 독립', '파리강화회의'로 이뤄지기를 기대해보는 조선의 독립'"이었으며, "조선의 독립을 열망하는 일편단심과 인간의 가장 높은 가치인 자유와 정의를 부르짖는 마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버지가 크리스찬이었던 것같지는 않지만, YMCA에서 활동했기에 기독교사상을 많이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며, "'잘못을 저지르고 또 뉘우침이란/인간의 허물인 것을'이란 싯구는 인간이 근본적으로 간직하고 있을지 모르는 원죄에 대한 심정을 시를 통해 형상화한 것"으로 보았다. 이어 "'자위가'에는 2.8독립선언의 외침이 결코 부끄럽지 아니하다는 마음을 표출하고 있다"면서, "아버지는 윤동주보다 훨씬 이전 세대 사람임에도 정서가 비슷한 것을 보면, 당시 조선 유학생들 가운데는 이런 마음이 팽배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백 장로는 "한문시였기 때문에 출간하기가 쉽지 않았다. 독립을 염원하며 옥중에서 쓰신 시였기에 사명감을 가지고 엮었다"고 토로하며, "부친이 100년 전 읊은 시는 통일의 봄을 기다리는 지금의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날 논찬을 맡은 오노 야스테루 규슈대학 교수는 "당시 2.8독립선언을 주도한 유학생들은 체포되었고, 1920년 봄까지 2.8독립선언을 주도한 유학생들에 관한 자료는 일본 경찰의 보고서와 후년에 발표된 회상록을 제외하고는 거의 남아있지 않다"면서, "백관수가 옥중에서 쓴 한시는 2.8독립선언과 3.1독립운동에 대한 조선인 유학생들의 인식을 나타내는 자료로서 가치가 있고 역사 연구 분야에서도 적극적으로 활용할만한 자료라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백관수는 동경 메이지대학 유학생으로 조선청년독립단을 조직하여 대표자 11인으로 활동하다 투옥돼 1년 여 동안 감옥생활을 했다. 이후 조선일보 편집인, 동아일보 사장을 거쳤으며, 세계그리스도교청년연합회 주최 태평양회의에 조선대표로 세 차례 참석한 바 있다. 제헌국회의원으로 초대 법제사법위원장을 지냈으나 6.25 때 납북됐다.

한편 이날 워크숍에서는 최연홍 재미 원로시인이 2.8독립선언서와 미국의 독립선언서를 비교·분석해 발표하기도 했다.

[2.8독립선언 100주년-도쿄 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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