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으로 이끄는 정치

묵상으로 이끄는 정치

[ 주간논단 ]

전혜정 총장
2019년 01월 22일(화) 09:57
과학과 기술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고 믿는 현대인들은 종교를 원시인들의 유물처럼 간주하고, 21세기 생활에 필요 없는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사회학자 피터 버거는 '천사들에 관한 소문'에서 현대인들은 종교를 필요로 하지도 않고 믿지도 않는다는 신화를 비판하였다. 물질문명과 소비사회가 강요하는 노예적 삶으로부터 해방되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인생과 우주의 보다 깊은 신비의 차원을 선택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레어만은 그의 저서 '기독교적 테두리에서 본 윤리학'에서 '정치란 도시 국가의 시민들로 하여금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하는 기틀을 마련하는 것이다'라고 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인용하면서 하나님은 인간을 성숙한 인간으로 만들기 위해서 역사를 통해 정치를 하시는 분이라 정의하였다. 오늘날 과학기술이 지배하는 시대에 사는 인류는 공해와 생태학적 위기에 봉착해있다. 컴퓨터의 발명, 오토메이션화, DNA합성, 공해와 인구팽창과 자연자원의 고갈 등에서 결과된 생태학적 위기 등의 문제들은 인류의 미래를 위하여 오늘의 우리에게 결단을 요구하고 있다. 즉, 새로운 사고방식과 새로운 생활양식과 새로운 사회구조와 정책을 위한 결단이 촉구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환경변화의 급물살이 대학을 압박하는 현실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대학교 총장은 이러한 현실문제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어 그 의무와 책임이 너무 크다. 요즘 같이 어려운 대내외 환경 속에서 대학의 현실은 잠시라도 긴장의 끈을 놓으면 하루아침에 학교가 어디로 갈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 때 각종 지표관리와 이에 따른 구성원들의 스트레스는 오로지 총장의 정신력과 직결됨을 부인할 수가 없다. 이와 관련된 현재의 당면한 문제를 하나의 사례로 소개하고자 한다.

대한민국 교육환경의 변화를 극복하기 위해서 대학이 처한 각종사안을 입안하고 진행하는 과정은 매일 진행되는 각종 회의에서 이루어진다. 총장은 민감한 사안을 결정하는 각종 위원회에서 빚어지는 갈등을 조정하는 조정자이다. 이러한 과정을 진행하면서 총장으로서 공의로운 결정을 이끌어 내는 과정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이 과정에서 각자의 의견과 공동체가 지향할 방향이 다를 경우, 또는 각자의 생각과 상황이 다른 경우는 서로 이해의 폭이 다르므로 서로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려고 부단히 노력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총장의 자격은 좌로도 치우치지 않고 우로도 치우치지 않는 공의로운 처사를 위해 세심한 각 분야의 지식을 갖추는 것이 기본이다.

이 과정에서 쉽게 문제가 해결되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각자의 생각이 관철되지 않으면 감정싸움까지 하고 급기야 밀담이 시작된다. 이런 경우가 발생하면 가장 어려운 문제는 각자의 의견을 넘어 자존심 싸움으로 돌입하는 경우이다. 특히 지식의 전당이기 때문에 각자가 피력하는 언어와 최첨단의 지식은 총장의 능력을 테스트하는 것 같다. 이러한 과정에서 총장으로서의 역할은 어떻게 하면 우리 대학의 역할과 구성원들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책임과 의무를 다하도록 공의로운 잣대를 설정하여 분배하느냐의 문제이다. 이럴 경우가 되면 묵묵히 외부의 소리를 차단하고 낱낱이 사안을 열거하며, 절제하고 사유할 수 있는 묵상의 시간에 돌입할 수밖에 없다. 이때에 구성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타인의 의견을 존중하는 시간의 연속으로 이루어지는 사안들, 이러한 과정을 통과할 때 각자가 절제하며 진행한 내용들이 자연스럽게 결정권자인 총장의 견해와 일치하는 경우를 종종 경험하고, 오로지 하나님께서 정치를 하시고 계심을 깊이 깨닫는 순간이 온다.

이때 레이만이 말하는 정치 '곧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인간화 작업의 전부를 의미한다'함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 인간화 작업이라는 것이 한 개인에 관한 관계가 아니라 인간관계 속에서 즉 정치적 공동체 안에서의 관계를 말하고 있다는데 주목하게 한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인간이 스스로 행복을 성취하고 스스로의 가능성을 실현시킬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 이것이 참된 의미이고 정치라는 것이다.



전혜정 총장/서울여자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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