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법과 학문의 위기

강사법과 학문의 위기

[ 논설위원칼럼 ]

김선욱 교수
2018년 12월 17일(월) 10:00
지난 달 국회 본회의에서는 대학을 흔들어 놓을 강사법이 통과되었다. 이 법은 내년 8월부터 적용될 예정이니 아직 한 학기 정도의 시간이 대학에 주어져 있다. 이 법은 2010년 조선대의 한 강사가 강사의 열악한 삶에 대해 죽음으로 저항한 덕에 발의되었고 이제 국회를 통과한 것이다.

전국 3만7000명 정도의 시간강사들은 학기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강좌 당 약 60만원 내외의 월급을 받는다. 방학에는 강의가 없으니 수입은 없다. 학기 중에는 대학에 따라 일부 보험 지원이 되기도 하지만 그나마 방학 중에는 전적으로 개인의 부담이다. 강사법이 시행이 되면 대학은 강사에게 교원지위 부여, 교원심사 소청권 인정, 3년간 임용과 이후 재임용의 안정적 보장, 4대 보험, 방학 중 임금 지급, 퇴직금 지급 등이 이루어진다. 아직 부족하지만 그나마 상당한 개선이 이루어지는 셈이다.

이 강사법이 대학과 다수의 시간강사에게 위협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 법에 따라 추가로 소요될 대학별 수십억의 비용은 대학이 홀로 감당하기 어렵거나 불가능한 수준이다. 전체 대학에 필요한 추가 예산은 최대 3000억 정도로 예상되고 있다. 하지만 내년을 위해 확정된 정부 예산은 288억원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모두 대학의 부담으로 넘겨졌다.

대학은 10년 넘게 등록금이 동결되어 왔고, 대학진입 인구도 꾸준히 감소하여 재정 상황은 매년 악화되고 있다. 등록금 수입으로는 대학의 기본 지출을 감당하지 못하는 대학도 적지 않다. 여기에 수십억을 추가로 부담할 여력이 없는 대학으로서는 강사법에 따른 지출을 최소화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벌써 내년 1학기부터 시간강사를 대량 해고한다는 소식이 여러 대학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기존 전임교수들의 강의 부담 증대, 강의의 온라인화 및 중대형화, 졸업학점 축소, 폐강기준 강화, 분반 축소 등 강사법 시행에 따른 대학의 선제적 조치로 인해 이루어진 결과이다. 여기에다 향후 강사법에 따라 강사를 채용하게 되어 한 강사에게 여러 개의 강의를 몰아주게 되면 전체적으로는 채용될 강사의 수는 현저히 줄게 된다. 결국 많은 강사들이 고용되지 못하고 장기간 실업의 상태로 빠지는 결과가 예상된다.

지난 10여 년간 교수충원이 제대로 되질 않아 교수들의 학생 지도와 행정 부담은 날로 늘어가고 있고, 논문에 대한 부담도 꾸준히 늘어나 이미 많이 지쳐있는 상태이다. 그러나 교수의 불만은 시간강사의 고통에 비교될 수 없다.

시간강사들은 박사학위취득 과정에서도 개인적으로 많은 희생을 이미 겪었는데, 박사가 되어서도 평균적 삶의 수준에 훨씬 못 비치는 실질적 고통에 시달려 왔다. 이제 그들에게는 교수가 되는 진입장벽이 더욱 높아지게 되었다.

그렇다고 강사법의 무효화가 답이 아니다. 이전이 더 나았던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의 해결은 가능한 한 많은 강사들이 강사법의 혜택을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대학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다. 유일한 해결책은 국회와 정부가 필요한 재정을 확보하고, 강사들에게 직접 도움이 될 수 있는 구체적인 시행령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아직 언급하지 않았다. 그것은 대학교육의 질과 대학다움의 문제이다. 현재의 대학 교육은 고등교육의 본령을 상실하고 생존에만 급급한 상황으로 내몰려 왔다. 여기서 새로운 학문 연구는 어떻게 이루어질 것이며, 연구를 통한 국가의 미래 설계는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학생들에게 제공될 교육의 양과 질의 축소의 결과에 누가 책임질 것인가. 또 누가 험난한 시간강사의 길을 거쳐 교수가 되겠다고 학문의 길을 걸어가겠는가. 게다가 생존에만 매달려서는 대학의 자유의 정신은 어떻게 살아남겠는가. 대학의 교육과 학문 연구와 자유의 정신이 생존 문제로 압살 당하면 나라의 미래는 어떻게 되겠는가.

대학을 위한 기도가 필요하다. 시간강사의 열악한 삶과 대학의 위기에 대한 관심어린 기도가 절실하다. 대학을 위한 기도는 곧 이 나라의 미래를 위한 기도가 될 것이다.



김선욱 교수/숭실대 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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