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숲에 남아있는 사랑이야기

겨울 숲에 남아있는 사랑이야기

[ 4인4색 ]

이춘원 시인
2018년 12월 18일(화) 19:35
정월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새봄의 희망으로 시작하여 그 무섭던 폭염의 여름에도 숲은 열심히 일했다. 그리고 열매와 씨앗들을 맺어 풍요한 가을의 문을 열었다. 곱던 단풍잎들이 서서히 낙엽 지는 숲에는 쓸쓸함이 내려오고, 이제는 벌거숭이 모습으로 우두커니 서 있는 나무들이 찬바람에 시리다. 지금부터는 혹한의 시련을 견뎌내야 하는 시절이다. 그러나 숲은 겨울을 두려워하거나 회피하지 않는다. 진정 비움의 의미를 이야기하고, 인내를 보여주는 것이 겨울 숲의 이야기다.

겨울 숲에 흰 눈이 내린다. 다람쥐나 어치처럼 겨울양식을 준비하지 않은 산새들이 배고픈 시절이다. 누가 그들에게 굶주리지 않게 먹이를 줄 것인가? 벌거벗은 겨울나무다. 호호 손을 불면서 가지 끝에 열매를 달고 있는 겨울나무다. 겨울 숲에 남아 있는 열매들은 그 색깔이 선명하다. 작살나무처럼 보라색 열매를 달고 있는 나무들도 있으나 산수유, 낙상홍, 찔레나무처럼 빨간 열매가 대부분이다. 눈 내리고 추운 날에 곱게 차리고 나온 아가씨 같다. 과연 누구에게 잘 보이려고 저렇게 곱게 차려입고 나왔을까? 그들이 기다리는 것은 겨울 숲의 산새들이다. 멀리서도 자신들을 잘 찾아올 수 있도록 저렇게 빨간 옷을 입고 흰 눈 위에 서 있는 것이다. 꽁꽁 얼어가는 겨울 숲에서 사랑하는 이를 기다리는 것이다. 참 아름다운 겨울 숲의 사랑이야기다.

나무의 열매와 산새들은 일방적인 사랑을 하는 관계가 아니다. 서로를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는 서로 돕는 사랑이다. 산새들이 먹은 열매의 과육(果肉)은 양분이 되지만 그 안에 있는 씨앗들은 소화를 시키지 못하고, 멀리 날아가서 새똥을 싼다. 그곳에서 이듬해 봄에 새싹이 난다. 나무의 후손을 멀리 퍼뜨리는 일을 대신 해준다. 인간세상의 사랑도 일방적이면 오래가지 못한다. 서로에게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 그 사랑이 깊어지는 것이다.

인간들도 숲의 사랑을 배워 실천하는 일이 있다. 까치밥이다. 인간들이 가꾼 과일나무라고 해서 가을에 그 열매를 다 거두지 않는다. 감나무 가지 끝에 빨간 감이 몇 개씩 달려 있다. 시리도록 파란 겨울하늘에 붉은 심장으로 박혀 있다. 멀리서 배고픈 까치가 와서 열심히 열매를 쪼아 먹는다. 하나님의 뜻을 자연 속에서 바르게 이해한 사랑이 까치밥이라 생각한다.

이제 우리들은 월동준비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겨울을 살아갈 것이다. 두꺼운 옷을 준비하고 솜이불을 준비한다. 아이들에게 한 겹 한 겹 옷을 껴입히고, 따뜻한 패딩이나 점퍼를 입힌다. 숲도 겨울준비를 완전히 마쳤다. 모든 옷을 벗어버리고 당당하게 겨울을 맞고 있다. 당장은 나뭇잎을 달고 있는 것이 추위를 이기는데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새봄의 소망을 위해서 단호히 옷을 벗는다. 우리들도 나무들처럼 한 겹 더 옷을 벗는 것은 어떨까? 육신의 겉옷이 아니라 내면에 가득 찬 탐심과 시기와 질투, 무관심과 무자비의 옷을 벗어 던지고 당당히 세상에서 살아가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성탄의 계절이다. 겨울보다 더 혹독한 세상에 오셔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도 내어주신 그 분의 사랑을 생각하며, 진정한 '사랑'과 '비움'의 의미를 겨울 숲에서 들어본다.

이춘원 / 시인·산림교육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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