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풍경

겨울의 풍경

[ 4인4색 ]

정인철 장로
2018년 12월 26일(수) 07:56
계절에도 냄새가 있다. 특정 계절의 냄새라는 것은 경험에서 비롯된 지극히 개인적인 감각일 뿐이지만, 확실히 계절마다 구별되는 다른 점이 있다. 겨울의 냄새를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려면 나는 눈이 쌓인 날 아침 풍경을 떠올린다.

어린 시절 고향의 겨울에는 눈이 참 많이 왔다. 아침에 일어나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면 밤새 내렸던 눈이 마당에 소복이 쌓여있는데, 숨을 들이쉴 때마다 느껴지는 시리고 차가운 공기의 청량함이 이 계절의 냄새로 기억되는 것이다. 그런 날은 아이들과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도 하며 지치도록 놀다가, 싫증이 나면 썰매를 들고 동구밖으로 나갔다. 가을에 벼를 베고 난 뒤 텅 비어있는 논에는 얼음이 꽁꽁 얼어서 썰매를 지치고 놀기에 적당했다. 썰매를 타다보면 배고픈 것도 잊게 되고 아이들은 어머니가 부르러 올 때까지 놀았다. 아직도 추위는 싫지만, 겨울을 좋아하는 이유는 눈 오는 것이 좋아서다. 지금도 첫눈이 내리면 나뭇가지에 온통 하얗게 피어있는 눈꽃을 보기 위해서 매번 찾는 산이 있다. 이 모든 것이 겨울에만 경험할 수 있는 즐거운 풍경이다.

이맘때 생각하는 것이 또 있다. 젊었을 때 만났던 어른들이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스승같던 어른들 중에는 이미 곁을 떠난 사람도 있다. 해가 지날수록 그런 이별들이 늘어난다. 그분들이 지금의 내 나이였고, 나는 그들의 삶에서 배운 것을 떠올리며 그렇게 살겠다고 다짐하기도 했었다. 다짐대로 살았던가 되돌아보면, 어느새 내가 그 나이가 됐다는 것을 깨닫는다. 막연하다고만 여겨졌던 시간의 흐름 위에 우리는 조용히 서 있다.

마지막을 생각하는 것이 마냥 아름답거나 행복하지만은 않다. 어떤 이들은 서글프다고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이 기다려진다면 그 이후에 있을 시작을 기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준비할 수 없는, 준비될 수 없는 끝은 모두에게 가혹하도록 공평하다. 그러나 그 서글픈 끝을 두려워하지 않으므로 우리는 다시금 시작할 수 있다. 이 겨울, 서로의 실수보다 우리가 함께 건넸던 다정한 인사를 먼저 떠올리기를 바란다.

정인철 장로 / 순천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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