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과 노동

안식과 노동

[ 논설위원칼럼 ]

황홍렬 교수
2018년 12월 24일(월) 10:00
황홍렬 교수.
지난 11일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 씨가 컨베이어벨트에 몸이 끼여 사망했다. 4년 전 보령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박씨가 동일한 사고로 사망했다. 4년 간 변한 것은 비상정지장치만 설치되었을 뿐, 그마저 2인1조 근무 체제가 도입되지 않아 무용지물이었다. 회사는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한 혐의로 기소됐지만 1·2심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정부 통계에 의하면 산재로 인한 하루 사망자가 5명이고, 부상자가 220명이다(2015년). 공교롭게도 김용균 씨가 사망한 날 4조 5천억 회계분식을 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주식 거래가 재개되었다. 10년 전 엔론은 미국 최고의 에너지 기업이었지만 회계부정으로 상장 폐지는 물론 파산했고, 최고경영자는 징역 24년 4개월을 받았다. 1997년 한국의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노동자와 가정에 고통을 전담시키고 위기를 초래한 기업과 금융권은 공적 자금으로 사적 자본을 지켰다. 경제학자 갤브레이스는 사기를 저지르는 기업의 권력을 규제하지 못하면 국민경제와 정부, 기업 모두를 희생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성서는 출애굽 이후 펼쳐진 만나경제(출16:18), '일용할 양식'을 나누기 위한 안식일, 안식년, 희년 경제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예수는 12시간 일한 자나 1시간 일한 자나 약속대로 한 가족 최저생계비인 한 데나리온을 지급한다(마20장).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너희가 선을 미워하고 악을 기뻐하여 내 백성의 가죽을 벗기고 그 뼈에서 살을 뜯어 그들의 살을 먹으며…"(미가3:2~3)라는 말씀과 같다.

산재에 대한 사회적·법적 규제가 거의 없어 기업은 "사람을 갈아 넣을수록 이윤이 발생하는데 안 하면 바보다."(박권일 사회비평가) 한국경제는 자식을 자본주의 맘몬에게 바치면서 성장하고 있다. 그러나 칼뱅은 물질적 삶과 영적 삶이 긴밀하게 연결되었다고 성서가 가르친다고 했다. 이분법적 신앙을 가졌다면 그런 교회는 이미 맘몬 우상숭배를 하고 있다는 칼뱅의 비판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하나님의 섭리의 도구인 재화는 부자로부터 가난한 자에게로 순환하게 하여 소유의 균형을 맞춤으로써 하나님의 경제 질서를 수립하게 한다.

인간의 본질은 노동이 아니라 안식이다. 안식을 통해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창조적, 해방적 노동을 실천하게 된다. 프로테스탄트 난민이 밀려드는 제네바에서 칼뱅은 난민의 직업교육과 일자리 창출에 힘을 쏟았다. 칼뱅은 노사정위원회 같은 만남 속에서 중재활동을 통해 제네바 시의 경제회복과 번영을 이루는 데 기여했다. 이제 한국교회는 전쟁 같은 노동을 멈추고 안식하되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경제를 세우기 위해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총회의 화해지침서를 현실화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황홍렬 교수(부산장신대, 선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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