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가정을 이루어 주신 하나님

믿음의 가정을 이루어 주신 하나님

[ 라떼는말이야 ] 예비역 육군 소장, 박남필 장로 ①

박남필 장로
2024년 10월 02일(수) 13:29
예비역 육군 소장 박남필 장로의 가족. 박 장로는 군 전역 후 믿음의 가정을 이루며 군선교를 위한 봉사에 앞장서고 있다.
필자는 성경에서 로마서 8장 28절을 제일 좋아한다. 고등학교 시절 YFC에서 활동했는데 그때 로마서 8장을 암송할 일이 있었고 그 후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라는 말씀은 항상 힘을 주었고 삶의 신앙 신조가 되었다.

필자의 고향은 경기도 일산이다. 6.25전쟁 중 1.4 후퇴 때 어머니가 외갓집 식구들과 남쪽으로 피난 가다가 1951년 2월 어떤 집 헛간에서 출생했다. 그때 외할머니께서 남쪽으로 피난 가다 낳았으니 남필이라고 하자고 해서 내 이름이 지어졌다. 나중에 고향으로 돌아와서 나의 할아버지께서 남필이라는 이름이 좋은데 남녘 남(南)자보다는 사내 남(男)자가 좋겠다고 하셔서 박남필이 되었다. 내 이름의 뜻이 창자루를 잡은 남자라는 뜻인데 할아버지께서 선견지명이 있으셨던 것 같다.

필자의 외할머니는 1900년대 초 처녀 시절에 언더우드 선교사의 전도로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결혼 후 자녀는 9남매를 두셨다. 어머니는 8번째로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하다 결혼하셨는데 남편인 필자의 아버지를 비롯해 예수 믿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지금은 신도시가 된 고양군 중면 문촌마을로 시집을 오셨다.

시집오신 지 얼마 되지 않아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며느리가 잘 못 들어와 집안에 우환이 생겼다고 수군댔다. 게다가 젊은 며느리가 예수 믿기 때문에 마루에 '상청'도 안 만들고 절도 못 하겠다고 하니 온 동네가 난리가 났다. 그 후에 아버지를 비롯해 온 동네 사람들에게 많은 핍박을 받았고 어머니를 따라 교회에 다니던 우리 6남매도 '예수쟁이'라고 동네 애들한테 따돌림 당하고, 아버지도 "교회 가면 돈이 나오냐? 먹을게 나오냐?" 하시면서 작대기를 들고 쫓아오시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어머니와 우리 6남매는 믿음을 꿋꿋하게 지켰고 결국은 고모와 삼촌도 예수 믿게 되었고 나의 아버지는 나의 형이 목사가 된 후 60세가 돼서야 예수님을 믿게 되고 하늘에 소망을 두고 명예장로로 사시다 지금 부모님은 6.25 참전 무공수훈자로 대전 현충원에 잠들어 계신다.

필자의 형은 고등학교 교사를 하다 40세에 신학을 하고 목사가 되어 부산 동삼중앙교회에서 목회하시다 은퇴하여 원로목사로 계신다. 목회하는 동안 부산에 있는 부대들, 특히 태종대 지역의 부대에서 군선교를 위해 많은 후원을 하셨고 지금도 한국기독교군선교연합회(MEAK) 부산 지역의 책임을 맡아 활동하신다. 남동생은 총신대학 음악과를 졸업하고 오산고등학교 교사를 하다 조금 일찍 명예퇴직하고 탄자니아에서 일차 선교를 마치고 지금은 그 옆 부룬디에서 선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필자의 큰 사위는 임마누엘교회 담임목사로 목회 중이고 둘째 사위는 총신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아들은 컴퓨터를 전공해서 네이버 등 여러 회사를 거쳐 지금은 보안관련회사에 재직 중이며, 임마누엘 교회 어린이 찬양대장인 며느리와 함께 열심히 교회 봉사하며 살고 있다. 필자의 아내는 예비역 국군 부인회 회장을 마치고 4년 전 하늘나라에 갔다. 필자는 지금 아들, 며느리, 손녀 2명과 함께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이와 같이 신앙 때문에 고난을 받았던 우리 가족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좋은 것으로 주시는 하나님이 많은 것으로 축복해 주셔서 믿음의 가정을 이루어 행복하게 살고 있다. 우리 가족의 신앙 이야기를 여기에 쓴 이유는 앞으로 연재될 필자의 '라떼는말이야'의 군선교 간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필자는 1968년 1월 22일 육사에 가입교 해서 첫 주일에 육사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다. 그런데 왜 그리도 눈물이 나오는지. 난생처음 3~400원의 봉급을 받아서 모두 하나님께 감사 헌금으로 드렸다. 그 이후 지금까지 십일조 헌금은 꼭 드리고 있다.

생도 1학년 때 주일은 육사교회에서 교회학교 교사와 찬양대로 봉사했고, 수요일 저녁에도 눈치 안 보고 저녁 식사 후 바로 교회로 직행했다. 2학년이 되면서 외출 외박이 좀 자유로워지면서 필자는 주로 고향 교회를 다녔다. 4학년이 되어서는 CCC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김준곤 목사님의 "이 땅에 푸르고 푸른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자", "10만 명의 해외 선교사를 파송하여 세계를 복음화 하자"라는 말씀을 들으면서, 또 임관 후에는 신앙 좋으신 CCC 선배들과 매주 목요일 성경 공부하며 지냈다. 그 시절이 필자의 신앙생활에 큰 도움이 되었다. 또 서울여대 총장 고황경 박사님이 서울여대, 서울공대, 육사 기독학생회 임원들의 모임인 '나먼저'라는 모임을 만들어 3개 대학 연합기독활동을 원활하게 하도록 하셔서 부활절 예배, 추수감사절 예배 등을 연합으로 드리며 기독생도회 임원으로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다.

박남필 장로 / 예비역 육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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